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교육의 험악한 본색과 암울한 미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강사법의 본래 취지를 비웃으며 대학마다 이미 선제적으로 대량해고를 감행했고 추가해고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연구와 강의준비에 전념해야 할 수많은 전문 지식인들이 생존의 압박 아래 실존적 고뇌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있는 강의 수 축소, 강의 규모 확대 등은 강의 질의 악화로 이어져, 미래사회의 산실인 대학의 안마당을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 전체는 교육적 필요성과 무관하며, 단순 명료하게 경제논리, 즉 돈 문제로 환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강사들의 분노나 이들과의 연대, 또 대학당국이나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책요구 차원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은 자본논리에 절대적으로 순응해 왔습니다. 자본논리가 절대화된 현실에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처지는 학문들,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들,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과목들을 대학에서 퇴출해야 마땅하다는 분위기에 토를 달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학가를 압도하는 담론은 ‘살아남아야 한다’ 혹은 ‘이러다 다 죽는다’는 식의 생존논리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가와 지원으로 대학 길들이기에 성공한 정부 정책부터, 정부의 압박을 대학 내에 저항 없이 확대재생산하는 대학당국의 행정, 이에 대한 교수들의 무비판적 순응, 그에 따른 대학교육의 취업교육화, 대학의 취업학원화는 혼연일체가 되어 자본의 요구에 호응해 왔습니다. 

물론 자본을 절대악으로 그려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소수만이 상상 속에서나 맛볼 수 있었을 문명의 이기들을 대중들이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자본의 이윤추구 욕구가 필수적인 동력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한 동안은 자본의 역할을 도외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비와 노동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 일상리듬 속의 가쁜 숨을 잠시 고르고 조금만 멀리 역사를 돌아보면, 자본주의는 인류의 지상명령도 불변의 자연 상태도 아닙니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끔찍한 수탈과 착취와 억압을 바탕으로 태어났고, 무한축적의 본성을 버릴 수 없는지라 아직도 끊임없이 독점과 경제 양극화로 향한 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자본은 사회적 권력이며, 자본의 독점은 사회적 권력의 독점을 의미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견고한 서열체계를 통해 권력독점의 대물림이 관습화되고 있습니다. 그 이면의 살인적 경쟁체제는 사회적 약자들의 분열 상태를 굳히고 공생의 문화를 죽여 왔습니다. 국민의 99%가 개돼지라는 명제야말로 권력 독점에 기초한 지배구조를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촛불의 열기도 그 지배구조를 녹여버리지 못했습니다.  

대학이 자본의 요구에 고분고분 따르고 어떤 대안적 미래상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또 그런 교육체제 속에서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사고방식만 아니라 감각과 무의식적 욕구와 본능과 양심까지 독점자본과 그 대리자들의 ‘코디’에 맞춰 다듬어지는 한, 1:99라는 양극화구조의 고착화는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리고 ‘1’에 해당하는 갑의 욕심이나 오판에 따라 ‘99’에 해당하는 을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 미래상은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경제성장을 수반하더라도, ‘1’을 위한 천국과 ‘99’를 위한 지옥이 될 공산이 큽니다. 또 이는 실제로 모두를 위한 지옥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래가 그런 방향으로 달려가야 할 필연성은 없습니다. 소수의 갑질을 용납하지 않고 누구나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평등한 사회질서를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물적 조건은 현재의 생산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 기본전제는 교육, 의료, 주택 등 기본생활조건을 사회가 책임지면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 지칭되는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은 극소수를 위한 무제한 자본축적과 대량해고 내지 범사회적 위기 양산의 길과,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향하는 길 사이에서 선택할 것을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후자를 선택하려면, 대안적 비판적 사고의 본산인 대학까지 잠식해온 자본을 절대자로 우상화하는 습관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방향전환을 구체화하는 일은 자신과의 싸움을 포함하는 지난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분노의 에너지로 뭉친 강사들이 막강한 선봉대 역할을 자임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대학 관계자 여러분의 근본적 사고전환을 기원합니다.  

 

글_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소장, 전 대구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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