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의 현재화 관련 주목해야 할 신작 다큐멘터리들

 

“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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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지나갔다. 한국현대사에서 1980년 이후로 5월은 특별하다. 근래에는 4.16이 그러했던 것처럼, 개념적 의미 자체로는 온전히 독해하기 힘든 정체성이 더해졌다. 물론 이 또한 세대가 몇 번 더 바뀌면 희미해질 테다. 영속적인 건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평범한 개인이 측량할 수 없는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할 테다.

 

1980년 5월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억될까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낳게 마련인 문화적인 기억이 흐릿해진다는 건 전제된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작동하는 과정이다.

첫 번째 경우.

해당 사건을 발생하게 했던 사회적 갈등과 쟁점이 어떤 형태로든 일정하게 해소되는 결론이다. 경과를 살펴보자면 ①사건 관련해 강조할 필요가 없이 깔끔히 합의되거나, ②일정한 명시적·묵시적 상황에 의해 쌍방 합의로 천천히 흘려보내는 경우 둘 다 해당한다. 전자는 주로 독재 권력과 그에 편승 혹은 독자성을 띠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탄압을 당하던 피해자가 마침내 고난을 딛고 승리하는 극적 서사와 통한 결과다. 쉽게 말하자면 ‘혁명적 상황’이 도래한 셈이다. 반면에 후자는 저항세력이 일정한 사회적 힘 관계 역전까지 근접하긴 했지만 완전한 권력 쟁취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대치를 거듭하다 상호 간에 암묵적 협상이 작동하는 상태에서 주로 발생한다.

두 번째 경우.

이 상황은 첫째 경우에서 후자와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서로 적대하거나 갈등하는 사회적 세력 가운데 좀 더 보수파가 우위에 서는 유형에 가깝다. 또는 장기 대치가 진행되는 가운데 누구도 쉽게 우위에 설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발생할 테다. 주로 저항집단이 확실한 우위를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 차이로 전자와 구별될 수 있겠다. 이 찝찝한 상황은 계기가 된 사건을 일종의 시간성에 의지해 망각 혹은 휘발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즉 모든 걸 ‘역사’로 떠넘기는 태도와 통한다. 권력 관계를 역전시키지 못한 채 기존 압제가 우월한 지위를 유지한 가운데 약간의 타협을 통해 점진적 개선을 기대하거나, 또는 저항세력의 완전한 패배(심하면 말살)로 종결되는 결론이 공히 속한다.

그렇다면 1980년 5월은?

80년 5월 광주는 과연 후대에 어떤 경우로 분류될 수 있을까. 물론 현재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1980년 5월은 (일종의 ‘부활절 봉기’처럼) 당시에는 참혹한 희생으로 끝났지만 결국 그 계기를 통한 시민의 각성으로 사후적으로 승리한 투쟁으로 인정받는다. 서슬 푸른 쿠데타 세력이 전국적인 항쟁을 저지하고자 본보기 삼아 광주라는 대도시를 봉쇄하고 학살을 저지를 당시엔 그저 절망과 무력감만 남을 줄 알았지만, 의연한 항거의 불씨는 결국 7년 후인 1987년 6월 민주항쟁, 다시 1년 후 5공 청문회, 그리고 1995년 전·노 구속으로 한 바퀴를 돌아 역사적 순환을 마쳤다. 소위 ‘역사의 정 방향’으로의 귀결이다.

 

역사 수정주의를 꾀하는 반동의 시간이 도래할까?

하지만 반동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정치공학적인 의도로 반란수괴는 허무하게 곧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고 만다. 은근슬쩍 전직 대통령 대접은 여전했다. 심지어 전두환은 국민에 의한 선거로 뽑힌 적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그들의 대외적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하긴 했지만, 쿠데타와 학살을 일삼으며 쌓아 올린 권력과 부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9만 원이라는 사회적 밈으로 조롱받지만 00사라는 국내 굴지의 출판사가 누구 소유인지만 짚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혼인동맹’을 방불케 하는 사돈 관계가 어떻게 한국사회 권력 구조의 심층과 맞닿아 있는지 따져보면 오싹해질 정도다.

