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이야기로 글을 풀어가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영화를 서른 번도 넘게 봤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실에서는 금요일 아침 활동 시간에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영화 감상을 하는데 이 영화가 매년 감상 목록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이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스토리가 전개되는 중간마다 배치되는 절묘한 반전의 효과 때문인데, 영화의 두 곳에서 그것이 극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마리아와 아이들이 가까워지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마리아와 대령 사이의 갈등이 풀리는 장면입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심성이 삐뚤어진 아이들은 마리아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천둥소리에 두려움을 느낀 아이들이 하나둘씩 마리아의 방으로 모입니다.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살면서 힘들 때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면서 어려움을 이겨내라는 뜻으로 <My Favorite Things>라는 노래를 불러주는데, 이를 계기로 아이들로부터 신뢰와 친화력을 쌓아갑니다. 이윽고 대령과 백작부인이 여행을 떠났을 때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정장 대신 커튼을 잘라서 만든 편한 옷을 입히고서 야외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합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마리아가 아이들에 <Do Re Mi>를 가르치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아로새겨지죠.

여행에서 돌아온 대령은 지체 높은 자기 집 아이들이 요조숙녀와 신사의 품위를 저버리고 허클베리 핀으로 둔갑해 있는 모습에 경악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밖으로 불러 호되게 다그치지만, 마리아도 물러서지 않고 대령의 권위적인 양육방식을 비난합니다. 급기야 대령이 마리아에게 당장 떠나라는 의사를 표하는 순간, 매혹적인 ‘음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입니다. 노래를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이 자신의 애창곡을 아름답게 부르니 대령은 감격에 휩싸인 나머지 아이들의 앙상블에 참여하고 노래가 끝난 뒤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대령이 그간의 군기반장으로서의 위엄을 내려놓고 따뜻한 부성애의 아버지로 거듭나는 이 장면은 언제 봐도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신입니다.

영화 제목과 같은 이 곡의 제목 ‘음악 소리sound of music’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해석해 봅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 마리아가 알프스산맥 속의 봄기운에 취해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도 이 음악입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음악 소리’는 음악의 힘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의 힘으로 마리아가 얼어붙은 아이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었고 대령과의 갈등도 풀렸습니다. 그리고 음악 콩쿠르에서 대령이 <에델바이스>를 부를 때 나라를 빼앗긴 오스트리아 청중이 따라 부르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장면에서도 음악의 힘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우리 교실에서 나도 마리아처럼 음악의 힘으로 아이들과 친화력을 형성해갑니다. 3월 첫 주에 재미있고 감동적인 노래들로 아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아이스브레이킹 합니다. 또한 음악은 교사-학생 관계뿐만 아니라 교실 공동체를 튼실하게 다지는 데도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저는 금요일 마지막 수업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으로 배치하여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며 한 주의 학업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를 실컷 발산하게 한 뒤 헤어집니다. 음악을 매개로 학생 집단에 팀워크가 생기고 교실 생활이 활기를 띠게 됩니다.

아름다운 음악은 학생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미적 감수성을 발달시키는 점에서 음악 활동은 그 자체로 중요한 교육적 의의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걸 그룹 노래에만 흥미를 품을 뿐 교육적인 노래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가르치는 노래에 흥미와 신명을 내지 않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사실, 체육은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도르노(T. Adorno)는 생래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인간의 심성을 내적 자연(inner nature)이라 일컬었습니다. 아도르노는 내적 자연을 인간 행복의 근원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학교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학생들에게 예술적 체험을 많이 하게 하여 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음악 활동에 흥미와 적극성을 갖게 하기 위해 교사는 교과서 음악 외에 자신이 지도 가능한 적절한 콘텐츠(레퍼토리)를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나 기타로 반주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녀야 합니다. 특정 곡을 지도함에 있어 유튜브 영상이나 mp3로 된 반주 음악을 틀어 놓고 따라 부르게 하면 음악적 흥이 반감되기 마련입니다. 반주에서 중요한 것은 조옮김 기능입니다. 음악 교과서의 곡들 가운데 음역이 높아 아이들이 잘 따라 부르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곡을 지도할 때 교사용 지도서에 딸려 오는 mp3 반주 음악을 틀어 주면 아이들이 노래를 안 부릅니다. 이러면 음악 수업은 실패하고 음악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도 추락하고 맙니다. 악기로 조옮김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다면 대안으로 기타 반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악기 특성상 기타는 조옮김 문제가 쉽게 해결됩니다. 건반악기의 경우도 디지털 피아노나 휴대용 전자 키보드 같은 것은 이조(조옮김, transpositon) 기능이 있으니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조옮김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교단에 섰던 1988년에 비해 2020년에는 교육예산이 무려 21.5배나 증가했습니다.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가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1인당 교육예산은 이보다 훨씬 많이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교육 환경은 예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요롭게 발전했지만, 가난했던 그 시절보다 지금의 교실이 더 빈곤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교실에서 풍금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점입니다. 풍금 혹은 오르간이라 일컫는 이 훌륭한 악기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창고 속에 사장되고 있습니다. 내 초임 시절에는 풍금 없는 음악 수업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피아노 반주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IT 기술의 발달로 인해 CD와 mp3에 풍금이 밀려나는 불상사가 만연해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예술적 빈곤을 불러온 참혹한 역설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음악 교육의 원리상 악기 없이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입니다. 새로운 노래를 가르치다 보면 곡의 특정 부분에서 집중적인 반복 지도를 해야만 하는데, 그 부분을 적당한 템포의 악기 연주로 시범 보이지 않고 가르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음악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다는 것이 본의 아니게 듣기 불편한 ‘꼰대성’ 발언으로 흘렀습니다. 용서 바랍니다. 이왕 꼰대가 된 김에 젊은 선생님들께 하루라도 빨리 음악 반주 기능을 익혀야만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며 글을 맺겠습니다.

제 글쓰기 스타일에서 느끼셨겠지만 저는 선천적인 꼰대입니다. 그나마 젊었을 때는 나이 많은 선배들보다 덜 꼰대였기에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지금 원로교사가 되어서도 제가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음악입니다. 제게 약간의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교실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음악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생명에 활기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생물학적 나이와 무관하게 음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젊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이 든 교사도 어린 학생들을 신선한 분위기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그것이 ‘음악의 힘’입니다.



글 _ 구미 사곡초 교사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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