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 사고가 일어나면 생기는 불안과 고통은 강박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중화되고 불안과 고통이 해소된다. 지금 이 생각이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떨쳐낼 수 없다.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현대인에게 강박은 흔하다.

가로로 돌려진 가스 밸브, 다 꺼진 멀티탭과 전기장판. 계단을 내려가다 흠칫 멈춘 나는 다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꼭 두 번은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 가족 중에 누군가 외출을 하게 되면 어떻게든 얼굴을 보고 “잘 다녀와!”라고 해야 한다. 만약 때를 놓쳐 인사를 못 하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현관문을 빼꼼 열고서라도 인사를 한다. 만약 하지 못했다면 불안이 올라온다. ‘내가 방금 보지 못한 가족의 얼굴을 오늘 저녁에 못 보게 되면 어떻게 하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 다정한 인사가 아닌 서로를 상처 주는 말이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에 닫혀버린 현관문 소리를 듣고 0.5초쯤 고민하다가 결국 맨발로 달려나간다. 분명 알고 있다. 머릿속을 스치며 그려진 그 장면은 일어날 확률 보다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나의 ‘인사 강박’은 다행히 가족들과 따로 살게 되면서 사라졌다.

또 다른 강박은 윤리적 강박이었다. ‘도덕적이지 않은 회사의 제품을 구매할 때 이 선택으로 옳지 않은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까?’,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나는 윤리적인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완벽한 사람이 되려는 강박은 날 힘들게 했다. 여기서 더 커지는 문제는 그 잣대로 남을 보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20대 초반까지 혼자 고고한 학이 된 것처럼 나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지적하면서 스스로 고립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이렇게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억울했다. 절망적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서야 감히 타인의 선택을 재단해서는 아니 되며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도덕적 우월감을 경계해야 함을 깨달았다. ‘나 스스로가 날 힘들게 하고 있구나.’를 알게 된 후 강박적 사고가 10번 생기면 8번으로 감소했고, 강박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불안이 꼬리를 무는 것은 줄어들었다.

 

사진 달팽. ⓒ달팽이트리뷴
사진 달팽. ⓒ달팽이트리뷴

강박이 마냥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집에 들어오면 바로 손을 씻고, 그전에는 어떤 것도 먹지 않았다. 직업적 강박과 기질적 강박이 섞여 손 씻는 행위는 익숙했다. 그리고 일할 때 습관적으로 두 번 세 번씩 확인하는 버릇이 있어 실수는 적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강박을 달리 생각한다. 단테가 상상한 지옥은 지하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가 정말로 절망한다면 그것이 바로 생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하로 떨어지지 않아도 관계없다. 단테의 생각으로는 모든 희망을 남겨두고 들어가는 곳이 지옥이다. 그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우리가 희망을 모조리 잃어버린 기분에 휩싸인다면 그것은 살아있다 해도 지옥에 있는 것과 같다.”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유서가, 109쪽)

강박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조차 강박적 사고가 아닌가.

그저 그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주자고 되뇌었다. 그 깨달음은 선물이자 은총이었고 구원이었다.

 

<사진 설명 : 2012년의 12월 제주, 흐린 하늘 아래 눈 내린 사려니숲을 한참 걷다가 다시 차에 올랐다. 흔들리는 숲의 어느 시간, 곧은 것들이 흔들리고 불분명해지는 순간. 희뿌연 빛만이 주어진 세계>

 

글 _ 미야, 사진 _ 달팽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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