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지만 필자는 기차 나들이할 때 이젠 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을 텐데 하면서도 경향신문을 사든다. 그리고 운세를 본다. 마음에 담아둔 적도 없고 금방 잊어버린다. 이번 추위가 춥긴 추웠나 보다. 서울엔 눈이 쌓여 있고 지인 말로는 펑펑 내렸다고 하던데. 그러다 18일 몸이 아프고 열나고 자가진단키트는 영락없이 코로나19 양성으로 뜨는데 마누라랑 코로나 대 독감 주제로 월드컵 결승전도 아닌데 싸울 일 있겠냐 싶어 조용히 마누라 말을 듣기로 했다. 집이 감옥으로 변했다. 정상인이라면 인간 몸은 호메오스타시스(항상성)로 돌아가려고 그토록 몸부림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목구멍의 약간의 문제를 빼면 호메오스타시스를 획득하는 중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세상도 결국 신체 아닌가. 여러 논자가 갈파한 통찰이 많지만 호메오스타시스를 획득하면 사는 것이고 호메오스타시스로 돌아가지 못하면 죽거나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필자는 예전부터 몸이 아프면 이것은 내가 아픈 것이 아니고 내 몸이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며 염력을 불어넣었다. 폴 발레리가 ‘피부는 자아다’라고 한 적이 있다지만 꼭 내가 자아일 필요도 없을 듯하다. 각설하고, 인간의 몸은 증기기관 같아서 외부의 에너지를 수용해 그 안에서 열을 만들고 몸 밖으로 열을 연기처럼 내보낸다. 열역학 제1 법칙처럼 에너지가 보존되는 것이다. 어쨌든지 이 균형도 호메오스타시스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 균형감도 호메오스타시스도 깨져나가는 한 해 끝에 서 있다. 검찰이 정권을 가져가면서 군인 비스름한 집단이 사회신체의 균형 감각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두환은 총구로 한국사회 온도를 오미야콘(세상에서 제일 춥다는 사하공화국 안의 도시) 급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가히 천공의 나라라 할 만한 검찰 정권은 이태원에서 158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천공이 위패, 영정사진 있으면 악귀가 옮겨붙는다고 했다고 그 동자승 접신하는 무당의 말을 따라 하는 나라에 균형감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검찰 정권은 총구야 들이대지 않겠지만(미얀마 수준으로 퇴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칭 그 알량한 ‘법’으로도 국민을 겁박하는 데 충분하다 여길 법하다. 아니, 그 법은 법이 아니다. 칼일 뿐이다. 법을 빙자한 칼. 그리고 그 칼은 법복 뒤에, 법복 속에 숨겨놓을 수 있다.

이 호메오스타시스가 얼마큼 파괴될지 필자는 천공이 아니라 알 수 없다. 하지만 검찰 정권의 탄생으로 그 파괴의 서막이 열렸다. 주휴수당을 없앤다든지 문재인 케어 폐기한다든지 노동, 보건 분야 등에서 시작한 ‘국가권력과 자본가의 착취 콜라보’는 토끼해인 내년에 본격화될 것이다. 파괴의 서막을 연 지 얼마 됐다고 벌써 각종 민영화 타령 아닌가. 자본주의 자체가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마당에 전쟁과 코로나가 겹쳤으니 자본가는 <재벌집 막네아들>에 나오는 순양그룹의 이상민 마냥 국가와 정권에 줄을 댈 것이고 노동자-서민의 피만 주야장천 빨아댈 것이다. 올해 힘을 비축한 호랑이가 내년의 토끼 사냥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 검찰 정권은 아마도 벌써 점까지 다 봤을 듯하다.

몸이 차가워지고 있다. 서울역 앞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이 박스를 벽 삼아 이불 삼아 스스로를 냉동시키고 있다. 한파만 문제가 아니라 내년에 밀어닥칠 경제적 한파가 노동자와 시민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이다. 거대 양당이 정치를 독점하는 정치적 한파야 이미 이 땅을 잠식한 지 오래다.

 

 

어제는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가 죽음을 4개월 앞둔 수용소에서 ‘선한 능력으로’라는 기도문을 마지막으로 쓴 날이었다. 수용소에서 회퍼가 기도한다. “내 조국의 멸망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조국이 온 세계에 주고 있는 고통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조국의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자도 기도한다. “내 조국의 멸망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권력자는 조국이 망하면 안 된다. 정권이 곧 조국이고, 빨대 꽂을 곳이 사라지는 탓이다. 그들에게는 이태원도 세월호도 ‘시체팔이’ 장사일 뿐이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놀기 바쁘다. 주식시장 문 닫으면 앞으로 주가조작은 어떻게 하나? 경제 폭망하면 자본가들에게서 커미션 좀 두둑하게 챙겨야 하는데 각종 이권 특혜 장모 집도 도와줄 겸 자본가를 팍팍 밀어줘야지 하며, 윤 정권은 두 손 모아 높이 들고 누구에게 기도하는 걸까? 이태원 참사 49재 날 이태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축제장에서 희희낙락하는 정권에게 기대할 것이 무엇이 남아 있겠느냐마는, 호랑이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채, 한 해가 가고 있다. 토끼들이 더 죽어 나가는 꼴 보기 전에 필자는 본 회퍼에 빙의해 말하고 싶다. “내 조국의 멸망을 위해 기도합니다”.



글 _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