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기 쉽지 않다
아기별꽃
알람보다 먼저
새소리가 들리고
등을 켜기도 전
햇살이 방안으로 쑥 드는
가을 초입 아침
바람마저 쳐들어 와
얼굴을 만지작거리는데
어떻게 잠을 깨지 않을 수 있겠어.
신음동 집이라면
다시 자기도 쉬운데
여기서는 힘들다.
빨래 툭툭 털어 널고
로봇 청소할 때
나는
나의 즐거움을 찾아 헤맨다.
가위 들고나가
부채 같은 호박잎 열 장 따고
부추 한 줌 자르고
빨갛게 익은 홍고추 하나
초록 초록 풋고추 하나
보랏빛이 좋은 가지도 하나.
따다 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꽈리고추 한 봉지.
아들이 사다 둔 햄 한 봉지.
계란 다섯 알.
말린 곤드레 나물.
오늘 재료 당첨.
곤드레 나물 데쳐 씻고
쌀 씻어 함께 넣었다.
곤드레밥엔
달래 간장 대신
부추간장을 만들었다.
비벼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가지랑 꽈리고추 밀가루찜
조물조물 양념
호박잎 다섯 장은 찌고
다섯 장은 전 부침.
동그랗게 자른 호박전 다섯 개.
부추전 손바닥만 하게 한 장.
햄, 통마늘, 꽈리고추 볶음.
계란 살짝 구워 찜.
밥솔이 뱅글뱅글 돌아가며
밥 냄새 풍길 때
남편님 오심
둘이서 푸짐하게 맛나게
남편님 왈
여기서는 밥맛도 좋다 시네
(신음동집에서도 잘 드시더니만)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웃으면서
많이 드세요, 한다.
결혼생활 32년 차 배우답다.
참으로 신기하긴 하다.
여기선 밥맛도 좋고
잠도 잘 잔다.
동네 골목 안집이라
드나들기 불편하다고들 해도
나는 주거용으론 딱 맞다 생각한다.
사생활 보호
농기계 소리, 차 소리, 하나도 없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달콤하게 점심시간 끝내고
남편님 설거지
나는 뒷정리
조금씩 변하려고 노력 중인 우리
멋지게 늙어 갈 거야.
남편님 바람드는 황토방에
누워
어느새 잠드셨다.
요즘 낮잠을 너무 자나 싶네
피곤도 하겠지만…
걱정도 된다.
하루의 반을 집에서 보냈고
나머지는 직장 가서 보내야 한다.
슬슬 준비해 볼까?
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