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글을 배우는 선생님이 우스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사 걸릴 것 없이 사는 은해사 운부암 선원장으로 있는 모 스님보다 속세에서 부대끼며 사는 우리네 장삼이사가 고행의 바다에서 ‘도’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신혼 초를 제외하면 평생 의사소통에 풍파를 일으키는 데면데면한 부부간의 문제(조심스럽게 말한 것임), 어릴 때는 더없이 귀하다가도 커가면서 기쁨 3 고뇌 7로 변하는 부모 자식 간의 문제, 한평생 먹고사는 것에 얽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직장 내 조직원들과의 갈등 문제, 오지랖 넓게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어 정의롭지만 평생 정치, 환경, 인권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으며 사는 사람들, 이러한 우리네 장삼이사들이 훨씬 더 진흙밭에 뒹구는 수행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데, 운부암 높은 스님이야 오니의 밭에서 연꽃처럼 살아가니 수행의 조건이 ‘기울어진 운동장 같다’는 우스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실제 저도 우스개 이야기에 상당 부분 심적으로 동의를 하는 바입니다.

 

평소 종교인에게 약간의 부정적인 시각을 바탕에 깔고 종교인을 대하는 저의 자세가 그들로서는 형편없는 ‘마구니’로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심 깊은 불자도 아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며, 총 30편 114장 6,342구절로 된 ‘꾸란’(‘코란’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 맞지만 <황하에서 천산까지>라는 책에서 굳이 ‘꾸란’이라 표현한 것을 인용함)을 암송하며 돼지고기를 멀리하는 무슬림도 아니고, 거기다가 그들이 내세우는 교리인 천지창조나 윤회를 믿지 않고, 조상을 기억하고 기제사를 착실하게 지내지도 않았으며, 명상을 통해, 기도를 통해, 아니면 접신을 통해, 교육을 통해, 조상의 음덕조차 통하지 않고 무신론자, 유물론자에 가깝게 뻣뻣하게 환갑에 이르도록 살아왔습니다.

돌팔이처럼 뻣뻣하게 살아오던 먹물 같은 인생관에 갑자기 노란 페인트를 덧칠하는 계기가 임인년 동짓날, 일 년에 서너 번 차 한잔하러 들리는 작은 절에서 팥죽 한 그릇 얻어먹고, 저보다 네 살이나 젊은 비구니 스님과 세상사 이야기를 하던 중 발생했습니다.

그 스님이 툭 던지는 ‘쨍’하는 골짝 바람 같은 말을 한마디 듣고 돈오돈수의 경지에서나 나올법한 체험을 환갑의 나이에 겪다니……. 

스님 앞에서 ‘쪽팔림’을 당하기 싫었는지 다 아는 것처럼 쿨하게 한번 웃고 나와서 절의 초입 느티나무 아래에서 혼자 바보처럼 장딴지를 ‘탁’ 치고, 스스로 머리를 ‘탁’ 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아마 저역시 장삼이사의 수준이라 그리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사진 정헌호
사진 정헌호

 

그 절은 큰 산과 가깝게는 있었으나 신도들의 청에 의해 그들 조상의 제를 지내주고, 중생들의 인생사를 두루뭉술하게 상담 정도 해주는 약간의 속된 표현을 하자면 ‘주식회사 00사(寺)’에 가까운 절이라 여겼습니다. 절과의 인연은 시내에서 큰 산 아래에 있는 자두밭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내 어머니와 같은 노 보살님을 십여 년 알아온 정과, 존경심은 없고 내가 차 한 잔이 그리울 때 들러서 합장 인사하는 정도로 지내왔지만, 이것 외의 특별한 신심을 내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후를 털고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 선생님, 팥죽은 맛있게 드셨소?”

“예, 스님 오늘이 마침 음력으로 동짓달 스무아흐레인데 더군다나 제 환갑 해의 생일이라 집에서 얻어먹지 못한 팥죽을 여기서 잘 먹었습니다.”

“아, 그래요? 무척 다행입니다. 동짓달에 태어나셔서 머리도 좋으시고 이리저리 내년의 운수도 좋아 보이오. 전생에 정 선생님 좋은 일을 많이 하셨던 모양입니다.”

“에이, 스님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흐흐 동짓달에 태어났다고 머리가 좋다면 우리나라 인구 십이 분의 일은 다 머리가 좋게요? 허허 저는 전생 같은 것을 안 믿어요.”

“어째서 전생이 없다 하시오.”

"아이고, 내 전생에 무엇을 했다 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정 선생 어제도 전생, 지난가을도 전생, 십 년 전에도 전생, 정 선생이 기억을 못 하는 60년 전의 젖먹이 때도 전생인데 어찌 전생이 없다 말씀하시오?

“…….”

 

스스로 장딴지와 머리를 ‘탁’ 치게 한 말은 

“… 정 선생이 기억을 못 하는 60년 전의 젖먹이 때도 전생인데 어찌 전생이 없다고 말씀하시오?”

지금까지의 내 금생은 어머니 품으로부터 나와서 환갑의 나이까지 살아온 것이고, 내가 인지한 전생은 내 어머니 품속에 잉태가 되기 전의 그 무엇을 전생이라 여겼는데 그 기준이 여지없이 깨진 순간이었습니다. 모호한 기준이 될지 몰라도 짐작할 수 있는 내일은 내생(來生)이 되는 것입니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이러한 말이 있었습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사람 살다 보면 곳곳에 뛰어난 고수가 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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