그런 가운데 민주화 세대 상층부가 권력획득과 유지과정에서 타협하거나 훼절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단죄를 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되어야 마땅한 자에 대한 면죄부나 동정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물론 진지한 의미라기보다는 역사 진보에 대한 냉소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환멸에 가까운 반응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무시할 순 없는 분위기다. 온전히 과거청산을 포기한 (칠레나 스페인 같은) 몇몇 국가의 ‘침묵 협정’ 수준은 아니지만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다. 부정한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 대외적으로 얼굴 떳떳이 들고 (필리핀처럼) 다시 권좌를 노리긴 역부족일지언정 축적한 부와 기득권이 환수되지 않는 한 호의호식할 남는 장사가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필요할 때만 호명될 뿐 온전하게 복권되지 못한 5월의 조각들은 아직 그늘에 머물러 있는 채다. 현 정부 주요 인사들의 (지지층을 노린 고도의 계산에 의한) 정치적 망언이나 지치지도 않고 80년 5월에 대한 음모이론을 유포하는 빈도가 슬금슬금 확산하는 데 주의가 요구될 시점이다.

삼청교육대에 대한 기이한 향수나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막연한 ‘낭만화’는 진지한 역사수정주의라기보다는 그저 현시점 한국사회와 민주주의를 향한 냉소에 바탕을 둔 반응에 가깝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87년을 경험한 민주화 세대 이후 실제로 독재정권의 실체를 경험하지 못한 이에게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으려는 ‘역사전쟁’의 의도로 읽힌다. 여전히 한국사회 내 잠복한 독재정권의 추종자들이 벌이는 진지전이 기회를 얻을 법한 국면이 닥친 것도 맞다. 마치 미국에서 여성의 신체 결정권을 이념투쟁 도구화해 반세기 동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집요함으로 반동을 이뤄낸 미국 극우의 도전을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1980년 5월에 대한 고찰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할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다.

 

1980년 5월의 ‘사각지대’를 발굴하려는 영화적 시도, 계속되다

2010년대 이후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1980년 5월의 주변부에 머물던 존재와 공간이 소소하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5월을 형상화하면서 기존의 민주화운동과 결합력을 강조하는 흐름이 중심이던 초반과는 대비되는 도전이다.

예전에는 거대서사가 단계화된 시간, 즉 1894-1945-1980-1987년으로 이어진 연표를 각인시키는 데 집중했다. 주류 역사관에 대항하는 ‘민중의 역사’와 ‘항쟁’의 맥락에서 80년 5월을 배치하는 방법론이다. 비단 영화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강조되던 입장이다. 웅장한 행진곡이나 비장한 애가 풍의 민중가요와 홍성담 화백의 판화가 그 예시다.

반면 21세기 들어 대두되는 새로운 흐름은 그동안 주변부로 취급되었던 측면에 주목한다. 민중항쟁에서 민중 개개인과 사각지대 존재들이 그런 시도에 의해 부족하나마 복원 과정을 거친다. 2010년 김태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월애>나 2018년 강상우 감독의 <김군>, 2020년 임흥순 감독의 <좋은 빛, 좋은 공기> 등이 굵직한 쐐기처럼 속속 등장했다. OTT 전성시대에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기 시작한 드라마계에서도 2021년 <오월의 청춘>처럼 1990년대 <모래시계> 열풍 이후 참 오랜만에 5월을 소재로 한 수작이 탄생했다. 이외에 대중적으로 접하기에 장벽이 꽤 있긴 해도 젊은 창작자에 의한 단편 시도는 해마다 등장한다. 2023년 현재에도 관련 최신작이 확인되는 중이다. 특히 근래 본 단편 중 주목할 만한 시도를 소개하려 한다.

 

“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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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못한 사건에 대한 재구성, <관>

류승진 감독의 <관>은 광주에서 도착한 현시점 가장 첨단의 시도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소재 측면에선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나 유해 발굴이 이뤄지지 못한 채로 남은 5월 23일 화순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조명한다. 금남로와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상징화된 항쟁에서 주변부로 시선을 옮긴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일단의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광주 외곽지역인 화순으로 지난 며칠간 군경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를 위한 관을 구하러 떠난다. 하지만 이 시도는 좌절되고 만다. 22명의 신규 희생자를 불러온 비극성이 보는 이의 뒤통수를 때리듯 몰아친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관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시도를 단행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계엄군은 당연히 시민군이 탑승한 버스에 대해 봉쇄된 광주에서 탈출해 항쟁을 알리거나 확산시키기 위한 것으로 간주할 게 당연한데 말이다. 게다가 이미 며칠간 이어진 시가전 과정에서 시위대를 향한 극단화된 적개심이 통제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되는 상황이었다. 이 무모한 도전과 참담한 결과를 재조명하기 위해 <관>은 당시 화순으로 향했던 이들의 의도를 재구성한다.

