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3일, 문명교육재단은 2017년 한국사 국정교과서 시범학교 신청을 반대했던 문명고등학교 교사에 대한 징계 의결을 논의하는 징계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문명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배주영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북의 평범한 역사 교사입니다.

예기치 않은 전 세계적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전무후무한 온라인 개학을 하고, 하루하루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기도 벅찬 이 시기에 아무 인연도 없는 남의 학교 교문 앞에 와 있는 것이 참 서글픕니다. 이 시점에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국정 역사 교과서를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18년 중·고등학교 현장에 차례로 2015개정교육과정이 도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교과가 새로운 교육과정에 들어가 새로운 교과서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교과는 예외였습니다. 2019년에도 학년 모두 새로운 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만, 역시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만 예외였지요. 2017년인가요? 그해 국정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 때문입니다. 잘못 진행된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바로잡느라 역사 교과서 집필이 늦어졌습니다. 드디어 올해 모든 학년, 모든 과목이 2015개정교육과정의 교과서로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21세기, 현재 지구상에 나라에서 콕 찍어 발행하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북한 등입니다. 독재국가이거나 민주주의가 충분히 발전했다고 볼 수 없는 나라들입니다. 반면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프랑스, 미국 등은 나라가 교과서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는 자유발행제입니다. 뜻이 있는 모든 출판사가 자유롭게 교과서를 발행하고 교사는 무수한 교과서 중에서 자유롭게 골라 수업을 꾸립니다. 교과서가 꼭 절대적인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는 한때 완전 거꾸로 국정교과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국정교과서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 정권 때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차츰 검정교과서로 바뀌었고, 이제는 자유발행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고 더 깊은 지식 습득의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로, ‘이념 주입형’에서 ‘가치 갈등의 합리적 해결 능력 배양’으로의 역할을 교과서에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이런 흐름에 국정 역사 교과서는 정말 ‘갑툭튀’입니다. 아니, 갑툭튀가 아니겠네요.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교과서 제작이 시작됐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감옥에 가 있는 전직 대통령은 왜 유독 역사 교과서에만 국정을 고집했을까요?

그들은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마침 문명고등학교도 ‘바른 생각, 밝은 학교’를 강조하더군요. 바르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올바름은 누가 규정하나요? 정의는 하나입니까? 여기서부터 그들과 문명고등학교는 틀렸습니다.

역사는 다양성입니다. 역사 수업에서 가장 먼저 공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석기시대요? 고조선이요? 아닙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입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답을 내리실 겁니까? 머릿속 여러분의 생각들이 모두 정답입니다. 100명의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비슷한 대답은 나올지언정 똑같은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다양성, 살아온 과정, 서 있는 위치가 다르므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그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보듬으며 인류가 애써 이루어온 인권, 평화, 평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는 과목이 역사입니다. 그러한 과목에 국정교과서라니요? 그들이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의 ‘올바른’ 교과서는 과연 무엇인가요?

하물며 국정교과서는 시장경제 관점에서도 경쟁력이 없습니다. 국정교과서 시대와 지금의 검인정교과서 체제 안에서의 교과서 질을 비교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학교에 다닐 때의 교과서와 여러분들의 자녀, 조카, 후배들의 지금 교과서를 비교해보십시오. 디자인, 종이 질, 학습에 제공되는 자료 등 차원이 다릅니다.

다행히 국정 역사 교과서는 빛을 보지 못했고, 2017년 5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몇십 년이나 다시 뒤돌아갈 뻔한 후퇴를 막아낸 것이 시민들입니다. 그 앞자리에 자랑스럽게 문명고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있었습니다. 그 옆자리를 든든히 지켜주신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번에 문명교육재단 징계위원회에 이 다섯 분의 선생님이 회부되었습니다. 오늘은 슬프게도 그중 두 분 선생님의 징계위가 열리는 날입니다. 저는 이 두 분의 선생님을 전혀 모릅니다. 성함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일 제치고 이곳에 왔습니다. 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의 징계 사유는 복종의 의무 위반, 품위 유지 위반이라고 들었습니다. 품위는 누가 잃은 것입니까? 문명교육재단이 팽개쳐 버릴 뻔한 품위를 간신히 지켜 준 사람들이 다섯 분의 선생님 아닙니까? 복종의 의무 위반이라니요? 교사는 부당한 현실에도 무조건 복종해야 하나요?

여기, 평범하고 복종을 잘하는 독일 공무원이 있습니다. 그는 공무원답게 무척 성실하게 일을 했지요.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 살면서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던 이 사람은 아돌프 아이히만입니다. 수많은 유태인들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죠.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한 간디의 불복종 운동을 모르시나요? 일제시대 복종을 잘한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수많은 친일파 아닌가요?

지금의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을 만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 선조들은 일제의 지배에 저항하고,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복종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부당함에 저항을 가르치지요. 복종은 정당한 명령에 복무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것에까지 무조건 두말없이 따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또다시 전국의 이목이 경산의 한 고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진심으로 충고합니다. 다섯 분의 선생님이 간신히 지켜낸 문명교육재단의 품위를 다시 잃어버리는 참사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통렬히 경고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지 마십시오.

 

글 _ 배주영 (광평중 교사, 경북역사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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