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이 지났습니다.아흐레 지나면 춘분입니다.24절기를 축약하면 팔절입니다. 전지(全紙)를 세 번 접어 서 여덟 장으로 나누는 것을 팔절(八折)이라고도 하지만, 한 해 이십사절기 중 중요 맥락마다 있는 절기를 팔절(八節)이라고도 합니다.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입니다. 그 팔절 중 두 번째인 춘분을 재촉하는 봄비가 어둠과 함께 보현골에 찾아왔습니다. 꼭 여름 장맛비처럼 말입니다. 저녁 여섯시 반을 넘기면 해가 지고 아침 해는 여섯시 오십분 경에 뜨니. 얼추 낮밤의 장단이 비슷해져 갑니다. 철을 잊은
시월로 접어드니 일교차가 아주 심합니다.일교차가 심할수록 보현골 아침은 해발에 따라 풍경을 달리합니다. 아래쪽 마을은 자욱하게 농무에 갇혀있고 중산간은 어쩌다 한 줄기 안개가 산정에 걸려 있는 구름과 연결되는 듯합니다. 해가 뜰 무렵이면 아직 남아 있는 산 쪽의 푸름이 역광을 받아 거무스레합니다. 여름 동안의 푸름은 곧 서리를 맞이하고 초추의 양광에 잎이 붉게 익을 준비를 하겠지요. 드문드문 몇 호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사람들의 두런거림이 한 마장 거리에 살고 있는 내 집에 들리는 듯합니다. 요즘 마을 사람들의 주제는 야생버섯 이야
부처님 전생을 묘사한 설화인 《본생담(本生譚)》 중에 생명의 무게는 미물이나 부처나 한 치 다른 것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두어 달 전 집 나갔다 돌아온 생명인 ‘경래’ 때문에 종종 생각에 빠져봅니다. 나와 사무실에 삼 년 넘어 동거한 수컷고양이로 경찰서 하수구에 빠진 것을 데리고 왔다고 ‘警來’라고 부르는 그 녀석이 창가 블라인드 두세 치 되는 틈에 수시로 올라가 바깥세상을 보며 묵상에 잠겨 있는 것입니다. 지난여름 가출했을 때의 짝을 그리는 것인지, 스스로 돌아다닐 수 있는 바깥공기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내가
아직은 자두밭 일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서툽니다.그중에서도 가장 서툰 것이 봄 한 철 집중하여서 할 ‘열매솎기’입니다. 이 열매솎기로 인한 초보 농군의 마음고생은 한층 고조됩니다.열매가 포도송이처럼 달리는 종자인 ‘추희자두’는 더욱 초보 농군의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알 중 한 알을 두고 나머지 알을 남겨 놓을 한 알에 영향을 주지 않게 조심스럽게 솎아내는 것입니다. 열매 간 거리도 생각해야 합니다. 열매의 병 발생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햇빛의 영향도 고려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민되는 것이 한 가지에 남겨
지난가을에 봄을 기약하며 뿌린 밀 이삭이 고양이 수염 같은 까끄라기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밀밭에 단오 전후 오뉴월 즈음, 밀은 누렇게 익어 가고 시내 아이들이 와서 밀 서리를 하는 풍경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의 종달새 같은 재잘거림이 요즘 보기 힘든 보리밭으로부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종달새인 양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어린 새싹의 사람들이 보현 골짜기에 재잘거리며 노는 상상만 하여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우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이 평화일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일 것입니다. 뻐꾸기 울어 울어 밀 이삭이 누렇게 익어 바스러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3월하고도 6일 ‘경칩’이자 보름입니다. 천문의 지혜를 알 턱이 없는 촌부가 경칩과 보름이 한 날에 겹치는 것에 묘하게 끌려 평소 소회를 적어봅니다.지난가을 놀고 있는 빈 땅을 차마 그냥 둘 수 없어 복합비료 두 포대와 함께 이삭이 예쁘게 패는 우리 밀을 뿌렸습니다. 종자 이름이 흑진주를 떠오르게 하는 ‘아리진흑’의 싹들이 봄을 맞아 제법 기운을 차려 500여 평 되는 밭에 푸른 기운이 겨우내 메말랐던 대지를 도포하고 있습니다. 자두 농사를 짓는 시골 농부의 엉뚱한 푼수 짓에 경운기를 몰고 지나던 노인 회장님은
