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숲 ⓒ이현정

지긋이 바라보는 숲들은 숲 빛 다워졌다. 여름이 곧 삼키기 위해 턱밑까지 쫓아온 듯 낮 기온은 오르고 올랐다. 물론 한파가 들이친 이후로도 쌀쌀한 바람이 쉬 물러나지 않는다. 봄은 봄인 것이지.

코끝과 잎 안 가득히 잠시 마스크를 벗고 통째 마시는 공기에 알싸한 꽃가루들이 뒤섞여 재채기가 몰아친다. 한 수 더 뜬 숲 바람은 거들고 있다. 다행이다. 인적이 드문 숲길이니 말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마스크를 벗는다는 것은 일탈 행위가 된 듯 아무도 없는, 아니 3시간이 지나도록 어떠한 이도 지나가지 않는 숲에서 웬걸 눈치에 무딘 내가 곁눈질을 한다.

다시 숲은 1년 사이클이 복잡하게도 돌아갈 것이다. 벌써 계곡은 관목들(생강나무, 진달래, 병꽃나무 등) 잎사귀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우고, 때죽나무와 쇠물푸레 등 작은 키 나무들 또한 한껏 잎새를 펄럭이고 있었다.

또한, 한 발 한 발 내디디는 발아래 작은 풀꽃을 피워 올렸던 아이들은 여기저기 녹색 열매로 부풀어 올라 있고, 그 속에 알알이 박힌 작은 씨앗들이 영롱하게도 보일 듯 말 듯 비쳐 보인다.

 

줄민둥뫼제비꽃의 열매 ⓒ이현정
노랑제비꽃 열매 ⓒ이현정
큰괭이밥 열매 ⓒ이현정

얼마나 올랐을까. 벌써 뜨겁게 타오르는 빛들이 환하게 비치는 그곳은 숲속의 풀밭이다. 조개나물들이 서로 앞다투듯이 피어나고, 한쪽엔 은방울꽃 알알이 흰 송이들이 조롱조롱 매달려있다.

 

은방울꽃 ⓒ이현정
붉은조개나물 ⓒ이현정
조개나물 ⓒ이현정

그렇게 계속 오르다 보면 계곡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 나타난다. 하지만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떠오르듯 엉키고 마구 꼬인 덩굴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비집을 틈도 없이 말이다. 으름덩굴과 다래덩굴이 그 주인공이다. 마구 뭉쳐져 뒤섞여 있는 공간은 그저 그들의 본분에 충실했을 뿐인데, 빛을 찾아 성실하게 쫓았을 뿐인데. 왜 난 어지러운 세상 속 목적을 잃고 헤매는 내 맘속을 들여다보듯 보았을까 말이다.

 

으름덩굴과 다래덩굴이 엉킨 덩굴숲 ⓒ이현정

그래 분명 내 속을 꿰뚫었을 것이리라 말이지. 바람에 출렁이며 춤을 추듯 덩굴이 이야기해 준다. 하나씩 제쳐보라며 말이다.

잠시 꿈속의 환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럴 것이 맞았다. 해가 지날수록 숲속의 꽃들은 나를 자극한다. 헝클어진 덩굴 사이를 힘껏 밀어젖히고 능선 위에 오르게 하고, 깎아지른 비탈진 낭떠러지 위에서 언제 피어날지 모른 채 시간에 정성을 쏟는 털개회나무를 살피게 만든다. 오늘 오후 늦은 시간까지 말이다.

험악한 계곡을 타고 오르는 속도는 그야말로 꽃들을 향한 질주 본능을 일으키는 셈이다. 그래 어떤 숲에서든 그 쫓는 본능은 꽃을 향했다. 으름덩굴의 꽃이 빛과 마주하며 눈을 맞추고 비비며 달래고 있다.

 

털개회나무의 어린 꽃봉오리 ⓒ이현정

이제 4월도 끄트머리다. 여름 냄새가 슬슬 풍겨 올 날이 머지않았지만, 엉킨 덩굴 같았던 내 목적은 그 빛을 따랐던 덩굴들이었고, 꽃이었다. 오로지 이들을 만나기 위한 질주하는 본능을 따르는 것이었다.

 

글 /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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