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한 무씨

 

아기별꽃

 

퍼질러 놓은 짐 정리하다 말고

덥기 전에 무 솎기 해야 할 것 같다.

바구니 들고 텃밭에 갔다.

엄청 실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무씨.

고맙다.

 

쪼르르 달려온 남편

자기 농작물에 해코지라도 할까

노심초사

안절부절

뭐 하려고?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음

이놈들이 자리가 좁아서 못 커요.

솎아내야지.

이렇게나 많이…

 

내 남편은 그렇다.

고추 모종이 커지면

나무가 된다는 걸 모른다.

가지 모종 포트서 꺼내심을 때도 그랬다.

띄워야 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금 상태밖에 안 보인다.

커서 자리가 복닥복닥해지면

그때야 아~~~ 한다.

 

초가을 배추를 심을 때도

내 말 무시하고 심더니

결국 옮겨심기를 해야만 했다.

무씨를 뿌려놓고 거름만 자꾸 주길래

몽땅 뽑아 밥 비벼 먹어야 한다 하니

기함을 했다.

무는 열 개만 있으면 됩니다요.

 

오늘 널찍하게 퉁퉁하게

살 오르라고

무 솎기 끝내주게 했다.

니들도 이제 숨 쉴만하지?

예쁘게 튼실하게 자라렴.

 

뜯어온 무 싹을 다듬어 삶았다.

그야말로 무청 시래기.

된장 넣고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도 맛나겠고

봄에 만든 된장 풀어

쌀뜨물 넣어 보글보글 끓여도

맛나겠다 싶다.

돼지등뼈 사다 푹 고아

뼈다귀 해장국을 만들어도

손색없을 무청 시래기

무청 다듬어 씻고 삶으면서

온갖 생각 속에서 행복했다.

 

아 참

이삿짐 정리 중이었지…

씻어 건진 무청을 후딱

냉장고에 넣고

옷방으로 갔다.

 

계절별. 사이즈별

분리하고

옷걸이 걸어 넣고

 

양말도 정리.

너무 많다.

새것은 뜯지 않은 채 헌 양말이 되고

신던 것만 주구장창 헤질 때까지

신었다.

심지어 구멍 난 양말을 신었던 때도 있었다.

버리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구석구석 새 물건들이 있었다.

다 버렸다.

 

심지어 삼십여 년 전

구미서 김천으로 이사 올 때

사용했던 이불 싸개까지…

이번 이사에 요긴하게 잘 썼다.

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이제 남은 생은 여기서 머물 테니까

잘 가라 보자기.

그동안 애썼다.

 

짐 정리 얼추 마무리했고

출근 준비하라고

알람이 알려준 신호에 맞춰

씻고

더위 식히느라 선풍기 앞에 앉았다.

 

잠깐 여유 누려본다.

하루가 늘 바쁘다.



 

아기 조막만 하게 영글었다. 애썼다, 무씨. 사진 아기별꽃
아기 조막만 하게 영글었다. 애썼다, 무씨. 사진 아기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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