노자는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제가 글을 배우는 선생님이 우스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사 걸릴 것 없이 사는 은해사 운부암 선원장으로 있는 모 스님보다 속세에서 부대끼며 사는 우리네 장삼이사가 고행의 바다에서 ‘도’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신혼 초를 제외하면 평생 의사소통에 풍파를 일으키는 데면데면한 부부간의 문제(조심스럽게 말한 것임), 어릴 때는 더없이 귀하다가도 커가면서 기쁨 3 고뇌 7로 변하는 부모 자식 간의 문제, 한평생 먹고사는 것에 얽매여 이러지도 저러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춘추시대 장삼이사들의 살던 모습이 어느 날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비 효과라고 해야 할까요. 정지창 선생의 페북 글에 소개된 현대 중국 작가 ‘옌롄커’의 소설을 살피다가 이라는 소설에 눈이 갔습니다. 이 시경에 관한 소설이라, 읽다가 버려둔 ‘우응순’ 선생의 에 다시 눈을 두었습니다. 장삼이사들의 삶이 곡으로 내려오다가 곡은 사라지고 글만 남았습니다. ‘공자’가 삼천여 수의 시를 삼백여 편으로 줄인 것을 우리는 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
‘용’에게 밥을 주다.제가 매주 수요일 저녁 다니는 서당은 한 번씩 툭툭 알밤이 저절로 떨어지듯 기발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시대의 이야기꾼 의 ‘기’ ‘용’ ‘도’ 이야기 등은 책으로만 접할 수 있는 간접경험이라 상상력이 떨어지는 제게는 재미에 한계를 느낍니다. 그러나 서당에서의 이야기는 시대의 이야기꾼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장성이 있는 것이라 가슴이 더 두근거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제가 들은 것을 하나 먼저 꺼내보겠습니다.저와 같이 글을 배우는 도반으로 붓을 잡은 지 20여 년이 넘은
아들 있어도 헛것今年還甲子*병상 식탁에 마주 앉아유기그릇에 담겨 나오는 병식을서너 숟가락 억지 식사 수발을 들고는한 그릇 같은 남은 밥을“너도 저녁 먹어야지”라는아흔하나 노모의 눈빛 강권에노모의 에너지원을게눈 감추듯 제 밥처럼 넘겨버린 아들병간호를 핑계로 보조 침대에서‘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는 아들한 달째투병으로 겨우 털끝만 한 기력을 되찾으신 아흔하나 노모는그 아들이 깰까 봐굽은 허리 지팡이에 의지하여화통 같은 아들 코골이를 기운 삼아혼자서 작은 볼일을 보고 오셨고 *‘환갑 맞은 아들’이라는 뜻.
2022년 올해의 간지는 임인년(壬寅年).저는 열한두 살쯤 아버지로부터 천자문 맛보기 공부를 하였습니다. 20대 초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할 때 부산 사상의 한 서예 학원에서 두세 달 간 보기 서예 공부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가뭇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쉰 즈음에 ‘채약서당’ 문하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채약’선생님으로부터 ‘야담(野潭)’이라는 호를 받은 것이 공부를 하고 일 년이 지난 임진년(壬辰年)입니다. 같은 ‘壬’자 돌림으로 꼬박 10년 차입니다.장황하게 볼 것 없는 과거사를 늘어놓은 것은 채약서당 입문을 하고 그 서당
영천 영동교 다리 상·하부 야간조명에 10억의 예산이 들었다고 한다.화려한 야간조명이 유한한 자원인 화석 연료를 갉아 만든 전기로 미래의 세대에게 환경적 부담을 지워도 될 만큼의 중요한 사업인가? 10억 예산을 들여 만든 후진성을 띤 공공시설물이라니! 우리 시민의 미적 감각과 앞서가는 환경의식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닌가? 지난 대선에서 회자된 RE100의 가치를 여기 지방 소도시 영천시청은 무시해도 되는가?현재 영천시민과 미래세대의 영천시민에게 시 관계자와 예산을 승인해 준 의회 관계자는 알량한 세비와 행사의 앞줄에 설 수 있
경칩이 지나 밭 한쪽 샘이 솟는 웅덩이에서 기세 좋은 개구리울음이 들리더니 지난밤 내린 비로 울음의 성량이 줄어 겨우 들릴 듯 말 듯 합니다. 산 이마에는 상고대가 핀 것처럼 서설이 쌓여 있고, 산 아래에서는 는개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경자와 신축의 모진 영하의 바람을 견딘 운룡매가 시절이 닿았음인지 매향이 저의 코에 닿을 듯 말 듯 한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우중이라도 지붕 없는 마루 쪽 창을 열면 산새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 보름 정도면 온 밭에 ‘오얏꽃’ 향이 퍼질 것입니다. 지난해 봄 은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