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간밤에 다녀간 산타 할아버지가 두고 간 선물은 동화책이었다. 지금은 내용이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책을 그때 나는 책 모서리가 닳을 만큼 매일 읽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산타 할아버지는 내년에도 또 올 테니까. 다만 한 권이 아니라 전권을 선물해 달라는 내 기도를 그가 들어줄지 걱정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면 꼭 책을 들고 갔다. 책을 다 읽어야만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어째서인지 다행히도 지금껏 ‘항문 외과’를 드나든 적은 없다. 집에는 몇 번씩 완독한 책이 빼곡했고, 읽을 책이 없으면 역사 교과서를 읽었다. 엄마는 독서를 좋아하는 나를 데리고 종종 서점에 들렀다. 손이 모자라 턱과 어깨로 받친 채 책을 가져오면 엄마는 양쪽 눈썹꼬리를 아래로 내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내게서 책을 모두 받아 든 엄마는 꼭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은 뒤 몇 권만 다시 고르게 했다. 내가 원하는 책을 모두 사주지 못하는 엄마나 풍족하지 않은 우리 집 형편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날 못 산 책은 다음으로, 다음이 안 되면 또 그 뒤로 미루면 됐다. 생일이 되면 무엇이 갖고 싶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늘 책을 말했다. 친구들은 짧은 편지를 포스트잇에 써서 책날개에 붙인 채 내게 선물했는데, 그 책들을 열 때면 언제고 다시 그 시절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매년 새로운 학년이 될 때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코에 걸었다고 코걸이라고 둘러대는 말처럼 느껴졌지만 진지한 얼굴로 끄덕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수긍하는 척을 했다. 책을 읽을 때면 선생님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나를 나무랐다. 학생이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닌 책을 읽는 건 쓸데없는 짓이 된다는 걸 몰랐다. 학생에게 필요한 건 오직 점수로만 환산되는 문제를 풀 능력이었다. 단 하나의 정해진 답을 찾기 위해 자정까지 교과서에 코를 박아야 하는 일상은 형벌 같았고,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할 필요나 다음을 상상할 필요가 없는 교육 방식은 악몽 같았다. 선생님들은 좋은 대학을 가려면 문제집을 풀고 교과서로 공부하라며 윽박질렀고 때로는 애원하기도 했다. 줄곧 선생님은 책을 읽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지만 내가 원하는 건 교과서에 없었다.

울적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일수록 책을 읽었다.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저절로 책에 손이 갔다. 책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는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갔다. 책을 읽다가 만난 문장에서 떠오르는 나의 경험은 슬픈 것이기도 기쁜 것이기도 했다. 어느 작가의 글은 저 너머에 있는 나의 오랜 기억을 더듬었다. 내 경험도 글이 될 수 있을까 멈칫한 것은 잠시였다. 어떤 문장이 깨운 상념이 나의 이야기가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빈 문서에 깜박이는 커서를 멍하니 보다가, 일기를 친구 삼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고백했던 때처럼 화면을 나의 언어로 가만히 채워나갔다. 쓰는 와중에도 쓰고 나서도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눈물로 처음 쓴 글은 내게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그때 알았다. 쓴다는 건 망설일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게 글이 됐다. 세상의 모든 낱말은 나의 고유한 시간을 품고 있었다.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 매일 보는 사람,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화분이나 하늘의 구름까지도 내 글이 되었다. 눈만 뜨면 만나는 이야깃거리에 갓 연애를 시작했던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어떤 날엔 ‘당신이 한 짓을 글로 써버리겠어.’라고 생각하면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잠재울 수도 있었다. 넘쳐나는 글감과 떠오르는 생각을 가득 써둔 메모장을 볼 때면 벌써 여러 개의 글을 완성한 듯 뿌듯했다. 글을 쓰고 싶어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때부터 그런 순간을 참을 생각이 없었다. 쓴다는 건 내 안에 소화되지 못한 말들을 게워내는 작업이었다.

글은 오로지 읽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내가 이제는 그것을 쓴다. 그 선생님은 알고 있을까. 당신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던 글이 지금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는 걸.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엔가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갈 나를 생각한다. 그때라면 글이 조금 더 쓸 데 있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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