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원중도개발공사–아이원제일차–레고랜드로 이어지는 건설사의 위기가 채권시장에 ‘돈맥경화’, ‘심근경색’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8일 강원도가 2050억 원의 채무를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장 바닥에 돈이 말라가고 있다.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고 해도 힘들고, 트리플에이 등급의 한전채의 금리도 5.9%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금리를 더 준다고 해도 채권을 사주지 않는 상태다. 강원도는 내년 1월에 2050억 원을 갚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미 디폴트 선언이 시장을 뒤흔들어놓은 상태다. 흡사 영국이 감세 정책 등 잘못된 정책을 시장에 시그널로 보내면서 영국발 위기를 낳았듯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가 닥칠 거라는 상황 속에서 국내에서는 김진태 발 경제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 달 23일 국채를 발행해 50조+α의 자금을 풀겠다고 했다. 회사채 기업어음(CP)을 매입하는데 16조 원, 채권시장 안전펀드에 20조 원 등을 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1월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 액이 68조 원이고, 올 6월에 발행된 CP가 532조 원이다. 당장 올해는 어찌어찌 넘어간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중소기업이 줄줄이 파산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고용 문제가 심각해지고 경제는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진다. IMF가 한국에 IMF를 경고한 이유다.

레고랜드 사태로 발생한 금융위기가 50조+α로 문제가 해결될지 미지수다. 노무현 정권 이후 건설사는 소위 부동산PF 대출로 마련한 자금으로 토건사업을 벌여왔고 그 액수가 지난 10년간 두 배 늘어나 112조나 된다. 건설사의 대출 지급 보증을 증권사 등이 해주는 것인데 자산 규모보다 지급 보증액이 큰 증권사도 있다고 한다. 지자체–건설사–증권사 등으로 도미노처럼 파급이 이루어지고 자금 시장이 막히면서 일반 기업들의 자금줄도 동시에 막히고 있다. 신용등급이 좋은 채권들(한전, 도로공사 등)이 시장에서 자금을 싹쓸이해가는 바람에 중소기업만 회사 운영자금을 구하지 못해 파산 직전에 가 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김진태의 그 촐싹댄 실언도 문제지만 세계 2위의 글로벌 프랜차이즈 레고랜드라는 허황된 토목공사를 실시한 최문순 전 지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 인상 등 물가인상, 고공 행진하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경기 침체를 더욱 가속할 공산이 크다. 대출 만기가 1년 안에 빨리 돌아오는 CP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결국 노동자,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을 포함한 국민들 세금만 건설사, 증권사 등의 입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청와대 이전한다고 1조 원의 국민 세금을 대통령 일가 등 엉뚱한 곳에 갖다 바치고 50조+α의 돈이 애먼 곳으로 또 들어간다. 설상가상으로 윤 정부하에서 재정준칙법이 시행되면서 복지는 축소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때문만인가. 코로나가 심할 때 은행은 떼돈을 벌어 직원들 주머니 두둑하게 챙겨 명퇴시킬 정도였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하고 대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고도 남을 돈들이 남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자금경색, 금융경색, 심근경색 등 자극적인 말들만 유포시킨다. 자본주의는 겉으로는 스펙터클한 것처럼 보이지만 돈놀이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CP니 ABCP(자산유동화 기업어음)니 영어 단어가 난무하고 일반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이 어지러이 날린다. 돈 빌리고 자금을 조달하고 이자(금리) 주고 어느 한 곳이 부도나는 것을 방지하려고 지급보증을 서주고 만기 돌아오고 또 그 보증을 최종적으로 정부가 해주는 식으로 경제 주체들 간에 연쇄적인 도미노 현상, 건설사에서 은행으로, 증권사 등으로 책임 떠넘기기가 일어나는 것뿐이다. 은행도 사실은 합법적인 도박 기구에 불과한 것 아닌가. 주식도 마찬가지다. 섯다, 마작 등 도박은 법으로 금지하고 벌을 주지만 은행과 자본주의의 돈놀이는 아무도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벌도 주지 않는다. 파산이나 자살 등 경제주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자본주의의 돈놀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영천에 2025년에 경마장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들린다. 신세계 쇼핑센터가 들어온다는 말도 있다. 경산 하양도 아파트 가격은 천마루를 질투하듯이 솟구치기만 한다. 포항에서 경주에서 쇼핑하러 영천까지 차 몰고 올 거라는 둥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공장이며 공장부지며 땅이며 죄다 사두었다고 한다. 얼마 전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경마장 들어올 때 그 앞에 장례식장을 지으면 돈벌이가 잘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경마하다가 돈을 날리면 자살할 것이니 영안실이 잘 돌아갈 거라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무정부 상태와 주기적 경련을 자본주의의 숙병(宿病)이라고 불렀다. 이 숙병을 우리는 지난 IMF에서 2008 금융위기를 지나 현재도 계속 겪고 있다. 그 주기적 경련은 공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작금의 상황은 자본주의하에서 벌어지는 필연적인 주기적 경련이다. 굳이 강원도 레고랜드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라는 신체는 끝없이 주기적 경련과 공황에 시달린다. 대구고 경북이고 토건족은 넘쳐나고 무엇이 파워풀한지 몰라도 대구는 파워풀대구를 선언했다. 파워풀한 토건의 망령은 강원도를 넘어 전국에 널려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거대한 유동성 자금이 인플레로 영향을 미쳐 잠시 투기세력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식이고 펀드고 아파트고 채권이고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의 돈놀이는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세계 경제가 빨란 불을 켜기 시작했다는데 자본주의라는 신체 구석구석에 구멍이 뚫려 올겨울은 심신이 몹시 추워질 듯하다. 영국인지 한국인지 동남아시아인지 남미인지 어디서 퍼펙트 스톰이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글 _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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