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환호공원에 설치된 ‘체험형’ 조형물
‘스페이스워크’(SPACEWALK)

 

포항 환호공원에 설치된 체험형 공공미술 조형물 ‘스페이스워크’(SPACE WALK)가 공개된 작년 11월. 이달은 포항이 다시 한번 관광도시로서의 위용을 전국적으로 떨치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로 각종 언론사는 스페이스워크가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있으며, 이 랜드마크의 관광객 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페이스워크가 전국을 누비는 KTX 차내 좌석에 비치되는 잡지, ‘KTX 매거진’의 대문사진(2022년 1월 호)을 차지한 순간, 그러한 전망이 적중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내가 사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은근하게 고양되었을 포항시민들의 순박한 얼굴을 떠올려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50만 인구 선이 깨어질 것을 우려해왔던 포항시의 지난 몇 달을 돌아보면, 이처럼 드물게 반가운 자부심을 시민들이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의 관광지가 발휘하는 힘을 짐작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워크는, 일반에 공개된 순간부터 포항을 대표하는 ‘차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차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라는 이 말은 결코 과장 섞인 수사로 치부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실제로 포항의 이 “새로운 랜드마크”가 이 관광명소에 접근할 수 있는 시민과 접근할 수 없는 시민을 구분하여, 그중 후자인 시민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기 때문이다. 후자의 시민 중 대표적인 이들은 단연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다. 말하자면 장애가 있거나 계단 이용이 어려운 이동약자에 해당하는 시민 대다수가 이 체험형 조형물을 “체험”할 기회를 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스페이스워크는 설계되었다. 포스코가 이 체험형 조형물을 포항시에 기증한 이유는 “포항시민들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를 주기 위해서라고 소개하며, 이강덕 포항시장은 “스페이스워크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포항의 풍경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상찬하고 있지만, 이들이 전제하고 있는 ‘시민’(또는 관광객)에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약자들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 결과, 시민(또는 관광객)을 비장애인과 장애인으로 양분하는 비장애인 중심 체험형 조형물인 스페이스워크가 시민들의 공원인 환호공원의 중심부에 ‘117억짜리 차별’의 상징물로서 위풍당당하게 자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서 포항시민의 가슴 한구석에 은근하게 차올랐던 자부심에 끼얹어진 이와 같은 찬물은 누구에 의한 것일까?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이동하는 데 제약이 큰 시민’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시민의 이동권(right to move) 및 접근권(right to access)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제적 효과에만 주목한 포항시 자신일까?

환호공원은 근린공원*으로, 「도시공원및녹지등에관한법률」이 정하는 생활권공원**의 하나이다. 즉 도시생활권의 기반이 되는 공원 중에서도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보건과 휴양,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을 위해 설치되고 관리되는 공원이라는 의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포스코와 포항시는 조형‧건축‧미술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 및 시민위원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공공미술’ 작품으로서도 소개되는 스페이스워크의 디자인 선정과 제작, 설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디자인 선정은 물론이거니와 선정된 공공미술 작품이 그것이 설치될 장소의 ‘공공성’과의 밀접하고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정 시민들이 ‘공공’(公共)으로부터 배제된 것이 명백하고, 이는 장애인, 노약자 등 여러 유형의 이동약자 시민의 보건과 휴양,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기능하는 환호공원의 존재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페이스워크는 도시에 대한 시민의 권리, 공원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실질적·상징적으로 저해하는 한 ‘공공미술’ 작품으로서의 그 가치를 의심받을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스페이스워크의 디자인을 의뢰받았으며, 사실 일찍이 2011년에 거의 동일한 디자인의 조형물을 독일 뒤스부르크 앵거공원에 설치한 적 있는 독일 출신 예술가 하이케 무터(Heike Mutter)와 울리히 겐츠(Ulrich Genth) 부부가 대륙 건너 바다 건너 포항시민의 이러한 평가에 억울해할 일은 만무하겠으나, 이미 10년도 지난 디자인의 게으른 ‘복사+붙여넣기’로 인해 진짜 억울한 건, 포항 관광명소에 정작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이동약자 포항 시민일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코 최정우 회장이 “스페이스워크는 포스코와 포항시의 상생과 화합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소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자신들의 생활 환경에서 이 조형물을 직접 보고, 만지고, 누리게 될 ‘시민들의’ 상생과 화합이 아닌, 이를 우회하여 ‘포스코와 포항시의’ 상생과 화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포항시민이 공유할 자부심과 공공성에 처음부터 ‘차별의 상징’이라는 얼룩을 남길 운명이었던 스페이스워크가 포항 시민에게 던지는 물음은 ‘누구의 상생을 위한 도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닿아있다. 2022년 1월,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을 ‘배리어프리(barrier-free)’ 도시로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와 함께 고령자나 장애인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배리어프리 운동의 정신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강덕 시장의 말이 전제할 수밖에 없는 포항 사회에 대한 정직하고도 두려운 성찰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명약관화하다. 포항 사회가 고령자나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었다는 것. 그들에겐 포항 사회 사방에 배리어, 즉 장벽이 가득했다는 것 말이다. 포항시장의 배리어프리 선언은, 바라건대, 그와 같은 ‘정직하고도 두려운’ 성찰을 포항이란 도시 조성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고백에 입각해 있다. 관광명소를 포함해 도시 공간 곳곳을 누빌 수 있는 보편적 이동권 및 접근권의 측면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약자 시민이 왜 자기 동네에 있는 ‘포항 핫플레이스’에도 접근할 수 없는지를 집요하게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상북도가 2017년부터 제정·시행 중인 「경상북도 관광 약자를 위한 관광환경 조성 조례」를 그간 경북 관할인 포항의 시장과 시의원들은 왜 형식적으로도 제정하지 않고 있었는지 되물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동약자가 관광명소는커녕 병원에도 가기 힘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지, 주말 종교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공휴일이나 명절이 되어도 왜 홀로 방에 갇혀 있어야 했는지, 법정대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저상버스와 동행콜(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특별교통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배리어프리’ 도시 포항의 야심찬 계획은 과연 무엇인지(…), 포항의 시장과 시의원들이 저마다의 ‘정직하고도 두려운’ 성찰을 담아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마주하는 시민의 얼굴 속에는 ‘상생’에서 언제나 소외되었던 얼굴들, 시민들의 공간(space)을 누빌(walk) 자유를 가져본 적 없던, 그래서 낯선, 시민의 얼굴들이 드러나야만 할 것이다. 왜 포항 환호공원은 ‘117억짜리 차별’의 상징이 되었는가? 조형물의 제작비용만 고려한 이 글의 서두를 연 질문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질문이었음이 이미 판명 났다. 우리 사회의 차별을 통해 가려져 왔던 저 낯선 시민의 얼굴은, 117억짜리 스페이스워크와 감히 맞바꿀 수 없는, 고유한,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사진, 글 _ 김운영

 


*근린공원: 근린 거주자 또는 근린생활권으로 구성된 지역생활권 거주자의 보건·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치된 공원을 뜻한다.

**생활권공원: 도시생활권의 기반이 되는 공원의 성격으로 설치·관리하는 공원으로서 소공원, 어린이공원, 근린공원으로 구성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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