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계 ‘일랜시아’를 찾아서

 

"내언니전지현과 나" 영화 포스터 이미지


1. IMF와 게임 문화

1997년 연말 외환위기는 국민소득 1만 달러 & OECD 가입으로 선진국 반열 등극이라는 천상에서 순식간에 한국을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아야 하는 나락으로 추락시켰다. 불황이 닥쳤고 실업자가 쏟아졌다. 대학만 나오면 어찌어찌 취업에는 성공하던 호황기는 전설이 되었고, 재수 없이 시기 맞춰 전역하거나 졸업을 맞이한 대학생들은 상상 못 한 취업난에 빠졌다. 그 직전에 전국적 총파업으로 저지했던 노동악법은 IMF라는 미증유의 국난 속에 어물쩍 다 통과되었고, 그 결과로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이 기업들을 휩쓸었다. 대거 실직한 중년들은 치킨집을 차리거나 마지막 재기를 위해 건설일용직이 되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고질병이 되어버린 자영업 과포화와 건설경기 강제 부양의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인터넷 보급과 함께 PC방이라는 신종 업소가 생겼다. 과거 비디오 대여점의 자리를 재빠르게 차지한 이 공간에서 정보검색을 하려는 이들은 몇 없었다. 대부분 게임을 했다. 정말 죽어라고 게임만 했다. 수업 공강 시간에 게임을 하다 다음 수업을 날려 먹기 일쑤였고 며칠씩 죽치고 게임만 하는 ‘폐인’들이 속출했다. 개인이 아니라 팀을 짜고 가상의 세계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길드(온라인 게임 내에서 이용자들이 만드는 모임)’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였다. 사실 그리 게임을 즐겨 하진 않았지만, 게임을 모르고 지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게임이 범람하고 영향을 미쳤다. 언론과 방송에선 게임 중독에 따른 온갖 폐해가 심심하면 보도되었지만, 어느새 압도적 내수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게임 산업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직업으로 게임을 하는 이들은 ‘프로게이머’라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천덕꾸러기 사회악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모한 게임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학에 콘텐츠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한국의 프로게이머들은 세계 톱 랭킹에, 몇몇 인기 게임은 실제로 큰 수익을 내면서 관련 산업은 고도성장한다. 그 와중에 수많은 게임들이 기대 속에 등장했다 사라져갔다. 정액 요금에서 부분 유료화나 변칙적 유료화의 길을 걸으며 수익률을 올리고, 아이템의 음성적 거래나 특정 소수의 게임 사유화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경쟁 심화와 수익성 극대화는 IMF 이후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흐름과 맞물려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 이미지

넥슨은 1996년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 게임업계에서 메이저 대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회사다. 이 회사가 1999년 내놓은 RPG(롤플레잉) 게임 ‘일랜시아’는 반짝 인기를 끌고 난 뒤 2008년 이후 업데이트가 중지된다. 속된 말로 ‘버린 자식’ 취급받은 셈이다. 10여 년간 방치된 게임은 점점 문제가 쌓여가는 가운데 소수의 이용자들만 ‘잔당’으로 남아서 자신들만의 게임을 이어나갔다. 아무 지원이 없는 운영 체계 안에서 게임을 이어가기 위한 자구책으로 이용자(이하 ‘유저’라 지칭)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저들의 모임인 ‘길드’를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결국 시스템의 한계가 심화된다. 그렇게 소멸할 것이라 누구나 예상하고 관심을 잃어가던 게임 관련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2. 영화제에서 마침내 만난 “내언니전지현과 나”

