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타카기 슌스케(高木俊介)에 따르면 일본에서 8월 8일은 요괴들의 날이다.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요괴, 유령, 원령, 모노노케(귀신)가 활약하는 괴담 이야기는 여름밤의 오락거리다. 일본의 민속학자인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國男)에 따르면 요괴와 모노노케는 영락한 신들이고, 유령은 이 세상에 미련을 두는 사자(死者)이며, 원령(怨靈)은 한을 품고 죽어도 죽지 못한 자이고, 요괴는 세간 구석구석에 거주하는 유희, 유령은 거주 공간이 없이 서성거리는 자이며, 원령은 한을 품고 상대방의 것을 습격한다. 사람들은 촛불 앞에서 각각의 생각을 품고 떨고 기대하고 웃고 울면서 서로 이야기한다. 이상하게도 8일을 낀 6, 9일에 인류 최초의 핵폭탄이 일본에 떨어졌다. 어느 괴기담에도 없는 지옥이 이 세상에 펼쳐졌다. 하라 타미키(原民喜)라는 일본의 시인은 폭풍에 타버려 정처 없이 떠도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이 세상에 전달하며 살다가 자살했다. 그리고 며칠 후 대한민국은 해방되었다. 이상은 타카기 슌스케가 페북에 올린 글이다.

여기서 한가하게 괴기담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괴기담은 한여름 밤의 꿈도 오락거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식민지는 수많은 사람을 유령, 원령으로 만들었다. 그 대가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혹독하게 치렀고 지금도 치르는 중이다. 매년 8월 15일 일본 히로시마에서는  평화공원과 그 옆의 원폭 돔에서 집회가 열린다. 코로나 전에는 매년 그 집회에 참석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일본의 원령을 위로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평화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에서 원폭 투하 시의 히로시마의 참상을 본 적이 있지만, 일본인에게 원폭은 지옥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에 개봉했던 영화 <군함도>만 그러랴. 위안부의 참상은 더할 나위 없다. 아마도 아베의 죽음은 하늘에서 내린 응분의 대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이나 한국이나 공히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에 텀벙텀벙 발을 들여놓고 있는 바람에 동아시아에서 전쟁의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은 반년이 다 되도록 끝날 줄 모르고 태풍의 눈을 동아시아로 돌리고 있는 중이다. 때마침 바이든이든 푸틴이든 시진핑이든 기시다든 윤이든 죄다 민주주의의 가치와는 동떨어진 인물들이 집권하고 있다.

 

타카기 슌스케가 말한 요괴들의 날 이야기처럼 식민지 경험만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유령과 원령들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 폭우로 숨진 반지하방의 세 가족 이야기든 하천 급류에 휩쓸려 죽은 사람의 이야기든 2천 명 이상이 매년 현장에서 죽어 나가는 산재 사망 이야기든 기억하기에도 벅찰 만큼 우리 주변에는 한을 품고 죽어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혼령들이 차고 넘친다. 핵폭탄이 아니더라도 물 폭탄이든 대포든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이 관철되며 전개되는 과정에서 출현하는 ‘공황’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현재 전쟁 덕분에 미국의 군수 산업의 주가는 급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불과 2개월 사이에 록히드 마틴 등의 주가는 14%가 올랐고, 미국의 군사 지원은, 330억 달러(5/10 현재)이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군사 예산의 5.5배에 달한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는 전쟁으로 연명을 하려고 하고, 이제 어느 나라 정부도 휴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파가 2/3를 넘었다. 군사비 2배 노선도 무너지고 있다. 한편 일반 민중들의 생활은 팬데믹이 덮치면서 에너지와 식품 등 물가는 상승했고 일본에서도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50년 만의 엔화 약세고 목욕탕 가격까지 올라갔다. 게다가 그 사이, 지금까지의 상식을 초월한 기후 재해가 속출. 기록을 깨는 기온 상승, 홍수 등, 지구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금 인류세로 불리는 기후 위기만 봐도 전쟁 같은 건 하고 있을 때가 아닌 상황이다. 전 세계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데모와 파업을 일으켜 영국과 스리랑카에서는 정권을 사임시키고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전직 게릴라 대통령이 탄생했고 호주에서는 노동당 정권이 부활했다. 외국에서는 임금이 아니라 이윤을 깎으라고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리지만, 국내에서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격동의 시대다. 이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대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옥 같은 이 시대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우리 곁에서 떠도는 수많은 혼령을 위로하기 전에 우리 자신들이 위로받아야 할 판이다.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코로나는 끝날 줄 모르고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지치게 하고 있다. 자연사한 일반인들의 혼령, 사회적 타살로 죽은 많은 노동자들의 혼령, 전쟁으로 죽어가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혼령들을 위로하는 일이, 그래도 먼저다. 시원한 바람 부는 것이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며칠 안 남았다. 하지만 수많은 죽음과 상처들을 안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라 마뜩잖다. 되먹지도 않은 지배계급들과 아직 혹서 안에서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글 _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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