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CJ대한통운의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
“갈등 부추기고, 노동자성 부정하는 노조법 2·3조 개정돼야”

 

1월 12일,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선고 관련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 전국택배노동조합
1월 12일,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선고 관련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 전국택배노동조합

 

법원이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교섭을 거부해온 CJ대한통운에게 단체교섭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또한, CJ대한통운이 3년 넘게 교섭요구 사실 공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등 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12부(재판장 정용석)는 CJ대한통운이 2021년 7월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선고 공판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권한을 갖는 원청 사업주를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해석하는 것이 노동조합법의 입법 목적, 정의와 형평에 부합하며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에 합치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CJ대한통운은 ‘집배점 택배기사들과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므로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법원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한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 사업주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택배노동조합과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12부 정용석 재판장은 선고를 통해 “노동 3권의 온전한 보호를 위해서는 원사업주뿐 아니라 원청 사업주에게도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원청 사업주의 복합적 노무 관계의 형성이라는 경영상 방침에 의해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의 효력을 중단시킬 수 없다”면서, 계층적, 다면적 노무 제공 관계 확산,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 분화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이어 “기본권인 노동 3권을 법률 규정도 없이 제한하자는 주장은 부당하다. CJ대한통운의 주장은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형해화 시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기 애매하므로 원청 사업주는 교섭을 할 수 없다는 CJ대한통운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CJ대한통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에는 하청 노동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는 원청 사업주는 하청 노조 파업 시 대체근로를 투입할 수 없다는 점과 노동조합법은 직접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주체 사이에서의 교섭과 단체협약의 효력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점도 함께 고려됐다.

 

그림 출처=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그림 출처=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이번 소송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다투는 법원의 첫 판결로 관심을 받아왔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20년 3월 노동시간 단축, 작업환경 개선 등을 요구안을 제시하며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직접적인 계약 상대방이 아니라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며 교섭을 거부했다.

이에 전국택배노동조합은 CJ대한통운이 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20년 11월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구제신청을 각하했고, 노동조합은 이에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2021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는 ‘간접고용 관계에서도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일정 부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권한을 행사했다면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라면서 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했다.

CJ대한통운은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년 6개월여 만에 결론이 난 것이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행정법원의 선고 직후 항소할 방침임을 밝혀 원청 사용자성의 문제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 판결에 대해 특수고용노동자 김경희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 조합원은 “택배노동조합이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하고 이번 판결이 나오기 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CJ대한통운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조합을 손해배상 등으로 압박할 할 수 있는 근거가 노조법 2·3조에 다 담겨 있다. 노조법이 노사 간 갈등만 부추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법원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는 20년이 넘도록 투쟁을 했는데 법원에서 현행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지 않으면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우리가 생명과 같다고 하는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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