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 기념(충칭重慶 임시정부 청사, 1945.11.3)’. 사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6월 26일은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신생 대한민국 국군의 포병 소위 안두희가 ‘겨레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거’를 일으킨 날이다.

그날 낮 12시 30분 경교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경무대(‘청와대’의 전 이름)로 옮겨서 연출해보면 뒤집어진 역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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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희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승만 대통령과 쉽게 독대하였다. 이승만은 넓은 책상에 화선지를 펼쳐놓고 큰 붓을 잡아 글씨를 쓰고 있다. 안두희한테는 눈도 돌리지 않고 당대 최고의 명필답게 일필휘지로 ‘統一最善, 北進統一’이라고 갈겨 쓰고 있다.

문득 어디선가 안두희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노래가 들려 온다. 장세정이 부른 ‘해방역 마차’라는 노래다. 안두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싫어하는 친일파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다.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안두희의 심중에 부아가 확 끓어오르면서 이승만을 없애야 나라가 산다는 확신이 더욱 굳어진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해 온 말이 녹음기 틀 듯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각하, 어찌하여 반민특위 사무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습니까? 친일파들의 이간질에 놀아나지 말고 본심으로 돌아가 간신배들을 물리치세요.”
이 말을 들은 이승만은 붓을 내던지고 삿대질을 하면서 호령한다.

“네가 내게 반동하느냐? 나에게 반동하면 국가 민족에 대한 반동이다.”
안두희의 머릿속에 전광석화처럼 스쳐 가는 생각들 – 4.3 제주도 인민 학살 만행, 여순사건, 국회 프락치 사건, 6·6테러 만행 등이 말이 되어 입에서 나오기 전에 그의 손은 가슴에 품은 권총을 꺼내고 있다. 탕, 탕탕탕.

거사에 성공한 안두희는 달려온 비서와 경호원들에게 권총을 내주며 오히려 침착하게 말한다.

“이박사가 있으므로 해서 대한민국에 지장을 주며, 그것이 곧 민주 정부 육성에 장해물이 되므로 내가 죽였다. 이박사는 유엔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미군 철수에 반대하고 미국의 원조를 구걸하여 이 나라를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더구나 친일파들을 고위직에 중용함으로써 민족정기를 손상하고 독립투사들을 박해하도록 사주하였다. 이박사는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죽어야 한다.”


안두희가 법정에서 한 말을 토대로 ‘김구’라는 이름 대신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넣어 각색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이승만과 친일파들은 사활을 건 공세에 나섰다. 정초부터 반민특위(위원장 김상덕 의원)의 의욕적인 반민족행위자 검거 활동에 맞서 온갖 방해 공작을 펼쳐 보았지만,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해 수세에 몰려 왔다. 
 
6월이 되자 이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하여 6월 5일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하여 ‘빨갱이’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 가두는 작업을 끝내고, 제2차 ‘빨갱이 사냥’에 나섰다. 6월 6일에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가권력에 의한 테러를 자행하여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고 친일파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들었다. 6월 20일에는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김약수, 노일환 등 국회 소장파 의원들을 구속하는 제2차 국회프락치사건을 조작하였다. 이로부터 국회는 보수반동파들이 주도하게 되어 이승만독재의 법률적 바탕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이제 이승만에 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세력은 임시정부 추종 세력과 백범 김구뿐이었다. 이승만은 오랜 미국 생활을 통해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매우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승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든 그 결과가 미국에게 유리하면 모두 통과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그의 하수인들에게 틈틈이 암시를 주었으며 그의 부하들은 재빨리 실행에 나섰다. 

△’총알이 지나간 유리창을 통해 본 경교장 앞 뜰 (1949.6.26)‘. 사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물론 그 준비는 오래전부터 해 왔던 일이다. 안두희 하나를 부리는데 대한민국 국군의 참모총장, 포병 사령관, 헌병 부사령관과 특무대장이 동원되었으며 미군 방첩대는 백그라운드를 담당하였다. 

“특무대장 김창룡은 백범이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등 대한민국에 해를 끼칠 사람이므로 제거해야 한다고 나를 세뇌시켰다.”
 “1948년 초,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미군 장교가 사복을 입고 서북청년단 사무실로 나를 찾아 왔다. 1949년 4월부터는 백범을 블랙타이거라고 칭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암적 존재이므로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북청년단 출신으로 미군 방첩대 요원이었던 안두희는 백범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접근하여 신뢰를 얻어냈다. ‘의거’ 당일에도 몸수색을 받지 않고 당당하게 백범을 독대하였다. 그리고 백범에게 일장 훈계를 하고 총을 쏘았다. 이승만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안두희는 이미 ‘애국자’라는 확신범이 되어 있었다. 

1949년 여름은 민족진영에게는 잔인한 여름이었다. 이승만 일당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국회를 길들여 독재 권력을 구축하였다. 승리에 도취한 그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예감하게 하는 극언을 쏟아냈다. 
“북진통일”
이에 즉각 화답한 자는 ‘덮어놓고 나를 따르라’는 이승만의 말에 길들여진 충견 신성모 국방장관이었다.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2019년 대한민국에 1949년의 그 무리가 강시가 되어 나타났다. 장경동 목사는 핵무기를 써서 남북한 주민 4천만을 동시에 죽이고 통일하여 남은 3천만 국민이 아기를 많이 낳아서 잘 먹고 잘살자고 선동하였다. 

한기총의 전광훈 목사는 문재인 정권이 대한민국을 종북화, 공산화해서 곧 나라가 망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가 지명한 공범에는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꼭 들어간다. 

대구가 낳은 대한애국당은 광화문에 천막촌을 만들고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자며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식에서 김원봉을 언급하자마자 자칭 대한민국의 적자라고 하는 세력들이 일제히 색깔 공세를 퍼붓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대한민국은 김원봉에게 훈장 줄 자격이 없다고 말하자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광복회 사무실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친일파들이 독립투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그 가족들을 박해하던 시절로 돌아간 풍경이다. 
 
1949년 6월에 이승만 일당이 저지른 불법과 폭력행위들을 통틀어 ‘6월공세’라고 하는데 2019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저들의 ‘6월공세’가 부활하고 있다.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밝게 타는 불꽃인지 아니면 진짜 위협적인 역습인지 아직은 분간이 되지 않지만 쉽게 물러갈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역사의 백년전쟁은 계속된다. 그러나 아직은 수구 언론들 힘이 너무 세다. 역사전쟁에서 이겨야 정의가 실현되고 겨레가 산다. 역사전쟁에서 이기려면 대안 언론과 참교육을 통해서 진실을 알리고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그래서 전광훈의 말을 뒤집어보면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제자리를 찾아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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