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초등학교는 경북의 군 지역에 위치한 학교입니다. 농산어촌 지역의 여느 소규모 학교처럼 이 학교도 한때 전교생 수가 20여 명으로 줄어들면서 폐교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2010년, 경기도의 남한산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혁신학교 열풍이 일고 있을 때, 참교육을 열망하는 몇몇 학부모와 교사들이 의기투합하여 A 초를 혁신학교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강화된 경쟁 교육에 염증을 느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학교를 원했고,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염원하는 전교조 교사들은 그런 학부모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보수 교육감 체제하에서 자생적 혁신학교로 세워진 이곳에는 현재 입학 수요가 증대하여 자체적으로 적정 인원을 조절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른바 ‘보수의 심장’이라는 TK 지역에서 자생적 혁신학교가 탄생하기까지 겪은 산고의 고통은 간단치 않았고 그 고통만큼 혁신 교육의 열매가 튼실하게 무르익어 왔습니다. 저 역시도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학교의 변화에 약간의 기여를 했으며, 거꾸로 이 학교를 통해 제가 교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나은 교사로 단련되고 성장했다고 자부합니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집단을 혁신시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스스로 혁신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혁신의 본질은 ‘자기혁신’이라 하겠습니다.

A 초 아이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 오후 4시까지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놀다 집에 갑니다. 보통의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두세 군데 학원을 돌다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현실을 생각할 때, 학교에서 맘껏 놀 수 있는 환경 자체로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결정과정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합의를 도출하는 민주적인 교육공동체 문화는 타 학교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빛나는 장점의 이면에 저로서 납득하기 힘든 면이 있었습니다. 기초 학습력이 낮은 학생들을 방치하는 문제였습니다. 6학년 가운데 지력이 멀쩡한 아이가 구구단을 모르는가 하면, ‘pen’ 따위의 간단한 영단어를 쓸 줄 아는 아이가 잘 없었습니다. 한 반에 학생 수가 10명도 안 되는 교실에서 학습 부진아가 많은 이유는 이 학교 특유의 지침 때문이었습니다. 타 학교에서 ‘튼튼교실’이라 일컫는, 기초기본학습 역량이 결여된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이 학교에서는 금기시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교사가 그런 학생을 남겨서 지도할라치면 주류 교사 집단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나는 소신껏 그렇게 했습니다. 멀쩡한 아이들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곳은 온전한 학교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책을 떠듬떠듬 읽어도 구구단을 몰라도 기초 연산 문제를 못 풀어도 알파벳을 몰라도 방과 후에 교사로부터 관리받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만족도는 당연히 높았지만, 내 눈엔 그런 아이들이 행복한 바보들로 보였습니다.

4년 뒤, A 초를 떠나 B 초에서 통제 일변도의 학교문화를 접하면서 A 초 교육 방식과 비교되었습니다.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 속에서 교사에게 자기 할 말을 다 내뱉는 A 초 아이들과 예의범절이 반듯한 이곳 아이들이 비교되었습니다. 내가 보수적인 꼰대여서 그렇겠습니다만,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공손히 인사하고 자신이 맡은 1인 1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특별실을 열심히 청소하는 B 초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정이 갔습니다. 하지만, 그 대견함의 이면에 어떤 길들임의 그늘이 엿보여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부당함에 맞서 바름을 지키고,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고,

무제한적 자유에 맞서 권위를 지키고,

좌익 독재나 우익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교사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자유의 교육학 Pedagogy of Freedom>에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서 A 초등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학교에서 내가 행한 교육 실천에 대해 성찰 또는 반성을 했습니다. 프레이리의 언설에서 주목할 부분은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고, 무제한적 자유에 맞서 권위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프레이리는 ‘자유와 권위의 변증법’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일견, 자유와 권위라는 두 속성은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양립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변증법적으로 이 두 대립물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 두 속성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을 양자택일하면 필연적으로 오류로 치닫습니다. 자유가 없는 권위는 권위주의, 권위가 없는 자유는 방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학교 교육을 새에 비유할 때, 이 새는 자유와 권위라는 좌우 두 날개로 균형을 잡으며 비상해갑니다. 양쪽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교육의 역기능이 초래되고 학생의 건강한 성장은 저해됩니다. 자유가 지나치면 방임으로 흐르고 반대로 권위가 지나치면 권위주의가 됩니다.

