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포스터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포스터

 

점점 더 민간인,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혹해지는 국제분쟁

전쟁은 참전했던 군인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기지만 민간인, 특히 아이들에게는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성장과 보호를 송두리째 빼앗는 ‘순수 악’이다. 게다가 한번 파괴되고 나면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한 상흔을 남긴다. 차라리 고대의 전쟁은 널찍한 들판에 쌍방이 진을 치고 건장한 남성을 가려 뽑아 우워어어어~ 구령을 외치며 서로 달려들어 몇 시간 만에 승부가 난다는 점에서 깔끔해 보일 지경이다. 지금은 비전투원인 민간인을 공격해 여론을 악화시키고 전쟁 수행능력을 감소시켜 대가를 얻어내려는 ‘피 흘리는 정치’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속 내용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훨씬 더 정확해진 셈이다.

(한국전쟁 이후 휴전 상황 + 잊을 만하면 터지는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참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전한 치안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사회 구성원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이들이 세계 곳곳에 적지 않다. 물론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적 상황이거나, 혹은 부정부패와 해당 사회 자체 모순으로 인한 인재인 경우도 많지만 21세기 들어 유독 내전 혹은 국지전 형식을 띠는 분쟁이 늘어난 것은 지극히 우려스러운 문제다. 아마 그런 ‘전쟁’ 중 가장 대표 격인 상황이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일 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발발한 게 아니다. 1991년 소련연방 해체 이후 평화롭게 세계질서가 재구성되지 못한 데에서 불씨가 당겨진 위기다. 2014년 ‘유로마이단’ 시민혁명 직후, 친 서방 vs 친 러시아 진영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우크라이나 정치 구도가 친 서방으로 급격하게 기울자 그동안 친 러시아 세력을 후원하는 데 만족하던 러시아는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가 서방 진영에 속하는 걸 훼방하려 했다. 곧바로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했고 이어 동부 분리주의 세력을 노골적으로 후원해 ‘돈바스 전쟁’이라 불리는 내전을 조장했다. 전쟁은 이미 거의 10년 전부터 진행되다 전면전으로 전환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당연히 남한 면적을 초과하는 광대한 영역이 장기적인 분쟁과 점령지역이 된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시민들이 겪는 고초는 상상조차 힘들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평화롭고 안정된 시간을 보낼 아이들의 박탈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격화되면서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해 국외 곳곳에 이산된 상태다. 아무리 3세계 난민보다 유럽의 대처가 기민하고 온정적이라곤 하지만 타향에서 눈칫밥이 편안할 리 없다.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포스터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포스터

평범함을 거부하는 묵직한 전개의 단편 다큐멘터리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단편 다큐멘터리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는 그런 피난민 대책 중에서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단체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난민 가족을 조명한다. 10살이 된 귀여운 외모의 소녀 ‘밀라나’는 비슷한 처지의 난민 청소년들과 함께 중동부 유럽의 소국 슬로바키아에서 난민 생활 중이다. 겉보기에는 비교적 나은 처지로 보인다.

밀라나는 할머니 ‘올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런 소녀에게 오스트리아 알프스 등산 프로그램이 제안되고 밀라나는 할머니와 함께 일행에 합류한다. 여기까지 내용을 본다면 전쟁의 상처를 잊고 웅장한 알프스산맥 경치와 함께 아이들이 치유되는 풍경을 관객은 자연스럽게 상상할 테다. 미국과 서구세계의 독지가들 후원에 힘입어 가능했다는 크레디트 로고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빤한 경로를 취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밀라나가 등반 일정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냥 숙소에 머물고 싶다는 것이다. 한창 고집부릴 나이다. 일행 중에는 목발을 짚은 장애인도 보이는데 난민 신세에 기껏 드문 기회 참여해놓고 아이가 변덕이 심하다고 고까운 시선도 생길 법하다. 하지만 아직 이 영화는 감춰둔 게 많이 남았다.

