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를 배었을 때 아주 쌔그러운 자두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말한 적 있다. 그래서 덜 익은 자두를 베어 물기도 했다고… 엄마는 그만큼 많은 자두를 먹었다. 어쩌면 난 자두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정작 난 신맛 나는 자두는 싫어하는데 이유가 엄마가 날 뱃속에 두고 신 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자두를 좋아한다. 외할머니가 자두를 한 자루 가득 싸주시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의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런 엄마를 보는 일이 즐겁다. 자두만큼 엄마가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내게 자두는 엄마와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다들 자두 하면 여름이 먼저 떠오른다지만 나는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까. 나는 자두로 만들어진 자궁에서 자두를 먹고 자랐던 아이이니까.

 

ⓒ달팽이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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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자두보다 훨씬 시커멓고 단맛이 강한 먹자두가 나와 더 잘 맞다. 심지어 먹자두는 나의 최애과일 중 하나다. 자두가 싱그러운 연두색과 쨍한 다홍색이 섞인 청량한 여름의 색이라면 먹자두는 익고 익다가 너무 깊어져 버린 자줏빛이 도는 암흑의 색이다. ‘더위의 핵’이 있다면 그 모습을 형상화 한 것처럼 보인다. 쨍쨍한 햇빛이 먹자두를 깊게 익게 해주나 보다. 그 기운을 먹고 자란 과육의 이름이 단지 먹자두라는 이유만으로, 먹먹한 감정에 맛이 있다면 먹자두의 맛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의외인 맛. 너무 달고 달아서 입이 닫히고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맛과 그런 색깔.

먹먹한 느낌은 여러 감정을 동반한다. 꽉 채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아쉽고 서운한 감정. 말로는 표현 못할 감정들 말이다. 먹자두야말로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며 먹어야 할 1순위 먹거리일지도. 별생각 없이 먹자두를 먹을 땐 이렇다. 검붉고 끈적끈적한 과즙이 쭉 나오면서 일단 입안을 단맛으로 가득 채운다. 먹자두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손을 타고 흐르는 검붉은 과즙은 왠지 모를 쾌감까지 들게 하니 여러모로 매력적인 과일임이 틀림없다. 이런 자두의 맛이 충분히 다디달다면 나는 한 여름을 지나는 중이다. 여름 한 가운데에 자두가 있다.

자두가 신맛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여름을 잘 날 수 있게 하기 위해 태어난 여름 과일이기 때문이다. 자두의 신맛은 과육보다는 껍질에서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신맛과 여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 않은가? 입맛 없는 무더운 여름에 군침을 돌게 해주는 유일한 미각 영역이다. 마치 과일계의 냉면 같달까. 새콤한 감칠맛이 끌어오는 다디단 끝맛. 달달한 맛 뒤에 따라오는 저절로 윙크하게 되는 맛?! 그것이 자두의 매력이다! 여름은 싱그럽고 달고 또 깊다. 낮이 깊다. 깊은 낮을 베어 무는 것처럼. 자두는 그렇게 내 목을 타고 씹혀 넘어간다. 물컹하면서도 섬유질이 풍부한 과육의 식감을 느낄 새도 없이 질긴 껍질에서 나오는 신맛이 입천장까지 퍼진다. 양턱 끝에서 침이 샘솟듯 솟아오르고 꿀꺽, 과즙을 삼킨다. 자고로 과즙이 있는 과일은 쭙쭙거리며 먹어야 제맛이지.

자두의 기운이 온몸에 퍼져 꽉 채워지면 우리는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름 내내 자두로 내 몸을 가득가득 채워야 한다. 여름에도 발이 시린 겨울아이는 여름의 자두를 먹고 자랐다.

 

<사진 설명 : 2007년 여름 양동마을에서 촬영했다. 깊은 초록 속에 습한 공기가 끈적했던 어느 휴일 오후, 봉숭아가 자라는 풀밭에서 놀던 여자 아이들.>

 

글 _ 유차, 사진 _ 달팽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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