50점 엄마, 50점 직장인

 

사진 달은
사진 달은

내년 초면 아이가 만 6세가 된다. 내가 몸담은 직장에서는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연령이 만 5세까지로 제한되어 있어(만 6세 이상의 아이는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다가올 해에 아이 등·하원과 나의 출퇴근을 병행할 일에 고민이 깊다. 그동안에는 8시 15분 무렵 출근하시는 유치원 선생님 손에 아이를 붙들려 드린 후 헐레벌떡 급히 나와 그길로 곧장 출근하면 8시 30분인 출근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었고, 오후에는 육아시간 사용을 요청하여 정식 퇴근 시간보다 20분 정도 이르게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가면 유치원 문을 닫는 4시 30분쯤에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 올해까지는 쫓기듯 분주하게나마 그런 방식으로 어떻게든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었지만, 내년 초부터 육아시간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니 정시 퇴근하고 유치원이 문 닫기 전에 아이를 데리러 가려면 아무래도 과속과 신호위반을 밥 먹듯 하는(!) 운전을 일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직장을 관두면 되지 않느냐고? 금리와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갚아야 할 대출금과 이자와 감당해야 할 생활비가, 내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남편과 맞벌이로 일해도 월급을 차곡차곡 은행과 카드 회사에 매달 헌납하고 나면 저축은 언감생심. 성실한 노동자로만 살아서는 그 누구도 노동의 소득으로만은 자본을 창출할 수 없는, 돈이 돈을 버는 사회 아닌가. 로또가게는 늘 문전성시, 주식시장은 개미 투자자들로 넘쳐나고, 건물주가 될 수는 없을지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부동산 시장은 웅성웅성. 월급을 반만 받더라도 일을 적게 하고 아이와 함께 오후를 보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간선택제’ 근무 제도를 알게 되었지만, 나와 짝을 이루어 시간선택 근무를 할 직원이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읽고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특성상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유명무실한 제도임을 허탈하게 깨달았다.

내 아이는 문이 열리기도 전에 유치원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유치원 문을 닫을 때까지 마지막으로 혼자 남아있는 아이다.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텅 빈 유치원에 혼자 남아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도착하는 시간 전까지 아이가 머무를 만한 안전하고 믿을 만한 곳들이 유치원 근처에 있을지 물색해 보기도 했다. 어린이 도서실이 구비된 공립도서관이 인근에 있지만 아직 어린아이 혼자서 찻길을 바로 옆에 두고 걸어가도록 하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게다가 흉흉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시절이니. 두 번째로는 거점 구역마다 설치된 지역아동센터를 알아보았는데 맞벌이 가정이라는 조건에는 부합하지만 소득 수준이 기준에서 넘친다고 했다. (내 ‘텅장’을 떠올리면 불가해한 일이다) 아이 유치원 인근의 지역아동센터들은 낡고 노후한 건물들이 대부분이고 규모도 영세하여 몹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동네 태권도 학원들이 그토록 인기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바로 받아 학원 차에 태운 후 곧장 이동하여 수업을 마치면 집까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바래다주기까지 하니. ‘학교-학원-학원–학원’하며 아이를 괴롭히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불가피한 상황에서 비롯된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다행히 아이 유치원 지난 학기에는 아침 출근 시간 지각에 대한 우려가 없었고 선생님이 출근하시기 전 이른 시간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가도 누군가 아이를 맞아줄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아침 일찍 오셔서 실내 공간을 환기하고 교실 비품을 소독하는 ‘방역 담당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데믹이 선언되며 모든 학교급에서 방역 선생님의 채용 계약이 일괄 종료되었고 2학기에는 선생님이 더 이상 오시지 않게 되면서, 가을부터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정해진 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출근하셔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말았다. 촘촘치 못한 정책과 허점 많은 제도의 공백을 개인의 선의와 희생으로 메꾸어 나가야만 하는 일이 초래된 것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자녀 등·하원 시간과 부모의 직장 출퇴근 시간 사이 돌봄 문제를 맞닥뜨리는 일은 빈번하다. 주변에 물어보면 비슷한 사정으로 아이를 국공립 병설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사설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조부모에게 돌봄을 부탁하거나, 아니면 그것도 여의찮아 등·하원 도우미를 따로 고용하는 가정도 있다고 들었다. 지난 팬데믹 시기에 운영된 방역 인력 제도를 손보아 ‘이른 등원 돌보미’ 및 ‘늦은 하원 돌보미’로 계약하여 채용하면 맞벌이 부부는 직장에 안정적으로 출퇴근할 수 있고, 아이들도 안전하고 익숙한 장소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고, 유치원 교사도 정해진 시각에 마음 놓고 출퇴근할 수 있으며, 더불어 시니어 일자리도 창출이 되는 등 여러 면에서 장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는 양육자들의 목소리를 제고하여 지금-여기에 꼭 필요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고안해 주기를.

 

글, 사진_ 달은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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