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들이 안전성과 관련한 다른 것은 신경을 쓰겠지만방사능 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그래서 어민들이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고해양 방류를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오염수 방류 시작할 때 망연자실…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오염수가 3차째 바다에 방출되고 있다. 정부는 우리 수산물은 안전하다고 연일 홍보하면서 수산물 소비를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생계가 걸린 어민들은 오염수 해양투기로 인해 어떤 피해를 보는지, 정부 정책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등을 박형근 고흥어민회 회장을 통해 알아보았다.박형근 고
국회에서 8월 23일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따른 급식조례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정의당 후쿠시마 오염수 무단투기저지 TF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2013년 이후 제정된 ‘방사능 급식조례’를 평가하고 이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식약처는 우리나라 식품 방사능 기준을 1kg당 370Bq(베크렐)에서 100Bq로 강화했다. 하지만 식품 방사능오염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2013년 8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고농도 오염수 저장탱크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식품의 방
1_ 수요공급 원리 vs 자원의 공정한 분배 사이에서 1929년 세계대공황 당시 그 진원지인 미국에선 기괴한 풍경이 동시에 펼쳐지곤 했다. 동부 대도시에는 실직자가 넘쳐났고 그들의 어린 자녀는 영양실조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부 대농장에선 판로가 막힌 캘리포니아 오렌지를 농민들이 시장가격 조절을 위해 트럭 채로 땅에 파묻거나 휘발유를 부어 태워버렸다. 수요-공급 법칙을 맞추기 위한 지극히 ‘합리적’ 자본주의 사고의 결말이다.이게 과연 올바른 합리와 이성이라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를 예찬하는 이들의 주장대로 ‘보
한수원의 부실한 자료 제출“11건 요청 중 1~2건 받았다”지난 5월 6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지던트호텔 31층 회의실은 3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테이블을 가득 재운 채 무거운 기운이 흘렀다. 월성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조사를 위한 ‘조사단’과 ‘현안소통협의회’의 첫 합동회의가 열리는 순간이다. 합동회의는 조사단이 작성한 ‘조사계획(안)’을 검토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날 회의는 조사단과 현안소통협의회 위원들 각 7명(총 14명), 보고를 위해 참석한 한수원 관계자, 행정 지원을 위한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를 포함해 30명이 넘는
탈핵신문이 계속 제기해온 월성핵발전소의 광범위한 방사성 물질 오염수 누출이 사실로 드러났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KINS)이 2019~2020년 사이 월성핵발전소 정기검사를 하면서 작성한 보고서에 방사능 오염수 누출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었다. 특히, 탈핵신문이 방사성 물질 누출 지점으로 추정한 사용후핵연료저장조(SFB) 및 폐수지저장탱크(SRT)에서 실제로 누수가 발생하고 있었다. 관련 보고서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KINS 보고서 “배수 및 벽체 통한 누설 진행”월성1호기 정기검사보고서 131쪽에는 “사용후
월성1호기 지하수 방사능, 3호기의 “4.6배”“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차수막 파손 8년째 방치” 월성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SFB) 차수막 밑의 지하수 방사능의 양이 주변 발전소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성1호기 저장조(SFB) 차수막 밑의 지하수는 리터(ℓ) 당 최대 3만 9700베크렐(Bq)의 삼중수소가 검출됐으나, 2호기는 2만 6700베크렐, 3호기는 8610베크렐, 4호기는 지하수 유입이 없었다. 3호기와 비교하면 1호기에서 4.6배의 방사성 물질(이하 방사능)이 주변 환경에 누출된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조만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123만 톤 정도 쌓인 후쿠시마 오염수는 지금도 하루 160~170톤 정도 생기고 있다. 이 물은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원자로를 냉각시켰던 물과 빗물·지하수 유입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다.1946년에서 1993년까지 세계 각국은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심지어 1975년까지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버리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구소련과 영국이 가장 많은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렸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구소련과 러시아는 1993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일상생활의 끔찍함’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요즘이다. 전염병이 가져다준 새로운 일상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리워 마지않는 바로 그 일상 말이다. 쏟아지는 위기와 재난의 이야기들을 헤치고 살금살금 길을 나선 눈동자는 이내 어리둥절해진다. 너무 많은 것이 바뀌고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서. 도로와 자동차, 건물들은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고 영영 고정되어 버린 것 같은 고체적 풍경에 숨이 막힌다. 물론 견고한 파이프 속을 부지런히 흘러 다니던 부동액의 유속이 오프라인 세계에 한해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