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은 우리가 어딘가에 남기는 흔적이다. 어딘가를 방문할 때, 그 장소에 초대해 준 사람 혹은 이 장소를 찾아올 다른 이에게 전해줄 말을 방명록에 쓴다. 결혼식장이나 돌잔치에는 축하의 방명록을, 에어비엔비나 게스트하우스에는 이 숙소에 대한 간략한 평을 남기고 가기도 한다.

만약 지금 ‘세상’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한 방명록을 쓰라고 하면 과연 어떤 방명록들이 나올까? ‘이 평화로운 곳에서 잘 지내다 갑니다.’ 이렇게 쓰는 사람이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위와 같은 방명록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부러움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 펼쳐질 안녕을 기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방명록’에 누군가는 평화로웠다고 방명록으로 남길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삶의 치열함, 부조리를 호소하는 방명록을 남길 수도 있다.

과거에 마음 아픈 방명록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 있다. 5월의 시작, 노동절 하면 생각나는 한 사람. 전태일이다. 전태일이 세상에 남긴 뜨거운 방명록이 있다. ‘노동법을 준수하라!’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하루 열두 시간, 많게는 열네 시간을 일하면서 일명 ‘노동이라는 이름의 학대’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전태일은 뜨겁고도 고통스러운 분신자살을 하며 세상에 자신의 말을 깊게 새겨놓고 갔다. 그가 남긴 방명록 덕분에 세상은 ‘명분만 존재하던 노동법’을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진 달팽
사진 달팽

 

하지만 현재 노동자들의 현실을 떠올려 보면, 과연 그 타오르던 방명록의 불씨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여자와 남자의 임금 비율 격차는 31.1%로 OECD 가입국 38개국 중 가장 큰 국가로 이름을 올렸고, 민중노동연구원은 정부는 여성 노동 개선의 의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며 분석 결과와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1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노조 간부는 법원 앞에서 분신자살했다. 지금의 정부가 노조를 상대로 압박 수사를 진행한 것이 원인이다.

자살은 한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자살은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부패로 가득한 사회를 향한 마지막이자, 강력한 메시지 전달이다. 전태일의 분신도 그렇고 지난 1일의 분신의 경우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뀌어야 할 세상에 대한 가장 진하고도 안타까운 외침. 노동자들을 위한 강력한 주장의 메시지로 말이다.

 

* 사진 설명: 2013년 가을 추석 연휴의 포항 송도 바닷가. 이 도시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철강 공단은 송도를 더 이상 물놀이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휴일이면 여전히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바다를 보기 위해. 송도의 바다는 오늘날 우리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줄기 속에 다만 변형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곳에 휴일의 하루를 보내는 개별의 일상이 무심히 흐른다. 한낮에도 희뿌연 하늘 위에 둥글게 떠 오른 보름달만이 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있다.

 

 

글_ 김고라니, 사진_ 달팽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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