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 읽기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예년과 달리 올해 독서를 열심히 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전에 언급했듯이 몸 건강을 위해서다. 나는 저녁에 일찍 잠들어 새벽 서너 시에 깨는 편이다. 작년엔 새벽에 잠 깨면 글을 썼다. 글쓰기는 고도의 집중을 요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각성 상태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다시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한밤중에 깨서 그대로 아침에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몸 건강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올해는 새벽에 눈을 뜨면 글쓰기 대신 독서하는 것으로 생활 습관을 바
초중고 12년 학교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이야기로 말문을 열고 싶다. 좋은 기억이 아니라 악몽 같은 기억의 대상이다. 초등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는데, 얼마나 또 어떻게 안 좋았던 분인지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 분의 인성과 무관하게 5학년 때 학교생활이 지긋지긋했던 또 다른 요인이 “행진을 죽도록 연습한 것”이다. 철부지 어린애였지만, 그때 우리가 했던 행진 연습은 지금 신병교육대 수준을 능가했을 것 같다. 행진곡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발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었고(발을 틀리는 학생들에겐 우리 담임선생님이 회초리로 아이
책 욕심이 많은 내게 알라딘 중고서점은 큰 매력이다. 대구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세 곳 있는데, 최근에 생긴 동대구점에 내가 찾는 책이 제일 많은 것으로 조회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찾았다.서점은 신세계백화점 건물 내에 있다. 지하 4층 주차장에 파킹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엘리베이터 입구나 안에도 알라딘 중고서적의 위치에 관한 안내가 전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건물 내에서 알라딘 중고서점의 존재감은 동네 구멍가게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알라딘 서점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할 수 없이
교실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 공부 마치고 헤어질 때 각자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갑니다. 작년까지 3학년 담임할 때는 아이들이 의자를 올리고 내리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하지 않았지만, 5학년 아이들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해 봅니다. 이 방식은 청소의 효율성은 있지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 의자만 올리고 내리는 모양새가 우리 반 급훈 ‘함께 나아가기’의 취지를 살짝 비껴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오는 순서대로 의자가 하나둘씩 내려지는데, 맨 마지막에 남은 한 개의 의자가 쓸쓸해 보입니다. 그 의자의 주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이야기로 글을 풀어가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영화를 서른 번도 넘게 봤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실에서는 금요일 아침 활동 시간에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영화 감상을 하는데 이 영화가 매년 감상 목록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이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스토리가 전개되는 중간마다 배치되는 절묘한 반전의 효과 때문인데, 영화의 두 곳에서 그것이 극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마리아와 아이들이 가까워지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마리아와 대령
A 초등학교는 경북의 군 지역에 위치한 학교입니다. 농산어촌 지역의 여느 소규모 학교처럼 이 학교도 한때 전교생 수가 20여 명으로 줄어들면서 폐교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2010년, 경기도의 남한산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혁신학교 열풍이 일고 있을 때, 참교육을 열망하는 몇몇 학부모와 교사들이 의기투합하여 A 초를 혁신학교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강화된 경쟁 교육에 염증을 느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학교를 원했고,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염원하는 전교조 교사들은 그
강원도에 여행 갔다가 카지노에 빠져 돈을 잃는 것도 부족해 직장과 가정까지 잃게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 카지노의 어떤 점이 멀쩡한 사람을 망가뜨릴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글과 관련하여 저는 개인의 ‘성찰 능력’을 마비시키는 카지노의 구조에 주목하고자 합니다.카지노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보통의 건물에는 반드시 있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시계와 창문 그리고 거울입니다. 시계와 창문이 없으면 고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도록 주머니가 털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세 가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최근 영화계에서 폭풍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곡성’을 보고 글을 남겨본다.이 영화에 대해,“재밌냐?”는 물음엔 “그렇다”고, “괜찮냐?”는 물음엔 “글쎄”라 답하겠다.‘곡’성은 왜‘곡’이 심한 공포영화다. [1] 국수주의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일본인 악귀가 왜곡 덩어리다.왜 일본인 악귀가 한국의 산골짜기에서 그 짓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일본에서 가까운 경남 바닷가 마을도 아닌 전남 곡성에서 말이다. 영화의 배경이 전남 곡성(谷城)인데, 영화 제목 곡성의 한자는 곡소리라는 뜻의 哭聲이다. 곡성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영화 보면서 그들의 곡성이 들려오는 듯했다.임진왜
