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후 식민주의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제공자는 부자들이지만, 그 피해를 입는 쪽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이러한 사례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에어컨입니다. 어린 시절에 에어컨을 처음 접했을 때 두 가지 측면에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떻게 저렇게 시원한 공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엄청나게 뜨거운 공기가 빠져 나오는 것을 알고선 문명의 야누스적인 두 얼굴을 실감하였습니다. 이 문명의 이기로 인해 혜택을 입는 쪽과 피해를 입는 쪽이 철저히 “계급적으로” 운명 지어지는 이치에 대해 함께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2010년 내 나이 마흔 일곱에 처음으로 외국여행을 나설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국 미시건대학(MSU)에서 4주간 영어연수를 받았는데, 과정이 끝나고 귀국하기 이틀 전에 국제공항이 있는 시카고에 머물렀습니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유명한 것이 많죠. 시카고피자가 유명하고 또 재즈의 도시로서도 유명하지만 정작 이 도시의 공식적인 자랑거리는 ‘건축물’입니다. 시카고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코스가 ‘아키텍처 투어’입니다. 미시건호에서 흘러나와 미시시피강으로 연결되는 시카고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서 시카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미시건호까지 구경하는데, 이 유람선의 이름이 ‘건축술’을 뜻하는 ‘architecture’입니다.

 

 


위대한 건축예술의 도시답게 시카고 시내에는 100층 가까운 고층건물들이 방대한 빌딩숲을 이루는데, 8월 한여름의 시카고 거리를 걸으면서 더위로 엄청나게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미국의 여름은 한국에 비해 굉장히 시원합니다. 서부 쪽은 몰라도 제가 있었던 동부의 여름 날씨는 우리와 달리 습한 기운이 없어서 햇빛을 피해 그늘 속에만 들어가면 마치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와 맞먹는 서늘한 느낌이었습니다. 미시건에서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미시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시카고는 찌는 듯한 폭염의 도시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거대한 빌딩숲과 관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100층 가까운 빌딩 속에는 크고 작은 사무실이나 영업점들이 입주해 있고 이들은 모두 에어컨을 돌립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규모의 빌딩들로 둘러 쌓여 있으니 이 도시의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의 총량이 엄청나겠죠. 이웃에서 에어컨을 세게 틀면 틀수록 내 주거공간의 열지수가 올라가니 결국 나도 에어컨 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쪽도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거리의 노숙자들은 시카고에서 여름 나기가 엄청 힘들 겁니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것도 고역이지만, 쓰레기통 속에 있는 음식물이 쉽게 상하니 ‘일용할 양식’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진 자들이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 배설해대는 열덩어리들이 사회적 약자의 생존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에어컨에서 배출되는 것은 열덩어리뿐만이 아닙니다. 프레온가스와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를 뿜어댑니다. 시카고 빌딩 숲에서 내뿜는 열덩어리들은 시카고 내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1950년에서 2000년까지 각국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총량에 비례해 그들 국가의 면적을 나타낸 것

 

 

 

 

 

 

 


이상기후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4대 질병 - 말라리아, 영양실조, 설사, 홍수관련 치사 질병에 대한 WHO 산출수치를 나타낸 것

 

 


미국좌파지식인들이 운영하는 <Monthly Review>의 한 저자는 흥미있는 일러스트레이션 지도를 통해 이 같은 이치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위의 지도는 각 나라의 크기만큼 이산화탄소를 배출 한 것이고, 아래의 지도는 그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는 양의 크기를 나라의 면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미국이 속한 북아메리카 대륙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엄청나면서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 규모는 아주 작은 반면, 아프리카 대륙은 기후 변화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그 피해는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상기후를 야기 시킨 주범은 잘 사는 나라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나라에서 떠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상식적인 메커니즘은 '착취'란 말로 요약되는데, 저자는 '기후식민주의 climate colonialism'이란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는 A가 생활의 편리를 쫓으면서 B에게 피해를 줄 때 가해-피해의 법리(法理)가 성립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주민 간에 소송이 발생하며 심지어 살인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각종 질병이나 자연재해로 죽어가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현실에 대해서는 시시비비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기후식민주의'로 설명이 됩니다. 한국을 비롯한 문명사회는 이 기후식민주의의 수혜자이고 작고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피해자인 것입니다.

“지구촌 형제들이 우리가 살 땅을 마련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투발루 소년의 메시지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절박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순박한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년의 표정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집니다. 사랑은 열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앎의 문제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으며 무지한 만큼 죄를 짓게 됩니다. - 남태평양의 작은 산호섬 투발루(Tuvalu)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상승으로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는 나라입니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습니다. 좋든 싫든 모든 인류는 공동운명체입니다. 에어컨 사용으로 인한 피해는 종국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우리 어릴 때는 에어컨 없이도 충분히 살았습니다. 만약 시카고의 빌딩 숲에 사는 모든 시민들이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역설적으로 에어컨이 필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에어컨을 사용함으로써 엄청난 열덩어리를 방출해대니 도시가 더욱 더워지고 결국 지구라는 ‘인류공동체의 터전’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기후식민주의'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총칼을 앞세워 땅을 헐값에 넘기라는 백인의 요구에 굴복하면서 "땅은 어머니와도 같아서 결코 사고 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씨애틀 추장의 눈물어린 호소문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일지도 모른다. 두고 보면 알게 되리라!

 

 


생태문제는 계급문제임을 말하였지만, 환경의 파괴는 사회적 강자나 사회적 약자 할 것 없이 결국 모두의 공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계급 적대나 투쟁의 논리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유한 나라의 각성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계급투쟁이 아닌 참교육의 실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빙산 위에서 안간힘으로 버티는 북극곰의 운명이 곧 우리의 운명임을 우리아이들에게 일깨워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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