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으로 답답함이 많이 해소되긴 했지만 나 혼자 상담받는다고 남편이 갑자기 살가워지진 않았다. 그래도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의 원인이 모두 남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니 화만 나면 남편에게 화살을 돌리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개인 상담에서 상담 선생님과 작업을 통해 유년기를 돌아보며 내가 그토록 육아에 몰입하고자 했던 이유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루는 책들을 진공청소기가 흡입하듯이 열심히 읽어나가면서, 내가 돌보지 않은 나의 감정이 남편에 대한 불만과 뒤섞인 것을 알아채게 되었다. 내 마음 다루기도 이렇게 어
오늘 아침에 아이들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지구본 ‘공구’이다.알람 신청을 해둔 인스타그램 계정에 지구본 공구 알림이 떴고, 품절이 되기 전에 얼른 결제했다.며칠 뒤에 지구본이 택배로 올 것이다.인터넷을 켠 김에 즐겨가는 커뮤니티 몇 군데를 둘러보고, 익숙한 닉네임의 글에는 댓글도 단다.어제는 zoom으로 진행되는 교육이 있어, 오전 내내 머리에 쥐가 내리도록 공부했다.한 달에 두세 번 이상 구미와 대구로 볼일을 보러 간다. 직접 보고 사야 하는 물건이 있거나, 아이들 병원을 가거나,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 다른 지
딱 한 번, 아이들 교육 때문에 좀 더 큰 규모의 학교가 있는 곳으로 다시 이사 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자유학구제’가 시행되면서, 몇몇 지정학교 사이에 군위 읍내 초등 아이들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군위 읍내 큰 규모 초등학교 앞에 다른 초등학교 홍보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양육자들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오게 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대화거리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군내 한 작은 학교가 ‘방학 없는 학교’로 아이들과 그 양육자를 설득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듣자마자 ‘
“아이고! 올해 입학생이 없다카디 셋이나 와서 을매나 고맙노!” 이사 오던 해 아침에 스쿨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저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아이들이 다니는 군위 효령초등학교는 2024년이면 100주년이 된다.그러니, 동네 아주머니도, 그 아주머니의 아이들도 다녔던 학교인 것이다.마침, 우리가 이사 온 해에 처음으로 입학생이 없었고, 그것은 온 마을의 이슈였는데, 그런 와중에 우리 식구가 3월 말에 이사를 온 것이었다.사람들 눈빛에 환대가 넘쳤다.시선에는 큰 힘이 있어서, 두렵고 막막한 마음이 조금 덜어지기도 했다.동시에, 사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에 사는 이영주입니다!”온라인 모임에서 나를 소개할 상황이 되면 항상 이렇게 한다.군위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랜선 벗들은 나를 통해 군위라는 지명을 처음 만난다.이후에 모임이 진행되면서, 절기 따라 변해가는 동네의 풍경을 나누고,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다 보면랜선 벗들에게 나는 ‘군위 사람’이 되어있다.하지만 나는 군위에서 ‘군위 사람’이 아니다.친정이나 시댁이 군위가 아니고, 군위에 그 어떤 연고도 없으므로 군위 사람이 아니고군위 읍내가 아닌, 효령면 내리리에 살기 때문에 ‘군위 사람’이 아니다.그렇다고
인구소멸지역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사람이 적으니 가게도 적고, 가게가 적으니 간판도 쇼윈도도 적다.‘이걸 안 사?’하는 메시지가 담긴 유형무형의 자극이 없다.우리 동네에는 구판장 같은 작은 구멍가게도 없다.대신 논밭을 본다.농사짓지 않은 땅에 자란 들풀을 본다.그 사이를 오가는 개구리와 나비, 잠자리를 보고 긴장감 없이 나른하게 걸어가는 마을 고양이들을 본다.오늘은 사마귀와 눈을 맞췄다.개울 난간에 매달려있길래 몸을 낮춰 가만히 봤더니, 사마귀도 내가 신기한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나 사마귀랑
2018년 〈삼국유사 이바구꾼 양성과정〉 교육에 참여하면서, 삼국유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다시’ 만났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단군신화’를 비롯한 몇몇 이야기만을 알뿐, 삼국유사를 잘 모르고 있었다. 새로 읽게 된 삼국유사 이야기들도 모두 재미있었고, 특히나 ‘일연 스님’의 여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국내 정치 상황도 혼란스럽고 몽골의 침입도 있는 어려운 시대를 스님으로 살아가면서, 일연 스님은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았을까 궁금해졌다.차로 다녀도 먼 거리를 동서남북으로 오가면서, 이야기를 수집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그 이
“얘들아, 학교 마치고 자연학교 가자!” 추석을 앞두고 태풍 소식이다. 하늘에 구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구름 사이로 쨍한 가을볕이 내려와 등판을 살짝 구워주고, 파란 하늘 사이로 살짝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이 지나간다.가을이다! 태풍이 지나가는 며칠 동안 이런 볕, 이런 바람, 이런 하늘을 볼 수 없겠지?백로에서 상강을 향해가는 이 절기를 놓칠 수 없다. 우리 마을도 좋지만, ‘매곡리 자연학교’(이하 자연학교)로 가야 한다. 절기 따라 자연학교 품에 기대어 마음 편히 놀고 쉬고 오는 것이 아이들과 나의 절기살이다.아이들 하교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백로(白鷺, 흰 이슬)’를 만났다.마을 회관 옆 논에 거미가 전깃줄과 전봇대를 지지대 삼아 허공에다 크게 거미줄로 그물을 쳐 놓았다.새벽녘에 자욱하던 안개가 해를 만나 그 거미줄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한걸음 뒤에서 보면 거미줄이 하얗게 보인다. 레이스는 아마도 이슬 맺힌 거미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지 않았을까?허공에다 과감하게 그물을 쳐 놓았지만, 바람 한 번 사르르 불면 집이 통째로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다.거미줄처럼 학교가 사라질까 봐 이사 온 그다음 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