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계를 변환하며 천체 관측할 수 있는 재극권을 탑재한 "세계 유일의 과학기기"
천문연구원, 문헌으로만 전해져 온 ‘남병철 혼천의’ 복원 

 

옛 천문의기(天文儀器) 복원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등 연구진이 ‘남병철 혼천의(渾天儀)’를 복원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조선 후기 천문유산인 ‘남병철 혼천의’ 복원 모델 제작에 성공했다”라며, “문헌으로만 전해졌던 조선 후기 천문학자인 남병철의 혼천의가 170여 년 만에 되살아났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복원된 혼전의는 19세기 초 천문학자인 남병철의 ‘의기집설-혼천의’ 편에 기록은 있으나, 실물이 없던 것을 연구진들이 문헌을 토대로 되살려 낸 것이다.

혼천의는 해, 달, 별 등 여러 천체의 움직임과 위치를 측정하던 기기로 현대적 의미의 천문학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가장 표준적인 천체 관측기구였다.

 

가장 큰 원 부분 지름(지평권) 90cm, 전체 높이 100.5cm ‘남병철 혼천의’ 복원 모델. 출처=한국천문연구원
가장 큰 원 부분 지름(지평권) 90cm, 전체 높이 100.5cm ‘남병철 혼천의’ 복원 모델. 출처=한국천문연구원

남병철 혼천의는 개별 기능으로만 활용되어온 기존 혼천의를 보완하고 관측에 편리하도록 개량한 천문기기이다. 조선시대 천문학자 남병철(南秉哲, 1817~1863)이 집필한 ‘의기집설(儀器輯說)’의 ‘혼천의’편에 기록되어 있다.

남병철 혼천의는 장소를 옮겨가며 천체를 관측할 수 있도록 관측의 기준이 되는 북극 고도를 조정하는 기능을 갖췄다. 기존 혼천의는 북극 고도를 관측지에 맞게 한번 설치하면 더 이상 변경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특징은 필요에 따라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한 환으로 극축을 중심으로 적도 방향(동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유권’의 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기능으로 인해 고도, 방위 측정은 물론이고, 황경과 황위, 적경과 적위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기존 혼천의의 경우 회전축이 고정되어 있어 특정 관측만 가능한 반면, 남병철 혼천의는 삼신권과 사유권 사이에 재극권이라는 특별한 고리가 설치되어 있어 상황에 맞는 천체 관측이 가능하도록 했다.

남병철 혼천의는 가장 안쪽 고리(사유권)의 회전축을 두 번째 안쪽 고리(재극권)에 있는 3종류의 축인 적극축, 황극축, 천정축과 연결해 상황에 맞는 천체 관측할 수 있다. 축을 적극축에 연결하면 지구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천체의 위치를 표현해 적경과 적위를 측정한다.

또한 황극축에 고정할 경우 태양의 운동을 기준 삼아 사용되는 황도좌표계의 황경과 황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천정축에 연결하면 고도와 방위 측정도 가능하여 각각의 기능으로 제작되었던 기존 혼천의를 하나로 합친 것과 같은 기능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좌측부터 적극축, 황극축, 천정축에 연결한 ‘남병철 혼천의’. 출처=한국천문연구원
좌측부터 적극축, 황극축, 천정축에 연결한 ‘남병철 혼천의’. 출처=한국천문연구원

혼천의로 천체를 관측하려면 가장 먼저 혼천의를 수평으로 설치하고 회전축이 적극축과 일치하도록 조정한다. 다음으로 삼신의를 동서 방향으로 돌려서 하늘의 모습과 일치시킨다.

다음으로 사유의를 돌려서 관측하려는 천체 방향으로 규형을 향하게 하여 그 천체를 겨눈다. 천체를 겨눈 후 사유권 눈금과 삼신의 적도권 눈금을 읽으면 천체의 위치가 나오게 되는 원리로 운용한다.

남병철 혼천의 연구는 한국천문연구원 김상혁 책임연구원이 20년 전에 시작했다. 본격적인 연구는 2022년부터 한국천문연구원 민병희 책임연구원, 국립과천과학관의 남경욱 연구관 등 연구팀을 구성하면서 시작됐다.

연구팀은 과학기술적 관점에서 ‘의기집설’의 내용을 다시 번역해 기초 설계를 진행했으며, 충북프로메이커센터 및 전문 제작 기관과 협업을 통해 남병철 혼천의 모델 재현에 성공했다.

이번 복원을 주도한 고천문연구센터 김상혁 책임연구원은 “남병철의 혼천의는 전통 혼천의 중에서 실제로 천체 관측이 가능하도록 재극권을 탑재한 세계 유일의 과학기기”라고 소개했다.

이어 ”과거의 천문기기를 복원함으로써 당시의 천문관측 수준을 이해하며 천문 기록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우리 선조의 우수한 과학문화재를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남병철 혼천의는 올해 하반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특별 전시될 예정으로, 고천문의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병철 혼천의의 구조와 각 부품의 명칭. 출처=한국천문연구원
남병철 혼천의의 구조와 각 부품의 명칭. 출처=한국천문연구원

 


[남병철 혼천의 주요 구성과 역할]

○ 육합의: 하늘의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데, 자오권과 천상적도권으로 구성되며 고정되어 있다. 

1. 자오권: 지평권의 남북 방향을 통과하는 환이다.

 2. 천상적도권: 천구상에 적도를 표현하는데, 자오권과 결합되어 있다.

○ 삼신의: 해, 달, 별을 의미하는데, 삼신권, 황도권, 유선적도권으로 구성되며 극축을 따라 회전한다. 

 3. 삼신권은 황도권과 유선적도권과 결합되어 있다.

 4. 황도권은 태양이 운행하는 환으로 유선적도권과 23.5°어긋나게 결합되어 있다.

 5. 유선적도권은 천상적도권 안쪽에 위치한 환으로 천구상 별의 운행을 나타내는 환이다.

 ○ 사유의: 혼천의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극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사유권과 규형이 있다. 

 6. 사유권: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한 환으로 극축을 중심으로 적도 방향(동서 방향)으로 운행한다.

 7. 규형: 사유권 측면에 부착하여 위 아래(남북 방향)로 움직여 천체를 관측한다.

 8. 지평권: 지평을 나타내며, 24방향을 나타낸다. 자오권과 천상적도권과 결합한다.

 9. 재극권: 삼신의와 사유의 사이에 위치하며, 재극권에 적극, 황극, 천정극을 두어 좌표계를 변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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