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문학자료실, 하근찬 더하기 세미나1 개최

 

영천 출신의 소설가 하근찬(1931~2007)은 1957년 단편 「수난이대」(1957)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 후 수많은 작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수난이대의 하근찬’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따라다녔다. 그의 단편 「흰 종이수염」(1959), 「나룻배 이야기」(1959)와 같은 작품은 외부적 충격으로서의 일제 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개인과 공동체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으로, 그 작품성이 전혀 덜하지 않다. 그리고 『야호(夜壺)』, 『월례소전』, 『산에 들에』 등의 장편에서는 ‘일본군위안부’ 사건을 영천, 경주 일대의 토속적 언어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2007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 작가 ‘백신애’를 재조명하여 ‘백신애문학제’를 이어오던 백신애기념사업회는 이중기 시인을 중심으로 하근찬 전집을 발간하고, 2021년 제1회 하근찬 문학제를 개최했다. 하근찬을 연구하는 전국의 문학인과 문학연구자가 2021년 10월 영천에 모여 하근찬의 작품세계를 탐색하고 작가 정신을 재조명하였다.

올해는 하근찬 작품 속 일본군위안부 사건을 문학, 문화, 국제정치적으로 재해석하여 그 의미를 밝혀보고자 ‘하근찬 더하기 세미나’를 3회에 걸쳐 진행한다. 지난 25일, 첫 번째 세미나에서 “대중문화를 통해 살펴보는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우리의 선택적 기억”이라는 주제로 이승호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연구원이 발제를 하였다.

 

▲하근찬 더하기 세미나에서 발제하는 이승호 연구원(가장 왼쪽)

이 연구원은 일본군위안부 책임과 배상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위안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이 대중의 인식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7, 80년대 국가주의적 사회 분위기에 따라 피해자 여성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고, 일부 기사 등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묻어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로 비극을 희석하고자 했다. 그 예로 동아일보 논평(1984년 4월 27일)이 조갑상의 소설 「살아있는 사람들」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인 김금자의 피해 사실을 덮는 것이 진정한 위로이자 상처치유였을 것이라고 한 것과 경상매일(1993년 1월 10일)이 문옥주 할머니(당시 기사에는 가명인 문길자로 표기)의 증언을 실으면서 일본군 사병과의 개인적 감정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 등을 사례로 들었다.

특히 이 연구원은 최근 장수희 문학연구자 등의 연구를 인용해 당시 대중문화 또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결부되어 진정 드러내야 할 피해자의 고통은 드러내지 못한 채, 여성성을 상품화하기도 하였음을 설명했다. 영화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1965), ‘여자 정신대’(1974),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91) 등이 그러했다. 이 모든 게 ‘선택적 기억’이 가지는 결함, 즉 피해자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희화화하거나 축소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반면 하근찬의 장편소설 『야호(夜壺)』는 그전까지 문학계에서 잘 다루지 않던 ‘위안부’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당시 여성으로서 주인공 갑례가 ‘정신대’(소설 속 표현)로 끌려가는 길에 도망치게 되고 그 이후 겪는 일제강점기-한국전쟁-전쟁 후로 이어지는 한국 여성의 수난사를 응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공출은 아니었다. 말은 달랐다. ‘테이신타이(정신대)’라는 것이었다. 나라를 위해 앞장서서 몸을 바치러 나간다는 것이다. 여자들 중에서 미혼자만 해당이 되는데, 이번에 홍싯골에서는 갑례와 분임이 두 사람이 뽑혔다는 것이다. (중략) 말하자면 징용이었다. 여자들의 징용인 셈이었다.

– 소설 『야호(夜壺)』 中 

 

▲25일 하근찬 더하기 세미나가 영천문학자료실에서 열렸다.

백신애기념사업회는 7월과 8월에도 계속 하근찬 더하기 세미나를 이어간다. 문학이 거대한 자본에 한 줌 돌멩이도 못 던지는 듯한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지만, 지역에 ‘기억저항’과 ‘기억투쟁’을 몸소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문학이라는 ‘씨앗’을 던지는 자리였다.

 

※ 행사 영상은 유튜브 ‘도시사람콘텐츠랩’(https://youtu.be/JsUOmAkujyI)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글 _ 강구민 도시사람콘텐츠랩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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