자유와 방임이 다르듯이,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도 다릅니다. 교사는 권위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교사가 권위를 잃으면 교육의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유념할 것은, 교사의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생겨나는 점입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권위를 강제할 때 권위주의가 됩니다.

프레이리적 의미에서 권위는 존경과 동의어입니다. 존경심을 강제로 배급할 수 없듯이 권위도 학생에게서 스스로 우러나는 법입니다. 교실의 질서를 위해 애들은 잡아야만 한다는 교사를 학생들이 존경할 까닭이 없습니다. 교사의 권위는 무엇보다 학생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학급경영이나 수업전략을 구상함에 있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이것이 이 글에서 말하는 ‘자유’의 속성입니다. 때문에 교육에서 자유와 권위는 양립할 수 있을뿐더러 양립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기’는 아이들의 입장을 존중하자는 뜻도 있지만, 아이들의 한계를 직시하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한다면 아이들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할 것이며, 무질서와 혼란으로 교실은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교사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만,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에 바탕하여 학생들을 이끌어야 하겠죠. 배움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위해 양보와 배려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것은 학생 스스로가 아닌 교사의 지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프레이리가 무한한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unfinishedness) 때문입니다. 이 불완전성은 미성숙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적용됩니다. 학생들에게 무제한의 자유가 방임으로 치닫듯이, 교사들에게도 그럴 위험성이 상존합니다. 고백건대, 저는 타 학교보다 관리자로부터 제약을 덜 받는 A 초에서 느슨한 교육적 책무성을 즐겼던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언하면, 프레이리는 ‘불완전성’이란 개념을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발전해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라는 거죠. 다만, 이 발전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달리하는 실천 주체들의 부대낌과 함께 부단한 성찰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A 초가 다른 학교에 비교해 건강한 교육공동체였다는 저의 자부심도 이런 겁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 “회의 문화는 집단 건강성의 바로미터”라는 말을 했습니다. 타 학교의 직원협의회가 협의는 없이 지시와 전달 그리고 관리자들의 훈화 말씀이 전부인 것과 대조적으로, A 초에서의 회의는 교사들 간의 치열한 토론과 건설적인 대화로 꽃을 피웁니다. 집단지성을 통해 최선의 교육 방향을 모색함과 아울러, 느슨한 책무성에 대해서도 집단적 자기 규율을 발동해 중심을 잡아갔다고 자평해 봅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천 주체들 사이의 갈등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다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내 교직 삶에서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곳이 그곳이었습니다. 바람직한 교육을 생각하는 관점이 서로 다름에 따른 대립으로 서로를 아프게 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아팠기 때문에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No pain, no gain! 나는 이보다 변증법의 심오한 이치를 더 잘 말해주는 문장을 알지 못합니다.

A 초를 뒤로하고 다시 일반 학교에 근무하면서 내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A 초로 향하기 전보다 학생들에게 덜 억압적이고 덜 권위적인 교사로 변신한 것입니다. 지금 나이가 한창 들었음에도, 젊었을 때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인정과 존경 그리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A 초에서의 치열한 경험 탓이라 생각합니다.

A 초로 향하기 전에 저는 스스로를 괜찮은 교사라 착각했습니다. 그 시절엔 보통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교사가 많았기에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유, 권위)의 양팔저울에서 자유에 무게중심이 있는 A 초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꽤 권위적인 교사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동료들과는 상대적으로 내가 권위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던 측면이 그 학교를 발전시켰던 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르긴 해도, 지금 A 초가 앞에서 말한 기초 학력의 문제를 극복해가고 있다면 저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작용한 결과라 판단합니다.

자유와 방임, 권위와 권위주의는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자유가 방임으로, 권위가 권위주의가 됩니다. 그러면, 그 경계지점이 어디인가 하고 묻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일률적으로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상황과 장소 그리고 실천주체의 역량과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각각 달리 판단할 문제입니다. 만약 내가 다시 A 초에 가게 되고 그곳 상황이 예전처럼 <자유, 권위> 가운데 자유에 치우쳐 있다면 나는 기꺼이 권위에 치중하는 행보를 걸을 것입니다.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용될 보편타당한 진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글 _ 구미 사곡초 교사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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