밀라나는 할머니 올가의 설득에도 성질을 부리며 거부한다. 좀 되바라진 아이 같다. 할머니가 차분하게 권유하는데도 밀라나는 공격적이고 섬뜩한 답을 툭툭 내던진다. 애늙은이를 넘어 저 아이가 대체 어떤 시간을 거쳐 왔을까 불안해지는 순간이다. 난민 신세라 어린아이에게 삶이 팍팍한 건 알겠지만 좀 심하다고 느껴질 즈음, 제작진이 그동안 공개하지 않던 현실이 한 꺼풀 벗겨진다. 밀라나의 한쪽 다리는 의족이던 것이다.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스틸(by 넷플릭스)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스틸(by 넷플릭스)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애잔한 사연이 밝혀지다

할머니 올가에 의해 밀라나와 가족의 사연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 가족은 2014년 크림반도에서 러시아군의 침공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들은 급히 집과 생활 근거를 포기한 채 인근 대도시인 마리우폴로 이주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 가족에게 악의를 가득 품은 듯 쫓아오기 시작했다. 크림반도 정복에 끝나지 않고 우크라이나 동부 전체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 속에서 올가는 딸을, 밀라나는 엄마를 잃고 말았다. 밀라나는 엄마를 잃은 바로 그날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한쪽 다리를 잃었다. 이제 2살 된 아이가 겪어야 했던 일이다.

의족이 불편하긴 해도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 적응하긴 했지만, 육체의 상실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린 밀라나가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할머니 올가는 어떻게 엄마의 공백을 둘러대야 할지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사했던 마리우폴 역시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함락되고 만다. 이 가족은 다시 그동안 일군 것들을 버린 채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밀라나는 두 번째 고향도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런 과거사가 밝혀지고 나면 밀라나에 대해 가졌던 원망이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바뀌고도 남을 만하다.

올가는 전문적인 의료 인력의 조언을 청하며 사춘기에 들어서는 밀라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한다. 올가 역시 치유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도 이 우크라이나 난민 가족은 다른 난민 그룹에 비하면 처지가 낫다고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을 법하지만 말이다. 이들을 지원하며 알프스 등반 프로그램을 인솔하는 가이드도 있지 않은가?

이제 그 가이드의 비밀스러운 과거가 밝혀질 차례다. 가이드 ‘앤디’는 중년의 단단한 체구를 가진 미국인이다. 그는 자신 또한 전쟁을 겪었다고 한다. 미군 소속으로 이라크 등에 3번이나 파병을 다녀왔고 지울 수 없는 전쟁 후유증을 얻었다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39살이 되어서야 PTSD 치료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받기 시작했고 등산을 통해 대자연의 기운으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시작할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그래도 어른이지만 밀라나 같은 아이들의 기회는 어떻게 보상하느냐 토로할 때 앤디의 눈가엔 눈물이 맺힌다. 그는 자신이 이라크에서 현지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노릇도 했을 거라며 고통에 잠긴다. 밀라나와 올가, 앤디의 사연이 영화 중반부에서 치고 나와 줌으로써 그저 서방 구미에 맞는 적당한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전쟁이란 폭거에 맞서는 미약하지만 단호한 저항의 몸짓으로 등산의 가치가 확정되기에 이른다.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스틸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스틸

아이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용기를 불어넣는 알프스 대자연의 멋

그리고 상처를 잔뜩 입은 채 웅크린 곰 같은 밀라나를 주변에서 챙기는 과정이 묘사된다. 손녀의 근황이 염려스러워 안절부절못하는 올가에게 심리전문가들은 밀라나가 서서히 독자적 주체로 자립하는 과정이란 점을 주지시킨다. 걱정되더라도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며, 오히려 과보호가 역효과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올가는 그동안 딸 대신 손녀를 돌보고 생활을 책임지느라 정작 자기의 고충은 토로할 길 없었던 고립에서 아주 약간 벗어나 숨 돌릴 틈을 얻는다.

