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로 접어드니 일교차가 아주 심합니다.

일교차가 심할수록 보현골 아침은 해발에 따라 풍경을 달리합니다. 아래쪽 마을은 자욱하게 농무에 갇혀있고 중산간은 어쩌다 한 줄기 안개가 산정에 걸려 있는 구름과 연결되는 듯합니다. 해가 뜰 무렵이면 아직 남아 있는 산 쪽의 푸름이 역광을 받아 거무스레합니다. 여름 동안의 푸름은 곧 서리를 맞이하고 초추의 양광에 잎이 붉게 익을 준비를 하겠지요. 드문드문 몇 호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사람들의 두런거림이 한 마장 거리에 살고 있는 내 집에 들리는 듯합니다.

 

사진 정헌호

요즘 마을 사람들의 주제는 야생버섯 이야깁니다.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고, 사과가 붉게 익어가는 들이야기가 아닙니다. 산 이야기입니다. 송이버섯, 능이버섯. 싸리버섯, 노루궁뎅이버섯, 먹버섯, 만가닥버섯, 밤버섯 등 이야기가 끝이 없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무료한 시간에 그들의 버섯 채취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가 산을 올라가서 직접 체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감 납니다. 주인 있는 산에 잘못 들어가서 이웃 간의 다툼으로 얼굴 붉힌 이야기, 버섯이 나는 자리는 부자간에도 공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겨우 스무 평 남짓한 솔밭에서 한 가방의 버섯을 땄다는 이야기, 이름과 모양이 예쁜 노루궁뎅이 버섯이 실제 무색무취해서 맛이 없다는 이야기, 버섯 채취에 한 번 빠지면 평생 버섯 철에는 ‘산몸살’을 한다는 이야기, 홀로 버섯 채집 갔다가 멧돼지를 만나 기싸움을 했다는 이야기, 불과 두 달여 사이에 채집되는 능이버섯의 색이 첫가을에는 진한 갈색에서 늦가을 무렵에는 흰색으로 변한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구름이라도 끼인 날이면 익숙한 지형의 산이라도 자칫 길을 잘못 들어 반대편 쪽으로 갔다는 이야기, 어쩌다 운이 좋은 날에 얼굴만 한 영지버섯을 땄다는 이야기, 반나절을 해발 팔구백 고지를 헤매고 다니면서도 엄지손가락만 한 송이버섯 서너 개를 따는 빈약한 수확에도 다음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다시 산을 오른다는 이야기 등을 듣다 보면 내 온몸이 근질거립니다. ‘내일은 꼭 따라나서봐야지’라면서 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이 해발 350 정도입니다. 맞은편 산정에 있는 큰 바위 쪽 능선이 목표입니다. 해발로 8~900백 고지 전후입니다. 큰 바위의 모양이 바위 아래쪽이 범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고 하여 ‘범아가리바위’라 불립니다. 출발하기도 전에 송이, 능이의 향기가 코끝을 맴도는 듯합니다. 산을 오르기에는 등산화보다 목 긴 장화가 좋다는 이웃들의 경험치를 받아들여 장에서 2만 원에 발에 맞는 장화를 장만하였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셈입니다. 그동안 차 안에 둘둘 굴러다니던 등산 스틱도 꺼내어 점검을 했습니다. 물과 김밥도 준비했습니다.

경사가 3~40도가 되는 버섯 꾼들이 다니는 길로 숨을 헐떡이며 700고지의 목표지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이야기하는 버섯 채취 방법을 내 머리에 꼬깃꼬깃 입력해 놓았습니다. 이제 현장에 도달하였으니 정보를 출력하면 될 듯합니다. 두 눈에 기를 넣고 소나무, 참나무 아래를 훑어보면 될 듯합니다. 한 시간을 집중을 하여도 바싹 말라가는 이름 모를 독버섯만 보입니다. 아무리 살펴도 내 눈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 친구들이 그들이 발견한 송이버섯을 내가 딸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 전부입니다. 싸리버섯도 그들이 일러주어서 작은 것 서너 송이 채취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산새들이 휘리릭 휘리릭 울며 지나갑니다.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내 눈에 보이는 버섯은 없었습니다. 흘러내리는 두어 군데의 능선을 위태위태 건넜습니다. 굴참나무 낙엽이 장딴지 높이만큼 깊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립니다. 골반 쪽에도 통증이 옵니다. 수년 전 공장에서 탁구를 치다가 미끄러져 무릎 연골이 파열되어 반월상 연골을 들어낸 수술을 한 것이 그제야 생각이 납니다.

이웃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엉금엉금 산을 내려왔습니다. 이웃 친구들이 내개 영양 보충하라며 그들이 채집한 송이버섯 일부를 내게 주섬주섬 챙겨 줍니다. 진통소염제, 근육이완제를 사 먹고 냉찜질 파스도 붙이고 호들갑을 떱니다. 철철이 산을 오르내리는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꼭 인정해야겠습니다. 스스로 꼬임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보현산 ‘범아가리 바위’가 올려다보이는 기룡산 촌부의 집에서 어제의 실수를 잊고자 책을 봅니다.

중국공산당 초기 멤버인 ‘진독수(陳獨秀)’의 글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진독수’를 존경하고 따르는 ‘유해속(劉海粟, 중국현대화가)’이라는 화가가 ‘장개석’에 의해 감옥에 갇힌 ‘진독수’를 위로하기 위하여 중국 안후이성에 있고 1990년 세계문화유산에 복합유산으로 등재된 황산을 그려 면회를 갔습니다. 아마 황산만큼 당신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그렸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림을 감상한 ‘진독수’가 그림 한쪽에 화제를 써줍니다.

 

黃山孤山 不孤而孤

孤而不孤 孤與不孤

各有其境 各有其圖

황산은 외로운 산

외롭지 않은 것 같으나 외롭고

외로운 것 같으나 외롭지 않다

외로운 것과 외롭지 않은 것은

각각 그 경계가 있고

각각 그 숨은 뜻이 있다.

-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외로움이 주제가 되는 대화가 나오면 저는 으레 이 글을 인용합니다.

평일 저녁이면 시내 교통 요충지에서 두어 달째 외로이 일인 시위를 합니다.

일본이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우리네 앞바다를 포함한 모두의 바다에 폐기하는 것을 현 정부는 자국의 세금을 들여 ‘무해하다’고 홍보를 합니다. ‘과학적으로 무해하다’고 식약청의 자료를 숨기며 비과학적으로 말을 합니다. 힘 없는 산골 촌부가 시위를 한다고 당장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경계와 그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욕심 딸린 버섯 산행으로 외공(外功)에 손상을 입었습니다. 당분간 산행은 힘들 것 같습니다. 외로이 일인 시위를 해야겠습니다.

가을 햇살 사이로 ‘뎅그렁’, ‘뎅그렁’ 풍경 소리가 훑고 지나갑니다. 워낭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 꼬임 : 타인의 욕심이 목적이 된 상대가 있는 타발적 꼬임, 나의 욕심 때문에 생긴 어리석은 자발적 꼬임, 일의 진행이 얽힌 꼬임, 창자 따위가 꼬여서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 꼬임, 꼬임이 충족 조건이 되는 실의 꼬임 등 꼬임의 종류를 두루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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