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 공부 마치고 헤어질 때 각자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갑니다. 작년까지 3학년 담임할 때는 아이들이 의자를 올리고 내리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하지 않았지만, 5학년 아이들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해 봅니다.

 

▲ 학급 급훈
▲ 학급 급훈

 

이 방식은 청소의 효율성은 있지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 의자만 올리고 내리는 모양새가 우리 반 급훈 ‘함께 나아가기’의 취지를 살짝 비껴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오는 순서대로 의자가 하나둘씩 내려지는데, 맨 마지막에 남은 한 개의 의자가 쓸쓸해 보입니다. 그 의자의 주인은 매일 지각하는 어떤 친구일 수도 있고 몸이 아파서 오늘 학교에 못 오는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아직 안 온 한 친구의 의자만 덩그러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풍경에서 어떤 소외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학급 학생들이 이런 소외의 분위기에 익숙해짐에 따라 파생될 잠재적 교육과정의 역기능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도 달리 대안이 없는 노릇입니다. 나 어릴 적 기억으론 청소를 맡은 학생들이 청소 마지막 순서로 반 전체 아이들의 의자를 내려줬던 것 같습니다만, 지금 아이들에게 그렇게 시키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래서 그냥 1교시 수업 시작할 때, “아직 안 온 친구의 의자 하나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게 보기 안 좋지? 늦게 오거나 결석한 친구의 의자는 짝꿍이나 모둠 친구들이 대신 내려주면 좋겠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건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지태가 일등으로 교실에 입장하면서 다짜고짜 반 전체 아이들의 의자를 모두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저는 보통 일찍 출근하여 교실에서 일 보면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편입니다). 이때가 6월쯤이었는데 날씨가 더웠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이를 악물고 친구들의 의자를 내리는 아이의 모습이 가상함을 넘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1교시 시작할 때 반 친구들에게 지태의 헌신을 알려주고 치하했습니다. 평소 학교에 늦게 오는 지태의 이 뜻밖의 영웅적 행동에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2학기 개학하는 날 아침, 이번에는 갑기가 첫 번째로 교실에 들어서면서 지태와 똑같은 활동을 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지태와 갑기의 행위 사이에 여름방학을 포함한 긴 공백기가 있었던 점이나 갑기의 시크한 성격을 생각할 때, 아이는 교사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적으로 어떤 비상한 의지나 결기가 발동하여 그렇게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반 전체 학생들 앞에서 갑기의 행동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민아가 맨 먼저 와서 그 일을 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지 않고 혼자 책을 읽거나 하는 특유의 성향을 생각할 때, 민아의 행동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아마 반 아이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지태에게서 시작되어 현재 우리 반에서 일고 있는 이 뜻밖의 현상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짚어주고 싶었습니다. 70년대 말 조세희 씨의 명작 소설 제목에서 유래하여 어떤 인물의 선한 행동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때 쓰는 표현으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아가, 이 표현은 줄여서 ‘난쏘공’이라 일컫는데 우리도 지태가 반 전체 친구들에게 끼친 선한 영향력을 ‘지쏘공’이라 이름 지을 것을 제안하고서 동의를 이끌었습니다.

그다음 이틀은 혼자서 반 친구들의 의자를 다 내려주는 아이는 없었어도 일찍 오는 아이들이 자기 모둠 친구들의 의자는 내려주는 추세를 보였고, 그다음 날은 병창이가 자기 단짝 정호와 함께 입장해서 지쏘공을 실천했습니다. 정호의 집은 학교에서 멀리 있어서 일찍 오는 일이 잘 없는 점으로 미루어 아마 두 친구는 지쏘공을 위한 의기투합으로 같이 일찍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쏘공’
▲‘지쏘공’

 

이 글을 쓰는 지금 2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최근에도 지쏘공은 이어지고 있고 일찍 오는 사람이 최소한 자기 모둠 친구들의 의자는 내려주는 게 하나의 불문율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내 교직 생애에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참으로 가슴 벅찬 현상입니다. 지쏘공이라는 이름의 선한 신드롬이 일어난 배경에 대한 어떤 교육학적 통찰이 떠올랐습니다.

 

▲의태(擬態)
▲의태(擬態)

 

자연계에서 유기체는 주위 환경에 자신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태라 일컫는 현상인데, 우리는 약한 동물들이 이 의태 기제를 통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줄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1930년대 초 미국에서 조류 6만 마리의 배를 갈라 새들이 먹은 곤충을 조사하였는데 위장 능력이 있는 곤충과 없는 곤충의 수가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진화생물학이 ‘포식자로부터 보호’라는 기제로서 의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제 까유아(Roger Caillois)는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에 포획되는 일종의 자연법칙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까유아의 논리는 의태의 본질이 생물학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접근할 때 설명이 더 잘 된다는 뜻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도 이 의태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라깡의 ‘거울단계 이론’이 그 한 예입니다). 의태를 영어로 ‘미미크리(mimicry)’라 하는데, ‘mimic’은 흉내 내기라는 뜻입니다. 미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유기체는 따라쟁입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따라 할 때 소속감을 느끼게 되고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각자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유행’이란 개념이 성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유행을 좇는답시고 분수에 맞지도 않는 수백만 원짜리 명품백을 갖기 위해 카드를 긁는 어른들에 비해 친구의 선한 영향력을 좇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릅니다.

혹자는 지쏘공을 일으킨 주된 동력이 교사의 칭찬이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교사의 칭찬이 정적 강화로 작용하여 아이들이 너도나도 칭찬받기 위해 지쏘공이 일어났다는 거죠. 그런 점도 없잖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입니다. 비고츠키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아이들의 행동 변화에서 교사조절보다 타인조절의 영향력이 훨씬 지대하게 작용하는 법입니다. 특히 고학년 아이들의 인정욕구는 교사-학생 관계에서보다 또래집단의 관계망 내에서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2학기 들어 시작된 지쏘공 신드롬은 한 학기 동안 몇몇 말썽쟁이들 때문에 지쳐가던 내 영혼에 커다란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우리 반에는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 많아서 늘 팀워크가 걱정이었는데, 지쏘공이 교실공동체를 튼튼히 세우기 위한 모멘텀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 _ 구미 사곡초 교사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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