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사리를 먹으려면 결심이 필요했다. 잘 씹히지도 않고 쿰쿰한 향이 났다. 흙의 향기 같은 것이 그땐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코를 막고 대충 씹어서 꿀꺽 삼키는 것이 내가 하교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비고사리라며 조심스럽게 다라이에 넌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하니 우리 집에 자연산 고비고사리가 있다는 것을 이웃에게 들키면 안 되는 모양이다. 아마 나눠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채취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고비고사리를 널어놓은 다라이는 옆집, 앞집,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볕 잘 드는 마당에 놓여있을 테니 엄만 결국 한 줌의 고사리라도 나누게 될 것이다.

결심은 나 혼자 조용히 마음을 먹는 것이다. 결심하는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의 관점만 투입된다. 심사숙고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공이 참여했든 결심으로 가는 길은 딱 하나다. 나만 걸을 수 있는 오솔길. 깊고 깊은 오솔길에서 고사리를 만난다. 그리고 길이 없는 곳에는 고사리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달팽이트리뷴
ⓒ달팽이트리뷴

신선하고 부드러운 고사리를 꺾으려면 고사리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길이 없는 산은 절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풀숲을 헤치며 오늘 치의 고민을 끝낸 후 내일, 모레의 고민도 당겨온다. 보들보들한 고사리 하나씩 꺾을 때마다 결심은 두터워진다. 절박했던 심정이 굳은 결심으로 가득 찬다. 망태기가 꽤 무겁다. 마음은 한결 가볍다.

고사리 같은 손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떤 결심이 몰려온다. 이 아이는 커서 고사리를 좋아하게 될까? 잘 먹을 수 있을까? 자연산 고사리는 사랑의 징표. 나는 그 징표를 아이에게 내어놓을 수 있을까? 결심은 나로 하여금 고사리를 따고 말리고 삶고 볶는 행위를 매년 반복하도록 만들 것이다.

다시 고사리를 먹자. 고사리 먹기는 결심이 필요하다.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용기와 입안 가득 채우는 그리움을 꿀꺽 삼킬 결심. 더 이상 귀하다는 자연산 고비고사리를 먹을 수 없고 비대하고 말라비틀어진 중국산 고사리를 질겅질겅 씹어 삼킬 때 메여오는 목을 모른 척하리라는 결심. 고사리를 싫어했던 어릴 때나 고사리를 좋아하는 지금이나 먹는 데엔 언제나 큰 결심이…….

절벽 끝에서 만나는 고사리의 결심. 엄마는 마음이 복잡할 때 고사리를 꺾으러 나가셨다. 그 마음을 이제 모르지 않는다.

 

<사진 설명: 2006년 8월 1일, 나는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의 야산을 걷고 있었다. 한양으로 향하는 조선 옛길인 삼남 대로의 흔적을 따라가는 도보 여행을 계획하고 진도대교부터 나주까지 걷던 사흘째의 오후, 푸른 벼를 쓰다듬는 바람을 사진으로 담았다. 오솔길, 논둑길, 도로, 마을 길을 지나는 동안 내게 물을 주고, 밥을 주고, 찐 감자를 건네어주며, 때로 잘 곳까지 베풀어 준 사람들을 기억한다.>

 

글 _ 유차, 사진 _ 달팽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 달팽이책방 소식이 궁금하면 여기로!

페이스북 facebook.com/bookshopsnail

인스타그램 instagram.com/bookshopsnail

문의 _ 카카오톡 ‘달팽이책방’

이메일 snailbooks@naver.com

인쇄비 후원 _ 새마을금고 9003-2349-2289-3 김미현(달팽이책방)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