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속 활동지원기관에서 지급하는 추석 선물을 며칠 전에 받아왔다. 2023년 추석의 선물을 2024년 1월이 되어서야 받아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서비스하는 장애인이용자에게 주어지는 선물 또한 받아 전달하였다. 이것은 짐짓 간단한 사실 같지만, 많은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누군가는 선물을 주면 감사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임금으로 받아야 할 것을 돌려서 받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상의 법정수당은 지급하지 않으면서 명절선물은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임금-권리로 받아야 할 돈을 돌려 시혜적 선물로 받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물이라면 상여금이 좋은가 상품이 좋은가? 상품이라면 어떤 상품이 좋은가? 장애인이용자에게도 선물을 준다면 그 선물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하는가? 수년째 명절 선물을 받으면서도 나는 이런 질문들을 해왔다.

활동지원사 중에는 기관에서 명절선물도 안 준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명절 선물보다는 돈으로 줬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다. 선물에는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을 중히 여기는 노동자들도 있어 ‘돈’으로 받는 것보다 ‘선물’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분 중 한 분에 의하면 ‘선물’로 받아야만 기관에 소속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이런 감정은 정말 사람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달라서 ‘정서’의 차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것은 결국 당사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달리 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아무리 선물이 좋아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비교도 한다. 기관마다 선물이 다르면 선물을 비교하기도 한다. 선물의 시장가가 얼마이고, 어디에서 구매했으며, 자신에게 어떤 제품이 얼마나 효용이 좋은지 따지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더욱 선호하는 상품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것은 때론 노사협의회 안건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은 기관에 따라 이 선물을 신념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내가 속한 센터도 그런 센터 중의 하나이다. 매번 명절 선물을 진보적 장애인운동 기금 마련을 위한 명절특판에서 구매한다. 이번에 내가 받아온 선물은 2023년 전장연 추석특판 상품번호 27 델리팜잡곡 2호다. 가격은 3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전장연 2023 추석선물 특판 웹자보. ‘품절’ 표시된 상품이 〈2023년 전장연 추석특판 상품번호 27 델리팜잡곡 2호〉. 이미지 출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장연 2023 추석선물 특판 웹자보. ‘품절’ 표시된 상품이 〈2023년 전장연 추석특판 상품번호 27 델리팜잡곡 2호〉. 이미지 출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회 운동단체들은 운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후원주점을 열거나 수익사업을 한다. 이런 사업에 참여하는 후원자들은 질과 양을 따지지 않는다. 후원주점이나 단체 수익사업의 취지는 개최하는 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고, 참여자들은 후원하고자 하는 단체가 최대한 수익을 남길 수 있도록 최대한 호구가 될 마음으로 참여한다. 지불은 하지만 물질적 향유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참여자의 기본 덕목이다.

그런데 그런 상품을 노동자 복지에 사용한다면 어떨까? 노동자 복지를 깎아 먹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이 독단에 의해 결정된다면 더욱 문제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도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지난 칼럼에서도 제세공과금 명목으로 관련 단체로 활동지원사업 수익금이 흘러 들어감을 지적했다. 선물 구매 과정에도 이와 유사하다. 기관 회계상으로는 선물 구매와 금액으로만 기록이 남겠지만, 특판 목적 자체가 진보적 장애인 운동 기금 마련이므로, 활동지원사업 수익금은 관련 단체 기금 마련에 기여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명절 선물 구매는 특정 단체 수익을 위해 수단화된 과정이고, 선물 수여는 노동자들에게 빼앗은 권리를 은폐하기 위한 은혜가 된다. 이런 사례가 모든 활동지원기관에 적용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노동자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면서도 노동자 복지를 위해서 선물을 추가로 지급하는 기관이 있다면 아주 훌륭한 기관일 것이다. 하지만 기관의 집행 세부내역에까지 공적 관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이미 어떤 변주이기도 하다. 기존에 종교단체가 노동자에게 십일조를 강요해 문제가 됐다면, 이제 운동단체는 권리 삭제를 은폐하고 시혜로 가장하여 신념에 기여할 것을 강제했을 뿐이다.

선물은 구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물을 사는 이유는 주기 위해서다. 우리 노동자들은 선물을 받으러 활동지원기관에 방문해야만 한다.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므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기관에 따라서는 장애인이용자에게도 명절 선물을 주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이용자가 기관에까지 방문하는 것은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배달 노동은 활동지원사에게 무급노동으로 떠맡겨진다.

출근하지도 않았는데 장 보기를 시키는 사례는 너무 흔한 장애인이용자 갑질 사례다. “오는 길에 XX 좀 사다 주세요.”라는 장애인이용자의 출근길 요청은 꽤 곤란하다. 사실상 이용자를 위한 장보기 노동을 수행하는 데 무급으로 수행된다. 이런 요청이 잦아지면 이용자들도 미안해서 활동지원사에게 바우처 카드를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활동지원사가 이용자를 위해 마트에 들어가는 순간에 근무 시작을 기록해도 정부는 ‘부정수급’으로 판단하고 노동자는 범죄자가 된다. 이용자의 카드를 소지하는 것은 부정수급의 소지가 있기에 금지되고, 장애인이용자와 함께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근무기록을 하는 것은 부정수급이라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기준이다.

정부가 말하는 기준은, 이용자를 만나 출근한 후에 장 보기를 수행하라는 것이다. 장애인이용자와 함께 장 보기가 어렵다면 활동지원기관에 보고하고 장 보기를 수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기준에도 출근길에 무언가를 사 오라며 부탁하는 장애인이용자들은 흔하다. 출근길에 소모되는 시간은 너무 쉽게 판단되고 오는 길에 무언가를 사 오는 무급노동은 장애인이용자들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문제다.

그런데 활동지원사의 무급노동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명절 선물을 대하는 활동지원기관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오는 길에 XX 좀 사다 주세요”와 “가는 길에 선물 좀 갖다주세요”는 너무 완벽하게 대칭되는 한 쌍이다. 활동지원기관의 선물 전달이 활동지원사의 업무에 해당하기는 하는가? 선물 배달시간은 근무시간에 왜 해당하지 않는가? 활동지원기관들은 활동지원사에게 왜 이런 업무를 어떻게 시킬 수 있을까? 오히려 기관의 선물은 장애인이용자의 집으로 택배 배달을 시키는 것이 상식적이고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추석선물을 뒤늦게 받아 들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다. 적어도 나에게 활동지원사의 명절 선물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내가 이 추석선물을 3달이 지나 받아 들게 된 것도, 서류 업무와 기관 방문이 무급으로 상정된 제도적 문제, 해당 시간에 대한 유급화를 회피하는 활동지원기관의 자체 정책 결과다. 노동자로서 방문의 의무가 없으니 3달이 지나서야 물품을 수령한다. 마침 단말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더 늦게 수령했을 수도 있다. 활동지원제도의 근간 자체가 돌봄노동자의 무급노동 위에 서 있다. 정부도 활동지원기관도 이에 대한 문제 인식이 있을까? 저항하지 않는 존재는 존중받지 못한다.

 

 

글 _ 전덕규

2011년부터 장애인활동지원사 일을 하고 있다. 적게 일하고 조금 벌고 취미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의 노동조합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https://litt.ly/ndaukr)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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