국내 대표적 독립 다큐멘터리 소개의 장인 영화제, 2020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내언니전지현과 나”라는 이상한 제목의 영화가 입소문을 낳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언니전지현’은 누구인지로 시작해 무슨 내용을 담았는지 궁금증은 커져갔다. (‘내언니전지현’은 감독의 일랜시아 게임 속 캐릭터 이름이고, 영화는 ‘망겜’ 일랜시아를 버리지 않은 소수의 유저들 이야기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최고의 화제작으로 매진 사례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그저 잊혀가는 게임 팬덤을 다룬 작품이라 생각해서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줄거리를 보긴 했으나 대중문화에서 소수 애호가들의 팬덤 문화를 다룬 작품일 테니 굳이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어릴 적 잠깐 게임을 접했다 놓은 후부터 게임에 몰입하는 행위는 현실에 대한 충실함 대신에 일탈 또는 회피하는 의미로 스스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썩 끌리지 않음에도 이 작품의 이상 열기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점점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다음 열린 영화제에서 “내친구전지현과 나”를 뒤늦게 보았다. 온라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벌어지는 현란한 게임 화면과 자막들이 정신없이 휙휙 지나갔다. 나와는 다른 세대로 구분되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오프라인에서 자신들이 부여잡고 있는 한물 간 게임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들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시간이 1시간여 좀 넘게 계속되었다.

감독은 영화학과 출신이지만 다큐멘터리보다는 극영화 쪽 작업을 주로 했고,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만들기 위해 독립 다큐 교육기관인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 워크샵을 수료했다. 본 영화는 그 수료의 결과물이라 했다. 과연 수료 작업 다운 특징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화면은 뚝뚝 끊어지기 일쑤다. 감독의 미학적 야심이나 미쟝센 또한 별로 보이지 않았다. 쉽게 말해 투박하게 사실관계를 쭉 늘어놓는 스타일이었다. ‘망겜’(망한 게임) 관련해 수시로 다양한 게임 문화 관련 정보가 자막으로 제공되었지만 다 읽기도 전에 그 자막들은 쏜살같이 달아나버리곤 했다. 등장인물 또한 적지 않은데 그들 각자를 이해하거나 기억하기에도 난이도가 만만하진 않았다. 쉽게 말해 투박한 편집이었다.

그저 소재가 특이해서 주목받는 반짝 화제작인 걸까? 문득 두 개의 코드가 머릿속에서 호출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에바로드”라는 42분 분량의 중편 다큐 영화다. 어느덧 처음 나온 지 사반세기 훌쩍 지난, 컬트가 된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열혈 팬덤을 다룬 작품이다. 2012년에 신 극장판 개봉 이벤트로, 파리-샌프란시스코-베이징-도쿄에서 진행된 <에반게리온 지구일주 스탬프 랠리>에 도전한 친구들의 (도저히 이 세계를 모르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진지하고 필사적인 행적을 담았다. 두 번째는 “바츠 히스토리아”이다. 유명한 RPG 게임 “리니지” 내에서 2004-2007년 벌어졌던 (알만한 이는 알고 모르는 이는 모르는) ‘바츠 해방전쟁’이라는, 온라인 게임 내에서 벌어졌던 수년간의 숨겨진 대사건을 다룬 관련 책과 전시 등의 흐름이 여기에 속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 이미지

다시 “내언니전지현과 나”로 돌아온다. 제목을 흥미롭게 한 ‘내언니전지현’ 은 박윤진 감독의 일랜시아 게임용 닉네임이다. 가상의 게임 닉네임과 현실의 ‘나’를 병렬로 둔 것은 가상현실로의 도피가 아닌 영화의 핵심이라 할, ‘업둥이’ 같은 1999년산 RPG 게임 ‘일랜시아’ 유저로서의 정체성과, 1997년 IMF 이후 꿈과 희망을 잃은 채로 성장한 감독 자신의 세대가 가지는 특성을 통합적으로 고민한 결과일 것이다.

감독은 일랜시아 게임의 흥망성쇠와 현재 기나긴 쇠락의 상황을 자신이 속한 게임 길드 구성원들과의 개별 인터뷰와 현실 정모를 통해 관객에게 전한다. 단순히 시간 죽이기 용이 아니라 전국을 누비는 여정이 영화 안에서 펼쳐진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고 열정을 쏟고 갖은 궁리를 하며 24시간을 보내는 치열함과 함께, 현실 사회에서 간혹 발현되는 집단지성같이 상상치를 벗어나는 다양한 단면들이 드러난다. 길드의 엠티 정모는 하나의 체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고고학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현실의 삭막하고 살풍경한 세상보다 더 열정적이고 서로를 챙기는 사이버 세계가 언뜻 보이는 듯하다.

