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났다. 한미일 정상 회의로 한미일 동맹이 더욱 굳건해지는 모양이다. 그만큼 한국은 한미 동맹에 이어 일본과 준 군사동맹을 맺으며 미일이 벌일 전쟁의 대리인을 더욱 자처하고 나섰다. 광복절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거의 모든 사람을 반국가단체원으로 규정했다. 공안검사 출신도 아닌데 ‘가오’를 잡아도 너무 잡는다. 대통령이 대놓고 이념투쟁을 선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제 식민지 청산도 제대로 되지 않은 마당에 기시다가 따라 준 일본 사케 마셔서인가. 국제적 망신살이 뻗친 잼버리 대회의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 과거 보드카에 거나하게 취해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이나 텔레비전에 술 취한 채 나와 방송 연설하는 백러시아 루카셴코 대통령이 생각난다. 전자는 국가의 부를 올리가르히들과 깔끔하게 나눠 먹은 자이고 후자는 장기집권 독재자다.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일본의 집회에 참석하고 알고 지내는 일본 단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전에도 몇 번 일본의 86 히로시마 집회나 113 도쿄 집회에 다니곤 했지만,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수수께끼 같은 것이 늘 따라다녔다. 일제 식민지 배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 미국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가 왜곡한 관동 대지진 중국인 조선인 학살사건 등 일제 식민지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지금, 일본은 우리에게 여전히 역사의 족쇄로 남아 있다.

 

△도쿄전철 긴시초역 안내판
△도쿄전철 긴시초역 안내판

일본에 몇 번 다니면서 들었던 의문은 일본과 한국이 왜 이리 닮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본문화가 아직도 한국에는 자리 잡고 있다. 자판기, 아이패드로 주문하는 식당,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일본에서 가라오케라고 하는 노래방, 길거리 보도블록 모양과 배치 등 한국과 일본은 도시 공간의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야채’니 ‘가방’이니 한국어 안에 일본어가 수두룩하고 ‘가오’니, ‘오마카세’니 먹물 먹었다는 사람들도 생경한 일본어를 곧잘 사용한다. 일본 도쿄 전철을 타보면 그런 느낌이 더 확실해진다. 전철 도착 시간표가 빼꼼하게 시간별로 정리되어 있는 표나 전철 안의 광고, 비상 탈출 시 탈출하는 그림 등 일본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가령 한국의 거리 한글 간판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다면, 어디가 한국인지 어디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다. 아래 사진들은 필자가 머무른 로데스 도미토리 근처 도쿄 신주쿠 구의 우시고메–카구라자카 지역의 주변 모습들을 찍은 것이다.

 

△도쿄 신주쿠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 할머니, 상점 홍보지, 금연홍보물
△도쿄 신주쿠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 할머니, 상점 홍보지, 금연홍보물

카트에 물건을 싣고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상점 홍보지, 금연홍보, 잉어빵, 카부키시티라 불리는 신주쿠 구 번화가, 자동차 정지 표시, 아케이드 등 일본과 한국은 도시 공간 안에 배치된 것들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계단을 ‘階’라고 한다든가, 지상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일본인들은 오른쪽으로 선다) 등 도시 곳곳을 누벼보면 서로 닮은 곳이 많다.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미끄럼틀을 비롯한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 시설도 보면 싱크로율이 100% 일 정도다.

 

△구몬학습, 잉어빵 가게, 카부키시티 거리
△구몬학습, 잉어빵 가게, 카부키시티 거리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간혹 기모노를 입기도 하지만 그들이 입도 다니는 옷을 보면 한국의 20대 초반 여성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래서 모방과 창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유사성은 별로 더 할 얘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란 것이 모방하는 거지, 베끼다가 살짝 창조적으로 비틀기도 하는 거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 피해자 처지에서 보자면, 이러한 현상은 조금 석연치 않게 의문으로 다가온다. 일제 식민지주의가 단순하게 그저 가방, 가오 같은 언어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 깊숙이 박혀 우리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 식민지주의 청산은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표현한 램지어 비판 등의 이론적인 측면에서만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우리의 공간적 무의식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일제의 잔재에도 주목해야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어 하는 말이다.

특히나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묻지 마 살인은 일본의 옴진리교 사태, 아키하바라秋葉原 묻지 마 살인 사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한국 경제만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터널 입구에서 묻지 마 살인 사건이 최근 터져 나오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앞의 사진에서 필자는 일본의 전철이 민영화되어 있는 모습을 이미 본 적이 있지만, 구간별로 민간기업이 노선을 차지해 이윤을 챙겨가는 모습을 보자니 최근 철도 등 온갖 것을 민영화하려고 하는 현 정권에 대한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아 불길했다. 일본 전철은 구간별, 기업별로 세세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웬만한 외국인 아니면 목적지를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게다가 문제는 교통 민영화로 인해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것이다. 가령 한국의 ktx 속도로 5시간 반 걸린다는 도쿄–히로시마의 편도 비용은 원화로 19만 원이나 된다(물론 국내에서 카드를 만들어가면 비용이 절반으로 줄지만, 여전히 비싸다). 집회 참석하려고 홋카이도에서 도쿄에 온 일본 택시운전사로부터 백만 원을 썼다는 얘기도 직접 들었다. 앞으로 한국의 철도나 지하철, 건보, 전기 가스 물 등이 민영화된다면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단순한 유사성 비교를 넘어 그야말로 지옥행 민영열차를 타는 기분이 들 것이다.

 

△토마레(멈춤) 표지
△토마레(멈춤) 표지

일본 도쿄 신주쿠 구의 캡슐 호텔에서 하룻밤 자면서 사우나 목욕탕 안의 구조나 그 바깥의 옷장들에서 필자는 일제 식민지주의의 잔재가 주택가 근처의 한국 도시공간 안에 고스란히 잔존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일제 식민지주의 청산이라는 과제가 곳곳에 깔려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자니, 씁쓸한 기분 드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78주년 8·15 해방의 날이 지났다. 일본 문부성 제1호 장학생이자 친일파였던 아버지와 바이든과 기시다 옆에서 망나니 춤을 추며 핵폐수 방류 묵인을 넘어 바이든과 기시다를 제치고 앞으로 튀어나와 생즉사 사즉생 운운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그의 아들 대통령의 소영웅주의 추태 앞에서는 그저 유구무언일 따름이다.



글 _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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