단편 다큐멘터리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그날의 진실을 전달하고자 한다. 당시 버스에 탔던 이들 중 10대 여학생 박현숙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내레이션으로 구술사 인터뷰를 차용하는 방식이다. 왜 그들은 목숨을 걸고 관을 구하러 가야만 했을까? 아무도 생존자가 없기에 증거나 증언이랄 게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가해자들 역시 무덤까지 안고 갈 게 분명한 사건이다. 이미 40여 년이 지나 생존 계엄군도 최소 60대 중후반이 되었고, 현재까지는 증인으로 나선 이가 확인되지 않는 실정에서, 감독이 어떻게든 사건을 재구성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참 진하게 묻어난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할 만하다. 그런데 내레이션으로 전해지는 (감독의 해석에 기반을 둔) 진실은 복잡한 정황을 놓고 두뇌 퍼즐 하던 이들을 일순간 민망하고 부끄럽게 전락시키는 괴력을 뿜어낸다. 어떤 형태로건 사람의 죽음은 애도해야 하고 그 형식으로 관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측은지심, 실로 당연한 연민이 10대 여학생에게 사지가 될지 모를 곳으로 위험한 여행을 감행하게 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동정심을 행동으로 옮기려던 고결한 이들의 용기는 하지만 야만의 상황에서 짐승으로 추락한 자들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가련한 피해자로 귀결될 게 아니라 공정하고 명백하게 조명되어야 한다는 확신에 찬 태도와 함께 가해자들이 얼마나 추악한 무리인가를 동시에 드러낸다.

 

“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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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가 남아있을 리 없는 그 날의 사건을 재현하기 위해 감독은 내레이션과 함께 현재의 역사적 현장을 전시한다. 평범한 이들이 오가는 시장과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추정되는 도로변, 그리고 내레이션의 상상적 주인공 박현숙이 태어나 살았던 고향마을까지 화면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보이는 공간을 차례로 비춘다. 물론 그 어디에도 당시의 흔적이 물리적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내레이션과 파편적 이미지가 결합하면서 화학적 변이가 일어나 마치 시간 여행자처럼 우리는 그날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관>을 보고 나면, 예전에 봤던 인상적인 현대미술 작업이 떠오른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한 후 ‘게르만적’ 미덕에 어긋나는 ‘난잡한’ 책을 쌓고 불을 지르는 테러가 횡행했던 기억을 재현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교수와 학생에 의해 대학 교정에서 책이 태워지던 자리와 현재 아무 흔적이 남지 않은 동일한 장소를 사진과 현장의 대조로 조명했다. 평화로운 교정 한 구석에서 벌어진 역사의 순간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유독 돋보였다. 그런 야만의 시간에 대한 필사의 기억투쟁 덕분에 이 작품은 근래에 목격한 해당 부류 시도 중에서도 특히나 주목할 만한 성과이지만 아직 거의 소개되지 못한 원석에 머물러 있다.

 

살아남은 이들의 80년 5월 이전과 이후를 조명하다, <양림동 소녀>

거대한 역사와 만나는 개인의 삶은 그 어떤 픽션의 상상력도 가뿐히 초월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창조하곤 한다. 어릴 적 읽었던 <라이프 2차 세계대전전집> 중 한 대목이 (이젠 가물가물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왕국 병사로 참전해 수도 베오그라드 전투 당시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시에서 중요한 다리를 폭파했던 한 참전용사는 전후 교사로 평범한 생을 살던 중 인생의 황혼에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한다. 그가 일생 떠나지 않고 살아온 베오그라드는 신생국 유고슬라비아의 수도가 된 후 나치독일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이제 노인이 된 참전용사는 두 번째 전쟁을 묵묵히 견디던 참이었다. 나치독일이 패배로 접어들던 전쟁 막판에 점령당했던 수도를 탈환하기 위해 티토의 파르티잔과 소련군이 공세 작전을 펼쳤고, 방어하던 나치독일 군은 그가 과거에 행했던 것처럼 진입로인 바로 그 다리를 폭파하려고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노인은 목숨을 걸고 몰래 집에서 빠져나온 뒤 과거의 경험을 살려 독일 공병이 설치해둔 폭약을 해체하려고 시도하고 성공한다. 그 덕분에 이 주인공은 젊을 적 당시 세르비아 국왕에게 받았던 무공훈장에 이어 이번에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게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과연 이 노인은 자신의 이런 인생을 상상이나 했을까.

