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에 봄을 기약하며 뿌린 밀 이삭이 고양이 수염 같은 까끄라기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밀밭에 단오 전후 오뉴월 즈음, 밀은 누렇게 익어 가고 시내 아이들이 와서 밀 서리를 하는 풍경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의 종달새 같은 재잘거림이 요즘 보기 힘든 보리밭으로부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종달새인 양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어린 새싹의 사람들이 보현 골짜기에 재잘거리며 노는 상상만 하여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우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이 평화일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일 것입니다. 뻐꾸기 울어 울어 밀 이삭이 누렇게 익어 바스러질 때까지 어린 사람들의 놀이터로 저의 밀밭을 내어준들 어찌 아깝겠습니까.

지금 영천에는 제 밀밭의 밀 이삭 숫자만큼 대구 군부대 영천 이전 유치를 기원한다는 현수막이 시내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안으로 경북의 다른 도시는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는 골짜기에 사는 촌부로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영천시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 날 리가 없다고 짐작합니다. 현수막만 본다면 모든 영천시민이 다 대구의 군부대가 영천으로 이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관 주도 행정에 눈치를 보느라 차마 군부대 유치를 “나는 반대하오.”라고 의견을 내민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슬아슬하게 10만 인구를 유지하는 인구 문제를, 시세(市勢)의 축소보다 가진 밥그릇이 쪼그라드는 것이 안타까운 본질이겠지만, 소도시 지방자치 단체로서는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려면 군부대 유치라는 달콤한 유혹을 차마 떨치지를 못할 것이라는 짐작은 해봅니다. 이렇듯 인구 문제를 군부대 유치라는 것으로 한 번에 해결하려는 것은 아랫돌을 빼내 윗돌에 괴는 처사로 요행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지 않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듯 보입니다.

1400여 년 전 중국 당나라 정관 연대(貞觀年代)의 선사 ‘한산(寒山)’이 지은 시구에는 <늙은 쥐가 쌀독의 달콤한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여 쌀독으로 들어갔으니, 비록 배는 부르나 다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老鼠入飯瓮雖飽難出頭)>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도, 사회도, 나라도, 민족도, 생물도, 무생물도, 지역도, 모든 것은 생장 노사(生長老死)를 겪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개인이나 사회가 이 생장 노사의 현상을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문제이지 우리는 무한 성장을 하여야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가까이는 70년 전 영천은 당시 기득권층의 탐욕으로 민중들이 피를 흘리는 희생을 겪었고 한국전쟁의 격전장으로, 골짜기마다 무고한 희생이 있었으며, 100여 년 전에는 산남의진(山南義陳) 의병들이 고을 곳곳에 피를 흘린 곳이 영천입니다. 멀리 임진왜란 시 영천의 의병들이 피를 흘린 곳 또한 곳곳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영천의 공병군부대가 영천을 떠나는 것이 숙원사업이라며 시민들에게 홍보를 하였던 것이 지금의 행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율배반적으로 <메모리얼파크>라는 알 듯 말 듯 한 명칭의 전쟁놀이공원을 시내 중심에 설치를 한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구시는 대구 시민들의 안전 문제와 경제적 효과라는 일부 정치권의 궤변에 따라 필요치 않은 군부대를 타지로 옮긴다고 합니다. 경북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를 지역 발전의 호재라며 떨어지는 떡고물을 탐내듯 합니다. 그 와중에 별스럽게도 영천에서는 명당의 개념이 무색하게 ‘군사적 명당’이라는 어설픈 현수막을 영천의 길목에 설치를 한 뱃심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수년 전 대구 군공항의 영천으로 이전이 화제에 올랐을 때 대구 군공항은 영천으로 와야 한다면서 <대구군. 민간공항 유치 기자 회견장>에 모여 있던 지역 유지들의 기름진 얼굴을 보았던 것이 묘하게도 작금에 겹쳐져 씁쓸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관내에서 당연하게도 부동산을 포함한 부의 기반이 있겠지만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에 또한 생활기반을 두었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이제는 평화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중앙아시아 동부 산악지대에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탄생한 공화국입니다. 그 나라의 수도, 빅토리 광장에는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상』이 있습니다. ‘평화는 전쟁이 아닌 그 전쟁에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어느 평론가가 이야기하였습니다.

<키르기스> 민족은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실크로드의 길목에 거주하며 유목 생활을 영위하여 기록이 부재하고 많은 사서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을 정도의 문화적으로 약간은 빈약하다고 할 나라입니다. 그러한 나라의 수준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인지 염려가 됩니다.

국방도, 군사력도, 중요합니다. 밑바탕이 되는 군사 도시도 중요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평화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삼산이수(三山二水. 영천의 ‘보현산, 팔공산, 채약산’과 금호강의 원줄기인 ‘자호천, 고현천’) 골골이 쌓여있는 전쟁의 폭력성에 의한 민중의 상흔을, 평화로 또는 그 평화를 테마로 한 도시행정으로 시민들의 심성을 화기롭게 변화토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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