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리고 끝나야 끝일 가을이라는 계절을 타고 있다. 그 여름 짙었던 빛은 온 산과 들을 활활 타오르게 했고 봄부터 모인 아지랑이 열기로 숲조차 잔 숨을 몰아쉬는 듯했다. 그럼에도 숲속은 늘 내어놓던 대로 내놓았다. 이 가을 투구꽃. 놋젓가락나물, 물매화 등등. 우리들의 눈 속을 화려한 장식으로 수놓듯이 그 색조차도 너무나 다양하지 않았던가 말이지. 태초에 우리가 원했던 것이었을까. 우리의 본능 또한 어찌 그리 다양했을까 말이다. 그렇게 늘 설을 풀었던 숲속의 식물들은 먼 미래에 살아남을 우수한 후손이 필요할 뿐 더도 덜도 아닐진대 말이야.

 

물매화. ⓒ이현정
투구꽃. ⓒ이현정
놋젓가락쇠나물. ⓒ이현정

이 가을 우리는 더는 제자리에 머무를 수 없었다. 새벽 5시의 차오르며 감싸는 습기는 아래로 축 떨어진 온도를 더욱 서늘하게 한다. 그리고 달리는 우리들의 자동차는 갈수록 짙은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만 간다. 저 뭉쳐진 가장자리의 흑빛 구름 사이로 주홍빛들이 새어 나오려 하지만, 무거운 잿빛은 혹독하기만 하다. 그 벌겋게 올라오는 혈기왕성했던 먼동을 멀건 안개와 구름이 잠식해 버렸다.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스멀거리며 산골을 타고 오르는 안개가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아직 갇혀 있기에. 달려가는 내내 내 눈빛조차 붉은 핏발이 서린다. 올여름 날씨에 비님은 어찌 그리 예고도 없이 출몰하시는지 말이다. 역시 운이라는 것이 따랐던 것일 거야. 지금 달리는 차 속에서 다잡는 맘이 이제는 한층 더 익어가는가 보다. 가을이 익어가듯 말이다. 

 

큰잎쓴풀. ⓒ이현정

곧 차분하게 붉게 서린 눈빛이 하얗게 익어간다. 큰잎쓴풀을 마주할 때는 신기하게도 비는 멈춰 있었다. 물론 날씨는 숲속 생물만큼이나 변덕을 부렸다. 좀 더 보태어지는 어설픈 객기지만, 숲속의 붉게 물든 수많은 나뭇잎이 하나같이 똑같은 붉은색이 아니라는 것이다. 뭐가 달라도 서로 다른 것이다. 이제 곧 아래쪽으로 단풍이 내려올 것이다. 사람들의 눈빛 속에 더욱 변화무쌍하게 붉게 물들 것이다. 그리고 내 눈빛 또한 그들과 다른 붉은색으로 물들 것이다. 뭐가 달라도 다른 붉은색으로 가을을 타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가을산 붉은 잎. ⓒ이현정

 

글 _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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