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유족의 동의 없이 유출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언론의 본분을 망각했다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 ‘패륜’이라고까지 공격한 모양이다. 이태원이라고 하는 곳은 할로윈 축제를 벌인 사적인 공간이지만 살릴 수 있었던 20대들 160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은 것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적인 사건이었다.

마침 학교에서 달성군 설화리 상여소리 보존회의 망자를 보내는 의식을 보았다. 한 사람의 생명을 보내는 데에도 많은 사람이 동원되고 지극정성을 펼친다. 그러나 국가는 세월호 참사의 데칼코마니라고 해야 할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또한번 외면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세월호 데자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민초들에게는 가족밖에 없었다. 세월호 때만, 이태원 때만 국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다. 한국전쟁 때 총알받이들만 남겨두고 도망간 군 간부들 탓에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빼앗긴 것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태원과 세월호에서 억울하게 죽은 청춘들만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은 늘 생명을 죽이고 그 죽음/죽임을 팔아 장사를 했다. 윤 정권은 이태원 사태 이후 거짓 대책 회의를 열었고 이마에 ‘숯 칠’을 하고 나타났다. 위패도 근조도 영정사진도 없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급하게 땜빵 조문만 했다. 그리고 매년 노동 현장에서 죽어나가는 산재사망자들의 죽음을 팔아 자본가들은 공장을 돌리고 이윤을 벌어들였다. 노동자들이 기계에 끼여 죽어 나갈 때 자본가들은 돈 잔치를 했다.

이태원 참사를 보다가 러시아의 소설가 고골의 소설 <죽은 혼>이 떠올랐다. 소설 <죽은 혼>은 한마디로 말해 ‘시체장사’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 치치코프는 특유의 넉살과 친화력을 이용해 N 시의 고관대작과 유명 인사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았다. 그러고 나서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들의 명부를 사들여 그것을 이용해 지방의 토지를 불하 받아 담보대출을 받고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했다. 흡사 오늘날 노숙인, 장애인 등을 이용해 불법 대출받는 비즈니스의 원조는 180년 전에 쓰인 고골의 소설 속에 나오는 치치코프였다. 이미 죽었으나 호적에서 정리되지 않아 등기된 농노들 때문에 세금을 더 내야 했던 지주들과 죽은 농노들을 사들여 돈을 벌려고 했던 치치코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난날 세월호 사건을 두고 보수언론은 ‘유족들이 자식을 팔아 시체장사를 한다’고 공격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모이기 시작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을 향해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다. 애도를 강제하고 형식적인 조문이 끝나자 윤 정권은 MBC 기자들을 따돌리고 캄보디아에 ‘김건희 화보를 찍으러’ 갔다.

희생자 명단 공개를 두고 ‘패륜’이라고 몰아붙인 보수들은 이태원 참사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미국 젊은이들이 할로윈 파티를 소규모로 한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이태원에 놀러 간 젊은이들을 에둘러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당 신문은 10월 31일 자 지면에서 할로윈에 열광하는 MZ 세대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하단에 ‘무덤 분양’ 광고를 실었다. 도대체 누구인가? 고골의 치치코프마냥 시체장사를 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태원 사건이 벌어진 지 이틀 후에, 삼일장은 고사하고 애도도 조문도 끝나지 않았는데 ‘무덤 분양’ 광고라니?

 

 

한국 사회는 유독 죽음과 죽임이 많다. 한국전쟁, 해방공간의 사건들, 노동자, 시민, MZ 세대, 세월호 아이들, 광주 학살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이삼일로 애도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곳이 이 동네다. 한 세기를 애도 기간으로 정해도 턱없이 부족할 판이다. 임기 내내 이마를 숯으로 칠하고 부적을 들고 다녀도 모자란다. 애도가 끝나고 새 살이 돋아날 시간이 없다. 새 살이 돋아나려고 하면 다시 죽음이 판친다.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기는커녕 죽음의 굿판은 또다시 벌어질 것이다.

어디 한 군데 희망을 둘 자리가 한 뼘조차 없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소설 <죽은 혼>이 나온 1842년에서 180년이 지난 오늘 고골이 이태원 참사를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소설 <죽은 혼>은 돈벌이에 환장한 치치코프, 억만장자 코스타조글로 등 오늘날로 치면 영지 즉 토지를 매개로 돈벌이에 미친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180년이 지났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체장사는 그 미친 돈벌이 장사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말이다. 돈과 자리에 미친 자들이 있는 한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는다.



글 _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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