 

“양림동 소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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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한국 근현대사는 위의 사례 못지않을 만큼 도무지 실화로 믿기 힘든 일화와 주인공을 양산해냈다. <양림동 소녀> 또한 딱 그런, 거짓말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오재형 감독은 올라운드 예술가로 그림부터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피아노 연주자까지 종횡무진 활동하던 중 엄마가 급작스럽게 쓰러져 투병 생활을 돕게 된다. 집 떠나 독립해 살던 감독은 성인이 된 후 아마 처음으로 엄마와 긴 대화를 나누고 그동안 별 관심 없었을 엄마의 지난 생을 접하게 되었을 테다. 현재 청년세대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 거동조차 힘들어진 엄마는 길어진 병원 입원 기간에 소일 삼아 자신의 지난 생애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문득 아들의 눈에 엄마의 연작 그림이 눈에 들어왔을 테다. 그리고 아들은 재능을 살려 그 그림들을 활동사진으로 변환해 선보인다.

감독의 엄마, 한때 ‘양림동 소녀’였던 주인공의 실제 모습은 도입부에 아주 잠깐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30분의 시간 동안 그의 생애는 보는 이의 이목을 말 그대로 한눈에 사로잡는다. 감독은 엄마의 그림일기 속 스케치를 꼼꼼히 재구성해 흥미로운 구술 생애사로 펼쳐내는 데 도전한다. 그 과정을 통해 눈앞에 보이는 건 애니메이션이지만 형식은 다큐멘터리 장르로 구현되는,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의 흥미로운 사례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크게 3부작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각 파트 분량도 딱딱 거의 삼 분의 일씩 균형 있게 비례를 맞추었다. 그만큼 엄마의 장구한 생애 소개를 위한 배분에 신경 잔뜩 쓴 구석이 역력하다. 잘못하면 두고두고 꼬투리 잡힐 테니 말이다.

 

“양림동 소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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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시간은 그야말로 ‘엄마의 소녀시대’로 구현된다. 남해 진도 출신 섬 소녀인 주인공은 광주로 유학을 떠나 ‘양림동 소녀’로 자리를 잡는다. 그의 10대 시절은 전형적인 ‘꿈 많은 문학소녀’ 자체였다고 한다. 한창 성장기에 진도에 머물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양림동 소녀’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추앙하면서 60~70년대를 관통하던 자신의 십 대 시절을 보낸다. 문학을 통해 그는 해당 시기 전 세계적인 문화혁명의 격변과 서구 인문사회과학의 축적된 유산을 접하면서 실로 찬란한 찰나를 보내는 동시에, 세상의 모순에 대한 깊은 고민 또한 교차했을 테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10대 추억담의 형태이지만 속에 담긴 내용은 질풍노도의 격렬함으로 채워져 있다.

흔히 그려지는 산업화 시대의 무미건조한 풍경 대신 <양림동 소녀>의 첫 파트는 그저 회색으로 치부되기 쉬운 그 시절, 다채로운 삶에 도전하던 이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검열이라는 멍에를 피하거나 대항하며 등장했던 수많은 문화적 사례의 일부이자 당대 문화기행으로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그 당시를 경험한 이들 중 꿈을 온전히 이루진 못했을지언정 틈새로 찰나로나마 다른 세계를 향한 욕구를 품었던 이에게는 절로 공감대를 얻을만한 흥미롭고 아련한 내용이 가득하다.

 

“양림동 소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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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지만 연속되는 두 번째 시간은 양림동 소녀의 꿈을 온전히 놔두지 않는다. 이제 주인공은 10대 시절 일정하게 간격을 띄울 수 있었던 어두운 시대의 그림자와 만나게 된다. 그는 당대에 뭇 여성들에게 예정된 운명처럼 규격화되어 있던 인생 궤도에 승차하기를 거부하고 독립적인 삶에 도전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로 광주지역에서 활발히 일어나던 사회운동에 몸을 담는다. 그리고 결국 거역할 수 없는 운명처럼 1980년 5월과 만난다. 그 과정을 통해 21세기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 거대역사를 넘어서는 단면들이 포착된다.

화면에 재현된 1980년 5월 이전 주인공이 참여한 지역의 사회운동 묘사는 그야말로 그동안 발굴되지 않은 새로운 아카이브를 생성하는 현장이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신군부의 치밀하고 악랄한 포위망에 갇힌 희생자로서의 광주, 혹은 총을 들고 분연히 맞선 용맹한 시민군의 이미지로만 각인되어온 당시 광주의 인상에 ‘왜 하필 광주였는가?’라는 질문과 대답이 더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야학-노동-농민-여성운동의 한복판에서 청춘을 보내던 양림동 소녀의 20대를 통해 광주라는 지역사회 내에서 얼마나 광범위한 활동이 벌어졌는가를 간접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이 사회사와 만난다는 명제의 인상적인 예시 격이다.