감독의 다음 행보가 펼쳐진다. 왜 게임업계의 대기업 넥슨은 일랜시아를 방치하는가? 감독은 그것이 알고 싶어진다. 넥슨 유저 상담실을 방문하고 노조 활동가들과 대화하며 게임업계, 그리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성찰로 이야기를 확장하고 직접행동을 감행해 작은 성과를 일군다. 그리고 후일담 성격의 길드 구성원들의 소감과, 여전히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세상의 인식,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보단 영리추구에 집중하는 기업들의 현실을 묘사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 이미지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도 영화는 정교하거나 세련되게 변신하지는 않았다. 감독의 방법론 또한 게임을 기반으로 이렇게 접근할 수 있구나 정도이지 기존의 독립 다큐멘터리 연출 방식과 비교해 특별히 새로울 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게임으로 도피한 세대들에게는 전혀 기대할 수 없으리라 단정했던 어떤 것들을, 혹은 그들에게서 찾아냈거나 찾아내고픈 불씨를 피워보려 참 끈덕지게 노력하고 있었다. 무척 신기한 순간이었다. 그저 잊힌 게임 팬덤의 뜬금없는 회고담으로 읽힐 수도 있는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보다가 후반부에 이른 순간 뭔가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졌고, 가상현실에서 감독과 그가 속한 게임 길드 구성원들의 치열한 시도와 노력을 현실 상황에 반영시켜보려 애쓰게 되었다. 왜 그랬던지는 모르겠다. 영화 내내 곧잘 킥킥대며 웃었고 두세 번 정도, 특히 막판에는 퍽 짠했다. IMF 이전 좋았던 옛 시절을 누려보지 못한 채 무한 경쟁과 불평등의 고착화에 익숙해진 세대가 자신들의 추억담을 공유할 수 있는 움직이는 박물관 혹은 함께 볼 수 있는 캔버스를 마침내 얻은 것 같았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자기 세대의 정체성을 질문하며 표류하던 ‘어떤 세대’들이 기다리던 첫 기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내친김에 개봉, 그리고 영화가 일궈낸 작은 변화의 확인

마치 게임 속 모험의 길을 구현하듯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이후에도 몇 군데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꽤 화제에 오르게 된다. 현실의 척박함에 지쳐 게임에서 피난처를 얻었던 이들이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행동에 나서는 과정은 게임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장점이다. 또한, 온라인/오프라인을 횡단하며 펼치는 이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은 여타의 서브컬처 & 팬덤 문화 소재 작품들 사이에서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고유한 사회학적 흥미를 추가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 이미지

그리고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놀랍게도 극장 개봉을 맞이했다. 개봉 버전은 영화제들에서 상영된 판본에서 뒷부분이 대거 추가되었다.(71분에서 86분으로 후반부가 늘어남) 영화제에서 작은 화제를 낳자 개발사인 넥슨에서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런 일련의 접촉을 거쳐 감독과 길드 구성원들은 일랜시아의 창조주라 할 개발담당자를 만나고 유저 간담회도 성사된다. 그리고 약간의 에필로그 성격의 장면이 추가로 촬영되어 덧붙여졌다.

영화제 상영본과 비교해보면, 마치 영화화된 <반지의 제왕> 3부작의 극장판과 확장판 차이처럼 느껴졌다. 롤플레잉 게임(게임 속에서 이용자 각자가 캐릭터를 선택해 활동하는 게임) 유저가 아니거나 영화가 던지는 사회적 의제에 흥미를 느꼈을 이들에게 개봉 버전은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일랜시아 유저라면 후반부에 대거 추가된 부분들은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마지막 편인 “왕의 귀환” 에필로그 부분처럼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이스터에그’(제작자가 팬들을 위해 감춰둔 장면)를 함께 열어보는 그런 추억의 순간들일 테다.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화제성을 가져다준 두 지점 중 사회적으로 세대 담론과 연결되는 의제 확장성은 확실히 개봉 버전에서 쇠퇴했거나 감소한 느낌이다.

