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반복되는 일상(日常)은 나에게 소중하다. 그 일상이 지루하고 버겁고 재미없고 심지어 남루하더라도 말이다. 일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일단 내 몸이 건강하다는 것이고, 내 가족이 무탈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상을 꼬박꼬박 소화해냄으로써 경제적 제약을 해결해 내는 것이다. 필요한 의식(衣食)을 해결하고, 공과금도 납부하고, 가끔 책을 구입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조금씩이나마 기부 행위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일상은 내 삶 자체일 수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고 업신여길 수도 없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소중하다. 일상에서 벗어난 비일상(非日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 공간과 시간을 잘 이용하여 오롯한 나를 이룰 기회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런 비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자신만을 위한 그 무엇은 내 소중한 일상을 뒷받침해 주기도 하고 견딜 수 있게 해주기도 하며 삶의 조화로움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비일상이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일상의 틈새에 마련한 비일상의 소중함은 다른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굳이 설명해 줄 필요도 없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삶의 필요조건이다.

얇은 잡지나 독립출판물처럼 짧은 시간에 살펴볼 수 있는 읽을거리를 들고 카페를 찾아 차 한 잔 마시기, 사람이 드문 시간에 영화관을 찾아 주전부리하며 영화 한 편 보기, 가로수가 많아 그늘이 넉넉하고 바람이 시원한 산책길을 찾아 걷기, 방 안에서 혼자 책상 앞에 앉아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팟캐스트 듣기, 두툼한 책 한 권을 가슴에 얹고 침대에 누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 보기, 한동안 잊고 있던 맛집에 들러 배를 든든하게 채워보기, 가끔 참여하는 독서 모임의 책을 읽으며 생소한 단어와 낯선 개념 용어들을 찾아보며 정리해두기, 집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화분의 식물들을 계절에 따라 관리하며 가만히 살펴보기 등등.

 

이런 소소하고 작은 일들은 나에게 비일상이 된다.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비일상은 의도치 않게 우연히 일어나는 어떤 사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비일상적인 일들은 일상의 루틴(routine)한 일들과는 분명 경계가 있을 것이다. 일단 타인과의 (피곤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누구의 눈치를 살펴야 하거나 내 말과 행위의 타당함을 누군가에게 설득해야 하거나 어떤 결과물이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래야 하는 일이라면 그때부터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여갈 것이고 정신적 빈곤함을 향하는 삶의 태도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의도적으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마련하는 비일상은 정신적 충만함을 위한 고요함일 수 있고 일상의 틈새에 끼워진 작은 쉼표처럼 휴식일 수 있다.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이면서 일상이 주지 못하는 정신적 고양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약간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과 공간이면서 어쩌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짧은 여행일 수 있다. 훌륭한 여성 시인의 출현을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쏜살문고)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찻잔 속의 태풍’이 될 수 있는 자신만의 소중한 비일상이 필요하다.



글 _ 뚜버기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 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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