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없는 식탁, 아이가 그리워할 ‘엄마밥’이 편의점 도시락이라면
오늘 이 한 끼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한다면

 

“아, 엄마 밥 먹고 싶다……”

결혼이나 독립을 해서 이제 막 스스로의 부엌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백종원 레시피를 보고 만든 반찬이 맛있어도, 배달 음식이 잘 돼 있어도 까닭 모르게 흉내 낼 수 없어 그리운, 눅진한 엄마 반찬의 맛. 바깥의 한기와 하루의 크고 작던 사투를 달래주는 그 밥상. 엄마가 가장 따뜻하게 내준 밥과 국, 밑반찬으로 구성된 밥상. 외근 중에 한 끼를 거르거나 늦은 한 끼를 해결할 때, 직접 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만들어 먹는 비용보다 싼 1인분의 식당과 배달 음식에 질려갈 때, 사람들은 엄마의 밥상을 그리워한다. 

 

밥은 본래의 가장 작은 의미인 ‘쌀의 조리된 형태’를 넘어 한 끼의 식사 자체, 더 나아가서는 ‘밥줄’ ‘철밥통’ 등의 맥락에서 사용되듯 생계수단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권리.

밥상은 하루의 기분을 함께 곱씹거나 해소하는 신성한 장소이고 ‘기억이 생성되는 장소’다. 가족끼리 싸우고 나서도, 한 밥상에 마주 앉아 밥을 나눠 먹다 보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밥은 우리에게 밥상에서의 추억, ‘가족’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운 기억으로 남을 밥상을 받아본 적 없어, 그리워할 엄마 밥조차 없다면 어떨까. 아이가 그리워할 엄마 밥상이 편의점 도시락이고, 홀로 편의점 취식대에서 눈치 보며 먹은 밥의 기억이 어린 시절을 지배한다면 어떨까.

 

 

매년 30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결식 우려 아동’으로 분류된다. 급식카드를 발급받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해가 지날수록 이 수치는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나, 아직도 아이들에게 급식카드를 내미는 일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서울시의 2020년 꿈나무카드(무료 급식카드) 사용 현황 집계 결과 59.7%는 편의점에서의 음식 구매로 나타났다고 한다. 2022년에도 이 추세는 다르지 않다. 꿈나무카드 사용이 가능한 가맹점도 많지 않고, 카드를 내미는 것에 대한 낙인감도 작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식당보다 편의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 끼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빈곤을 매번 증명해야 한다면, 아이가 소지하는 거의 최초의 ID카드가 ‘형편이 어려워 무료로 밥을 먹게 해주는 카드’라는 낙인감이 생긴다면.

 

서울시는 올해 아이들이 급식카드로 먹을 수 있는 한 끼의 단가를 4천 원에서 7천 원, 지자체에 따라 최고 9천 원(종로구)까지 상향했으며, 비대면 결제와 무료 급식카드 사용이 가능한 가맹점, 선한 영향력 가게 추가 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린 배를 채우는 것만이 결식 지원의 정의라면 좋겠지만 우리가 정의하는 ‘밥’은 행정적 가부 여부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자주 논의된다. 인간의 품위를 유지한 채 눈치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이 한 끼를 나누어 먹을 가족이 있느냐, 현대에 ‘밥을 굶는다’는 건 그런 문제일 것이다. 다 같이 어려워서 잘 먹지 못해 신체적으로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밥상의 퀄리티가 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 남들은 다 먹고 남기기도 하는 밥을 혼자 눈치 보며 먹어야 한다는 문제, 그리고 그것이 심지어 평생 기억에 남을 ‘아이들’의 밥상이라는 문제. 

 

밥을 먹고 산다는 것은 권리가 보호받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밥상머리에서 즐거운 기억이 쌓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현재의 아이들보다 풍족한 밥상을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은 대개 가난한 중에 즐거웠다. 매번 고기반찬이 올라오지 않아도 엄마가 정성껏 담은 밑반찬을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 나눠 먹고, 남은 계란 하나에 형제와 맹렬히 다퉜으며, 학교에서 주는 귀한 우유를 남기면 선생님께 맞기까지 하던 시대였어도, 지나가던 누군가의 우려 속에 살았으며 서럽게 차별받거나 남달리 나만 굶지는 않았다. 배고프던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먹을 음식이 부족한 것과 나 홀로 눈치 보며 비교적 존엄하지 못한 밥을 먹는 것, 무엇이 더 고통스러울지 우리는 어린 시절의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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