하지만 또 다른 지점, 일랜시아 게임의 팬덤에게는 아마 이보다 더 이상의 선물은 없을 만큼 개봉 버전의 추가된 부분은 짠하고 절절하게 다가갈 것이다. 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다가 우는 이가 그리도 많은지 영화를 보고 나면 게임 문화에 친숙한 이들이 의문을 품을 일은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영화제 때 봤던 71분 버전이 영화적 마무리로서는 더 깔끔했다는 견해다. 아마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신기한 지점이 하나 발생한다. 독립 다큐의 액티비즘 측면에서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마치 일랜시아 게임의 원래 설정처럼 ‘매테오 샤워로 고대 문명이 멸망하고 잔해 속에서 새 출발한 이들이 더듬더듬 짚어가며 새롭게 써나가는 역사’가 재현되는 환상처럼 다가온다. 영화 속 등장인물 그 누구도 일랜시아 게임이 찬란하게 부활하거나 극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계속 이 인생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현실을 반영하고 개입해 작은 개선을 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어찌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 감독을 중심으로 이들 유저가 결행하는 몇 가지 실천과 대기업의 작은 태도 변화를 끌어내는 결말은 그들이 과거의 전통에서 아무것도 물려받은 게 없음을 감안하면 마치 새로운 순환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 이미지

이것은 무척 기이한 풍경이다. 독립 다큐멘터리 혹은 액티비즘 다큐의 후예라 자처하는 이들의 일부는, 선배들이 카메라를 들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던 ‘근접’의 미덕을 놓치거나 외면한 채 그 소재만을 형식적으로 취사선택해 활용하곤 한다. 그런데 이 ‘근본 없는’ 망한 게임과 팬덤을 소재로 한 작업이 비록 삐뚤삐뚤 갈지자 걸음일지언정 로버트 카파의 사진 촬영 금언을 구현해내는 순간이 찰나로나마 영화 속에서 보일락 말락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풍경을 구현한다. 어쩌면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세상을 바꾸거나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 적 없고 가질 기회도 없었던 ‘특정 세대’가 자신들만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출발점이 될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4. 에필로그 : 아직은 미약한, 하지만 출발의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현재 게임 세계의 한계와 모순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는다. 소박하게 이 영화는 치열한 신자유주의 이윤 극대화가 지상 명제인 현실 세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고 위로받고픈 가상현실의 작은 피난처를 유지하는 데 만족하려 한다. 사회운동으로 세상의 모순과 불평등을 바꾸려던 세대에겐 너무 어중간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 세대의 출발과 성장 과정에 대한 고찰 없이 무조건 과거의 방식을 본받지 않는다고 깎아내릴 권리가 과연 기성세대에게 있을까.

비록 아쉬운 지점은 여럿 있지만, 이 영화가 선보인 놀라움은 가볍지 않다. 현실의 모순과 맞서기보다는 가상현실 게임으로 피신했던 이들이 그 게임 속 도피처를 사수하기 위해 현실로 다시 나와 문제를 제기하고 직접행동에 나서는 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증명해낸다. 비록 그 수위가 성에 차지 않더라도, 방법을 찾고 도전을 시도해본 이들이라면 새로운 씨앗은 뿌린 셈이다. 게임 속 가상현실 또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그 생태계에서 더불어 공존하던 이들이 그 소중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단초는 열렸다. 그다음이 궁금해진다.


작품 정보


내언니전지현과 나 People in Elancia


한국, 다큐멘터리, 2019
2020.12.03. 개봉, 86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박윤진
주연 박윤진
배급 호우주의보

20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초청(국내 신작전)
24회 인디포럼(2020) 초청(신작전 장편)
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2020) 땡그랑동전상
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20) 젊은 기러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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