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변화

 

아기별꽃

 

밍기적 밍기적하며

오전을 그냥 다 날릴 작정인 게다.

눈뜬 지 몇 시간째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면서

기차 꼬리처럼 줄지어 선

집안일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싶다.

 

어영부영 밥때는 다가오고

밥은 하기 싫고

참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누가 대신해 줄 사람도 없다.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

이불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꼴이라니

진짜 꼴같잖은 모양새다.

 

어제 걷어온 빨래가 마르지 않아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이놈부터 해치우자.

차곡차곡 개어두고

 

점심 준비

이건 이래서 하기 싫고

저건 저래서 하기 싫으니

이걸 어째야 하나 싶다.

 

간단히 있는 대로 먹자.

지난 추석 때 들어온 구운 김 한 봉지 뜯고

언제나 만만한 계란 스크램블

냉장고 자리하고 앉은 밑반찬

어제 담근 총각김치

대충 구색은 맞췄는데

성의는 보이지 않는다.

 

식사 끝내고 뒷정리하는데

아들이 차 두고 간다고

엄마 출근 때 사용하란다.

그 마음 고맙지만 사양한다 아들

엄만 걸어갈 거야

 

얼추 마친 집 정리

나도 씻고 출근

집 안이 따뜻한가

걷기 시작할 때는 춥다.

 

직장생활 여덟 시간

그렇게 재밌지도 않은…

무덤덤하게 보냈다.

 

열한 시 퇴근 시간

남편은 정확하게 나에게 와줬다.

오늘도 고생했네

당신도 고생했어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가족은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거라며

고맙다. 감사하다. 인사는 예의 중 기본이니

기본을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는 남편이다.

 

집에 도착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날씨 믿고

처마 안에 심어둔 바위솔에게

물을 뿌려주었다.

밖에 심었더라면

오늘 같은 밤 빗물을 먹을 수 있을 텐데…

 

거실에 들어서니

내 이불을 쫙 깔아 둔 남편

감동이다

저녁 먹은 설거지도 싹 해놨다

변하고 있다. 조금씩

 

여보!

내 잠자리 봐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래, 푹 자 따뜻하게 하고

당신도 잘 자고 낼 아침에 봐요

 

인생 2막은 다르게 살 거라고

지금처럼 살면 힘들어 안 된다고 했더니

내 남편이 바뀌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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