1학년 꼬맹이 하나가 교무실 문을 빼꼭 열고는 이리 저리 둘러보고서 하는 말,“선생님 없다!”이윽고 뒤에 있던 아이도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고선,“진짜네!” 한다. 교무실에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는데, 교감선생님과 교무행정사 그리고 나는 모두 ‘선생님’이라 불리어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이들 눈엔 우리가 선생으로 안 보이는 것일까? 두 번째 아이의 멘트 ‘진짜네!’는 우리에게 확인사살이었다. 그렇다. 1학년 아이들의 관계망 속에 선생님이란 존재는 자기 담임선생님이 유일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아저씨, 아줌마’인 것이다. 50 넘은 남교사는 머리 염색 안 하면 ‘할아버지’ 소리 듣는다.1학년
비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일찍 출근하셔서 차량진입금지 라인을 치고 교문 앞에서 교통안전 도우미 직무를 수행하신다. 8시도 안 되었는데, 아이들 통학버스는 8시30분이 되어야 도착하건만 왜 저리 일찍 서 계시는 걸까? 아마도 선생님들 차량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실 생각이신가 보다. 그런데 오늘 날씨 상당히 춥다. 빗속에 걸쳐 입은 저 우의 속에 따뜻한 옷은 챙겨 입으셨는지 걱정이다. 어르신은 작년부터 이 학교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몇 년 전에 상처하고 혼자 계시는 당신의 입장에선 아마 이 일을 통해 경제적 만족은 물론 자아실현의 긍지와 흥미마저 느끼시는 것 같다. 주황색 방향지시봉을 들고 우리 운전자들에게 사인을 건네실 때는 왠지 버킹검 궁전 따위의 근위병에게서 볼 수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보석 세공사에게 명령했다.“나를 위하여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때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할 글귀를 새기도록 해라. 또한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함께 줄 수 있는 글귀여야 한다.”세공사는 왕의 명령대로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어떤 글귀를 써넣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그는 지혜롭기로 소문이 난 솔로몬 왕자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왕자님, 임금님의 큰 기쁨을 절제하게 하는 동시에 큰 슬픔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솔로몬이 답했다.“이 글귀를 넣으십시오. 승리에 도취한 순간에 임금님이 이 글을 보시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
어제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오늘 아침에까지 이어진다. 안개비를 뚫고 유학산을 넘어 7시쯤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문 입구 축구골대에 저렇게 차량 진입금지 줄이 쳐져 있다.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향하는데 배움터 지키미 어르신이 추위에 떨며 현관 앞에 서 계신다. 이 마을에 사시는 분인데, 비가 와서 차량 때문에 운동장이 엉망이 될까봐 그 줄을 치기 위해 일부러 학교에 나오셨다고 하신다. 이 분이 받는 월급이 아마도 70만원 남짓한 것으로 안다. 다른 학교에선 교문 옆에 있는 초소도 설치되지 않아 운동장 벤치에서 기거하며 선량한 목자로서 양떼를 지켜주신다. 이 힘든 노동의 대가로 지불되는 70만원은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교원대 대학원 다닐 때의 일이다.자가 운전을 하지 않던 때라 충북 청원군에 있는 학교로 가기 위해 조치원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대구에서 조치원까지 2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가는 것은 나의 평범한 일상사지만, 그 날은 특별히 전공과목 원서를 읽고 있었다.내 옆에는 중년 부인 두 분이 앉아 계셨는데 이따금씩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중 한 분은 수레에 먹거리를 실고 판매하는 승무원이 지나가자 삶은 달걀을 사서 내게 건네주기까지 하셨는데, 나는 이 분이 내게 품으시는 특별한 호의의 배경이 대충 읽혔다. 나는 호의에 감사 인사를 드리며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다시 열공 모드로 돌아갔다. 뒷좌석에선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내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영 연합군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성공적으로 발을 내딛는다. 일명 허스키 작전으로 불리는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1년 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연합국에 승리를 안겨준 역사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연합군에게 시칠리아 섬이 점령당하자 이탈리아 내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쇼통치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어 갔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하원의장 디노 그란디는 국왕 에마누엘레 3세의 승인을 받아 무솔리니의 정부를 실각시키고, 무솔리니를 알프스의 한 산장에 연금시킨다. 이탈리아 국왕은 무솔리니의 후임으로 바돌리오를 내각 수반으로 선임하였는데, 바돌리오는 이탈리아의 추축국 탈퇴와 나치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항복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무솔리니의 운
