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자두밭 일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서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서툰 것이 봄 한 철 집중하여서 할 ‘열매솎기’입니다. 

이 열매솎기로 인한 초보 농군의 마음고생은 한층 고조됩니다.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달리는 종자인 ‘추희자두’는 더욱 초보 농군의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알 중 한 알을 두고 나머지 알을 남겨 놓을 한 알에 영향을 주지 않게 조심스럽게 솎아내는 것입니다. 열매 간 거리도 생각해야 합니다. 열매의 병 발생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햇빛의 영향도 고려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민되는 것이 한 가지에 남겨 놓아야 할 열매의 숫자입니다. 적게 남기는 것은 수확량과 직결되고, 많이 남기는 것은 열매의 크기가 작아질 것을 염려하여야 합니다. 열두 번도 더 욕심과 싸워야 하는 갈등을 겪는 것이 열매솎기 작업입니다. 여기에 열매의 색과 잎의 색이 비슷하여 착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노안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애써서 달래면서 하는 것이 열매솎기입니다.

그나마 제 밭의 7할을 차지하는 ‘도담’이라는 자두 품종은 열매솎기가 비교적 수월한 품종이라 시름을 덜어 봅니다.

 

 

‘일이 몸에 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는 법’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쪽 저쪽 일에 동분서주는 하나 실익이 없는 농부인 저는 매해, 매번 때를 놓치고 마음 앓이를 합니다. 자두 농사를 시작한 후 한 번도 흡족하게 열매 열매솎기를 마쳐 본 적이 없습니다.

겨우 열매솎기를 마치고 나니 같은 시기에 닥친 서리피해가 마을 각 과수 농가에서 화제에 올랐습니다. 냉해로 인해 많은 과수 농가들이 열매솎기 작업할 열매조차 없다는 한탄이 나오는데 비교적 냉해가 적은 제 밭의 과실이 대견하기도 하고 금년은 ‘농비’라도 조금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야릇한 욕심도 납니다.

세상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정성 어린 찬과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선한 마음, 사랑하는 그 마음을 먹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의라 불리며 100세가 넘도록 활동을 하신 <장병두>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선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장병두> 선생은 이야길 하셨는데 저의 마음은 내 열매가 조금 낫다고 살림살이가 조금 더 펴질까 하는 얄팍한 계산이 앞서는 것이 걸립니다.

 

얼마 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분이 제게 선물을 하나 보냈습니다.

풍경(風磬)입니다.

불구(佛具)의 하나로 풍경은 바람에 흔들려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정헌호
ⓒ정헌호

 

풍경은 경세(警世)의 의미를 지닌 도구로써, 수행자의 방일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합니다. 풍경의 방울에는 고기 모양의 얇은 금속판을 매달아두었습니다. 즉, 고기가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수행자가 아닌 제게는 촌부의 역할로 내년 열매솎기의 때를 놓치지 말라며 보낸 듯합니다.

또 다른 의미에 풍경은 예전 일반적으로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에서 범이나 산 짐승의 접근을 막게 하며 삿된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찰이 아닌 속가에 풍경 하나 걸어 두고 많은 상상을 해봅니다.

이러면서 제 농사 이력에 나이테를 하나 보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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