계속 피난을 다니느라 밀라나는 친구를 사귀거나 단체생활을 할 경험을 거의 얻지 못했다. 그래서 대인관계도 서툴다. 하지만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그런 학습과정은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성질의 것이다. 그런 부재를 비슷한 고통을 겪은 프로그램의 다른 구성원들이 포착한다. 또래 아이들은 밀라나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수줍어하다 덜컥 안기는 찰나가 애틋하다. 경험치 만렙인 아이들은 밀라나가 의존적이게 만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세밀하게 돌볼 줄 안다. 가이드는 일대일로 밀라나를 담당하며 암벽에 도전할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런 정교한 배려 덕분에 밀라나는 자신을 둘러싼 체념과 침잠을 돌파해 웅장한 알프스의 절벽에 도전할 용기를 얻게 된다.

여기에서 <사라지는 곰들의 땅> 등 수작 자연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감독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웅혼한 자연과 거기에 도전하는 상처받은 이들의 비교는 대립이 아니라 마치 대자연이 그 피조물을 위로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밀라나는 처음엔 잔뜩 겁을 먹었지만, 그 나이 아이들이라면 일단 공포를 극복하면 놀라운 용기를 내게 마련 아닌가.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무엇 하나 이뤄본 적 없던 난민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 해내는 체험을 쌓아간다. 비록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알프스 정상에서 휘날리며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화가 오기를 기도하며 삶을 이어간다. 30여 분 남짓한 단편 다큐멘터리에서 무엇을 더 바라랴.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단면적이라는 의구심을 품을 이들도 나올 법하다. 단편영화 속에서 보이는 풍경은 분명히 긍정적이지만 운 좋은 일부에게만 부여되는 기회인 것도 맞다. 그리고 어릴수록 상대적으로 회복이 빠른 측면도 명백하다. 그렇다면 다른 각도로 조명해 비교해 볼 법한 작품은 없을까? 물론 있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스틸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스틸

대중적으로 접하긴 어렵지만, 국내 영화제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작업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그중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선 특별기획전 형식으로 무려 12편의 관련 영화를 소개한 바 있는데, 다양한 작업이 각자의 주목을 통해 그저 언론에서 뉴스 속보로 소개하는 개괄적인 동향을 뛰어넘어 이면을 포착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그중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등 주목을 받았던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는 소재 면에서 특별히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와 겹치는 구석이 많은 작품이다.

영화는 돈바스의 핵심지역인 루간스크 시골 마을 다섯 명의 10대 후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조명한다. 2019년부터 촬영된 영상엔 전쟁으로 피폐해진 동부지역의 참상과 함께 꿈을 잃은 세대에 대한 비애가 가득하다. 또래 같으면 장래희망을 위해 노력할 시기에 이들에겐 그저 하루하루 희망 없이 목숨만 부지하는 영겁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전쟁은 그들 바로 곁에서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린다. 영화의 반전은 그런 와중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던 이들이 후원에 힘입어 히말라야 트래킹에 나서는 순간이다. 돈바스 바깥에 무한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그 가운데 자신들에게도 답답하고 막막한 죽지 못해 사는 인생 외에 희망이 존재함을 깨닫는 뭉클한 찰나다.

하지만 두 번째 반전의 시간이 도래한다. 새로운 삶의 의지로 충만했던 다섯의 고향은 전쟁으로 러시아에 강제병합이 된 상황이라는 후일담과 함께 셋은 국외로 탈출해 난민이, 둘은 소식이 끊어진 채라는, 듣고 싶지 않았던 결말. 그들의 가족 역시 반은 소식을 알 길이 없고 반은 난민이 되었다. 자막을 보고 있자면 그저 아찔해진다. 우리의 안일한 타성, 대책 없는 낙관의 판타지를 때려 부숴버리는 영화다. 전쟁이란 괴물은 미래세대의 꿈을 짓밟는다. 그런 전쟁의 본질을 무엇보다 강렬하게 표상해 내는 작업이다. 매운맛이 너무 강해서 후유증이 심한 부작용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스틸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스틸

 


작품 정보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 Camp Courage

2023, 미국, 다큐멘터리·전쟁

2023.10.15. 개봉, 32분, 12세 관람가

감독 맥스 로우 <사라지는 곰들의 땅>

제공 넷플릭스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We Will Not Fade Away

2023, 우크라이나·폴란드, 다큐멘터리·전쟁

국내 미 개봉, 100분, 전체관람가

감독 알리사 코발렌코

2023 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경쟁

2023 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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