존 레넌은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서 행복이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래서 레넌은 학교에서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나? When you grow up, what do you want to be?”라는 물음을 만나자 “행복”이라고 답했다.알다시피, 영어에서 be 동사의 보어로 ‘형용사’와 ‘명사’ 둘 다 올 수 있는데 두 경우에 따라 동사의 의미가 각각 ‘~이다’와 ‘되다’로 달라진다. 레넌의 천재적인 유머는 이 차이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넌 장차 뭐가 되고 싶냐 What do you want to be?”는 질문을 “넌 장차 어떤 삶을 살고 싶냐 What do you want to be?”는 뜻으로 해석해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I want to be happy”라
갈등사태에서는 누구든 입을 떼는 순간 이 편 아니면 저 편을 들게 되어 있다. 첨예한 대립 상황에서 중립적 입장의 표명이란 있을 수 없으며, 심지어 사태와 무관한 발언을 하더라도 어느 한 쪽을 이롭게 하고 다른 한 쪽에 타격을 가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누가 옳은지 관심 없다. 이젠 지겨우니 그만 하자!”라는 식의 발언은 중립적인 입장 표명이 아니다. 세월호 사태에서 중립을 가장한 이런 식의 발언들이 유가족들의 힘을 빼고 상처 난 가슴에 못 질 해대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봐 오고 있다. 최근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박유하 교수의 입장 표명에 대해서도 우리는 ‘당파성’이란 차원에서 짚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제
삶은 ‘살음’이고 여기서 ‘사람’이란 말이 생겨났다. 삶은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전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의 행불행도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로 말미암는다. 서로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선 ‘주고받는 관계’, 즉 ‘기브 앤 테이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아닌 인간을 오직 인간으로서만 만나는 관계에서는 ‘give and take’가 ‘giving is taking’ 즉,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 되고, 너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역설이 성립한다. 교사인 사람이나 아이를 낳아 길러본 사람이라면 이 같은 기쁨을 맛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교사나 어미가 아닌 사람도 “너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을 일상적으로 경험함에도 우리는
‘희귀조’라는 뜻의 레어버드Rare Bird는 1970년대에 활약한 영국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이란 ‘진보적인progressive 록’이란 뜻인데, 진보적이라 함은 음악의 형식에 있어 기존의 진부한 대중음악 스타일에서 벗어나 진일보한 양식을 취한 것을 말한다. 1960년대 중반 로버트 무그 Robert Moog 박사가 발명한 무그 신디사이저에 힘입어 태동한 프로그레시브 록은 크게 두 갈래의 조류가 있었다. 하나는 인스트루멘털(연주곡) 위주의 클래시컬한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로 무디 블루스, 프로콜 하룸, 이머슨 레이크 & 팔머(ELP) 등인데, 이들의 음악은 아트 록(art rock)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핑크 플로이드로 대표되는 것으로서 몽환적 사운드와 함께 비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이렇게 따뜻하게 만날 순 없을까?나는 가능하다고 본다.현생인류의 출현 이후 1만5천 년쯤 지났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인간 본성은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며 발전해 왔다.[심청전]이라는 괴기소설에서 보듯, 바다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야만의 문화가 종식된 지 불과 몇 백 혹은 몇 천 년 밖에 안 된다. 앞으로 몇 백 혹은 몇 천 년이 흘러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력(과학지식)이 발전해 현재 가장 똑똑한 과학자의 지식이 칠푼이 같은 인간에게도 상식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올 것이다.(사실 오늘날 우리가 품는 과학지식은 갈릴레오 수준 이상이고, 고대사회에서 최고의 천재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훨씬 능가한다). 그런 때가 되면, 주술에 의존하던 시대에 인간이
우리 현대 정치사를 상징하는 ‘3김’의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그 분의 영면을 접하면서 그 분보다 먼저 간 또 다른 3김의 한 분과 그의 화두를 떠올려 본다.행동하는 양심!김대중 전대통령이 남긴 유지(遺志)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것이었다. 행동하는 양심!참으로 좋은 말이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독재에 맞서 싸우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한평생을 바친 그 분의 삶을 표상하는 화두가 “행동하는 양심”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통해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이 그릇된 논리임을 말하고자 한다.“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있음을 내포한다. 누구나 이 같은 뜻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