그리고 양림동 소녀는 1980년 5월을 겪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체포와 시련을 견딘다. 참혹한 수난 속에서도 그는 동지이자 반려를 만나고 그 결과물로 감독이 탄생한다. 물론 그런 고생을 치른 뒤로도 사회참여의 뜻을 거두지 않았기에 주인공의 삶은 빈한하고 팍팍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계를 꾸리고 자녀를 돌보면서도 젊을 적 자세를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주인공의 인생궤적은 이어진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이야기는 세 번째 파트로 연결된다.

 

“양림동 소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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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은 지난했던 생애 속 누적된 피로 탓인지 어느 날 갑자기 가족들 앞에서 쓰러진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남은 생 내내 장애를 안고 살게 된다. 더이상 예전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양림동 소녀는 평안함이나 여유와는 거리가 멀지만 후회하지 않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위 예술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아들은 이 흥미로운 원천을 놓치지 않고 영화화한다.

그렇게 1차로 모자가 합작하고, 2차로 부녀가 협력한 (남편-아빠는 타이포그래피, 딸-누나는 번역을 맡았다) 결실은

①한 노인의 지극히 사적인 인생 비망록인 동시에

②평범함과는 대척점에 선 구성원들로 조합된 명불허전 가족 시네마이자

③작은 시냇물이 장강대해에 합류하는 풍경처럼 구현된 한국현대사의 색다른 구술 아카이브로 동시적 효용을 획득하는 데 도달한다.

<양림동 소녀> 속 가득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근래 속속 등장하는 민중사적 접근법의 일례로 향후 장기간 거론되기 충분한 ‘클라쓰’를 자랑한다. 당시 옆 나라 중국과 일본까지 휩쓸다시피 했지만 유독 한국은 빗겨 난 것처럼 간주했던 68혁명의 영향력에 대해 주인공의 경험담은 여성사·문화사 측면에서 관심이 쏙 끌리는 기록을 제공한다. 우리에게도 동시대 세계의 흐름이 분명히 반향을 불러왔다는 실증사례로 유용한 대목이다. 알고 보면 부모세대도 그저 도매금으로 똑같은 트랙을 돌기만 한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다채로운 삶을 살아냈거나 최소한 욕망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연을 감춘 이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눈과 귀 쫑긋 떠지게 만드는 작업이다.

<양림동 소녀>는 개인적으로 근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신작 중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는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장르에서 또 하나의 성취를 보탰다고 단언할만한 작업이다. 자신이 영화를 만들고 있거나 만들고 싶은 이들이라면, 풍성한 소재를 제공해주시는 부모님 복 넘치는 감독을 향한 질투가 절로 생길 만하다. 그 경지가 실로 대하서사 EPIC에 닿는다. 앞서 소개한 <관>이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려는 간절한 노력이라면, <양림동 소녀>는 전자의 소망이 늦지 않게 도착한 반가운 보물 상자의 발견이다.

 

5월 광주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작가들의 기억 투쟁에 주목하라

이 두 작품을 포함해 1980년 5월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와 가족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화한 신진 작가들의 기억투쟁에 입각한 흥미로운 작업은 꾸준히 그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5월 광주의 명예 회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치를 지키기 위한 민주화 세대의 지난한 싸움이 일단락되는 1단계를 지나, 작금 상황은 배반당한 민주화라고 불릴 정도로 환멸과 냉소가 팽배하다. 앞 세대가 일군 성과의 2단계 레벨-업이 필요한 이 시기에 유의미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직접 체험한 세대와는 다른 시각과 방식으로 그동안 지나쳤던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5월 광주의 의의를 확장하는 일련의 시도가 장차 한국사회의 발전과 성숙을 위한 소통에 기여할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분명히 현재 상황은 ‘공식적’으로는 개헌을 통해 ‘5월 정신’을 헌법에 명기하자고 대통령이 천명할 정도로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집권 여당과 친정부 관계자들의 근래 1980년 5월 관련 행적과 발언을 보면 뭔가 불안한 징후가 느껴진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수 정태춘은 그의 곡 <5.18>에서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라고 노래했다. 미완의 한국사회에서 고 김남주 시인의 시 제목처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 과제가 완수될 때 ‘자유민주주의’를 예찬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거의 역사가 된 1980년 5월을 표현의 자유 가득히 다룰 수 있을 테다.

 

 


작품 정보

 

〈관〉

2023, 한국, 다큐멘터리, 15분

연출 류승진

각본·낭독 최하은

촬영·편집 류승진

2023 1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초청

 

〈양림동 소녀〉

2022, 한국,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30분

연출 오재형, 임영희

출연·미술 임영희

촬영·편집·음악 오재형

배급 필름다빈

2022 48회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경쟁

2022 13회 광주여성영화제 폐막작

2023 15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노인 부문)

2023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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