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이야기에 나를 비춰본다(1)

 

군위공부모임〈세이레 학당〉_ 삼국유사 함께 읽기 모임

 

“우리 모임 이름은 ‘웅녀 정짓간’으로 합시다!”

농사를 짓거나 가공업을 하는 군위 지역민 10여 명이 둘러앉아 ‘밀키트 가공 협동조합’을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을 모아가고 있었다. 아직 코로나19가 그 세력이 만만치 않을 때였고, 도시의 골목골목마다 밀키트 편의점이 유행이라는 소식이 전해질 무렵이었다.

꾸준히 농업에 관한 공부를 해 오던 모임[행복을 가꾸는 농부] 가 코로나19로 잠시 모임을 쉬다가 다시 협력하여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디려 하던 차였다. 함께 협동조합 설립의 과정을 공부하고 하나의 밀키트를 만들기 위한 협의의 과정 중에 ‘밀키트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라는 질문을 만났다.

회의 참여자 가운데 한 사람이 

“군위가 삼국유사의 고장이니, 삼국유사에서 찾아보자.”라고 제안을 하여 

2021년 가을밤,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단군신화를 함께 읽게 되었다.

 

 

‘어떻게 협동조합을 만들어 갈 것인가?’

‘어떻게 여럿이 함께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낼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웅녀는 왜?_단군신화에 비친 내 모습] 모임이 진행되었다.

함께 소리를 내 읽고,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인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간 회의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은 이야기지만 서로 주목하는 부분이 달랐고, 다른 감상을 나누다 보니,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단군신화를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웅녀에게 집중한 이는 웅녀의 의지와 실행력에 감탄하고, 환웅에 주목한 이는 새로운 문화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을 말하고, 호랑이에 마음이 간다는 이는 호랑이의 실패가 위로된다고 하고, 단군이 새로운 세상을 펼치기에 앞서 벌어진 일을 보니,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떠오른다고 했다.

 

2021년 가을, ‘웅녀는 왜?_단군신화에 비친 내 모습’ 모임이 열렸다. 삼국유사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 첫 모임이었다.
2021년 가을, ‘웅녀는 왜?_단군신화에 비친 내 모습’ 모임이 열렸다. 삼국유사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 첫 모임이었다.

 

회의를 멈추고, 옛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회의가 더 잘 진행되었다.

군위밀키트가공협동조합(준)의 상품 이름은 ‘웅녀정짓간’이 되었다.

우리가 만들어낸 밀키트를 먹은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단군’이 되어, 자신의 세계를 펼치라는 의미도 붙여보았다.

 

안타깝게도 군위밀키트가공협동조합(준)‘웅녀정짓간’은 2023년 봄 해산하게 되었다.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도, 밀키트 가공을 위한 과정도 참 어려운 길이었다.

그러나, 그 시도 덕분에 우리는 공부의 재미와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함께 읽고,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일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웅녀정짓간’은 군위지역공부모임〈세이레 학당〉으로 전환하여, 매달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를 함께 읽기로 마음을 모았다. 마침 군위군신활력플러스 액션 그룹 모집이 있어, 그 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군위군신활력플러스 사업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2022년 가을 ‘신비한 피리를 얻은 신문왕’을 시작으로 매달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를 한 편씩 만나고 있다.

 

우리가 함께 읽는 삼국유사는 고운기, 최선경 선생님이 번역하고, 서정오 선생님이 다시 쓴 〈어린이 삼국유사〉이다. 어린이를 배려하여 상세하고 다정하게 풀어놓은 이야기와 이만익 선생님의 판화가 삽화로 들어있어 한문 문장에 대한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참 좋다.

 

일연 스님이 엮은 삼국유사를 천년 된 명품 거울로 본다. 서정오 선생님이 다시 쓴 〈어린이 삼국유사〉는 명품이긴 하나 먼지가 많이 쌓인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오늘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거울로 말끔히 닦아내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거울을 함께 둘러앉아 마주 본다. 같은 거울 앞에 섰는데, 희한하게 모두 다른 면을 본다. 

삼국유사라는 거울을 함께 보는 큰 재미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이를 말로 표현하면서, 역할과 책임을 살아내느라 잊고 있었던 나의 감정을 만나고, 추억을 만나고, 아직 펼치지 못한 꿈을 만난다.

 

삼국유사를 함께 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모두 얼굴이 발그레해져 있다. 함께 읽은 세이레 학당의 회원 간의 마음이 이어지고, 천 년 전의 일연 스님과 또 천년이 된 이야기들이 이어져서, 정서적인 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글 _ 내리리 영주, 군위 사는 지구인·세이레 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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