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는 물감을 짜 넣는 것에서 시작한다. 철판으로 된 팔레트에 빨강을 시작으로 주황, 노랑, 연두, 초록, 청록, 파랑, 남색, 보라, 검정의 순으로 가장 안쪽에서 시작하여 한 칸 가득 짜 넣는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말리고 나서야 물감을 쓸 수 있다. 수채화에서 빛을 표현하려면 물을 많이 섞어야 한다. 밝음을 표현하겠다고 흰색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다. 물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투명함으로 빛이 표현된다. 눈이 시리도록 들어오는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 어두움을 표현하겠다고 검은색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다. 색을 쌓고 쌓아 어두움을 표현해야 한다. 바닥에 반사되어 물체에 비치는 빛조차 원래의 색 위에 겹쳐진다.

40색의 물감 중에서 레몬옐로우는 진한 옐로우딥보다 밝고 채도가 좀 더 낮은 그야말로 레몬 색깔이다. 그렇지만 레몬옐로우 하나로는 레몬을 그릴 수 없었다. 이름 속에 담긴 물체조차도 다른 어두운 색과 함께해야 표현될 수 있다. 이름에 레몬이 들어가 있다고 색칠된 노란색 덩어리는 레몬이 될 수 없다. 그림자를 넣어야 그것은 레몬이 된다. 유독 신 것을 좋아했던 나는 ‘새콤달콤’을 먹어도 레모네이드 맛, ‘썬 키스트 사탕’을 먹을 때도 레몬 맛, ‘아이셔’를 두세 개씩 먹기도 했다. 어떤 생일에는 레몬을 사달라고 친구한테 얘기했을 정도다. 케이크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는 레몬 파운드케이크. 입에 넣는 순간 혀뿌리 깊숙한 곳에 침이 고이고 저절로 눈이 찡그려진다.

 

사진 달팽
사진 달팽

우리의 뇌는 실제와 상상에 같은 반응을 한다. 앞에 있는 그림이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고. 앞에 있지도 않은 과일을 먹었다고 느낀다. 오감으로 느낀 레몬은 상상만으로 침이 고인다. 부정적인 상상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뇌는 그 경험을 실제로 겪은 것처럼 느끼고 불안을 느낀다.

반복된 부정적 회로는 점점 강해지고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의식적으로 반복한다. 방금 내 머릿속을 지나간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고 반복해야 한다. 내 불안이 정말 존재하는 실체로 인한 것인지 나의 상상으로 인한 것인지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진 설명: 2012년 1월, 이란 남부의 도시 시라즈에 도착했다. 길거리에는 책을 파는 노점이 무척 많았고, 느긋하게 책을 들춰보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디 가나 시인 하페즈(1300∼1389)의 시집이 빠지지 않았는데, 오늘날까지도 이란인들이 사랑하는 시인 하페즈는 시라즈에서 태어나고 죽었다고 한다. 이날 찾아간 시인의 묘지는 묘지라기보다는 잘 관리된 아름다운 정원 같았다. 늦은 오후 서쪽으로 기울어진 햇살이 두 줄로 늘어선 오렌지 나무를 비추었다. 곧 다가올 밤을 걱정하는 마음 없이 오렌지는 그날의 마지막 햇살 속에 빛나고 있었다.

“장미는 어떻게/ 심장을 열어/ 저의 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었을까? //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의 격려 때문 //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모두 다 꽃」, 하페즈, 류시화 옮김)>

 

 

글_ 미야, 사진_ 달팽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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