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계, ‘성변측후단자’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대회 열어

 

1986년 4월 10일 지구 가까이 다가온 핼리 혜성. 사진 NASA
1986년 4월 10일 지구 가까이 다가온 핼리 혜성. 사진 NASA



핼리 혜성 등 3건의 혜성 관측 기록이 담긴 조선 시대 천문 관측자료 ‘성변측후단자(星變測候單子)’를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23일, 연세대학교 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는 ‘대한민국 천문자산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비전 선포식 및 학술대회’가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천문학회, 한국우주과학회, 연세대학교와 천문학계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천문 기록물에 대한 과학적·역사적 가치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유네스코 등재 관련 국내외 상황을 점검하고 기존 등재 사례 분석을 통해 성변측후단자 등재를 위한 준비 방향도 함께 토론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는 성변측후단자는 조선 시대 관상감이 작성한 천문관측 공공 기록물이다. 혜성과 같이 천체의 위치나 밝기가 변하는 것을 성변(星變)이라 하는데 성변측후단자는 이러한 천체의 변화를 매일 관측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성변측후단자는 2천 년 이상의 천문 기록사에 남아 있는 유일한 현장 관측기록으로 조선 시대 관상감에서 언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관측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천문관측 원천 자료”라고 말했다.

이어 “성변측후단자는 천체의 특별한 현상을 십수 일~몇 달간 장기간에 걸쳐 전 과정을 기록한 중요한 사료”라며 “특히 동시대 다른 나라에는 없는 기록물로서 연세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3건의 18세기 혜성 관측기록은 세계 과학사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소개했다.

 

성변측후단자에 실린 1759년 핼리 혜성 관측기록. 출처 한국천문연구원
성변측후단자에 실린 1759년 핼리 혜성 관측기록. 출처 한국천문연구원

 

성변측후단자는 혜성에 대해 ‘3월 11일 신묘 밤 5경(~5시) 파루 이후에 혜성이 허수(虛宿) 별자리 영역에 보였다. 혜성이 이유(離瑜) 별자리 위에 있었는데 북극에서의 각거리는 116도였다. 혜성의 형태나 색깔은 어제와 같았다. 꼬리의 길이는 1척 5촌이 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내용 사이에 관측자의 이름과 관직명을 적었다. 또한, 사진에서 보듯 별자리 사이에 핼리 혜성의 위치와 함께 꼬리 모양과 길이, 방향을 그려져 있다.

1759년 4월의 성변 등록은 35명이 25일 동안 핼리 혜성을 관측한 것으로 위치와 크기 색깔 등의 변화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천문학자 핼리(Halley)가 주기를 예측한 이후 첫 번째 지구 방문을 기록한 것으로 핼리 혜성의 정확한 궤도 자료를 담고 있다.

성변측후단자의 핼리 혜성 관측 기록은 왕실 산하 관청 자료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혜성의 이동 경로와 위치, 밝기 등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조선 시대의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천문 자료로 평가된다.

이형목 성변측후단자 세계기록유산 추진위원회원장은 “성변측후단자의 상세한 기록과 그림은 조선시대 밤하늘을 관측한 생생한 현장 기록으로 오늘날에도 연구 가치가 높은 학술자원이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한국천문연구원 등 성변측후단자 세계기록유산 추진위원회는 2025년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목표로 학술대회와 세미나 그리고 대국민 홍보 활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성변측후단자 유물 관람.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성변측후단자 유물 관람.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 핼리 혜성(Halley’s Comet) : 핼리 혜성은 76.3년 주기로 태양을 도는 타원궤도를 가진 해왕성 족에 속하는 천체이다. 이 혜성은 태양과 가까워지는 근일점(약 8,765만 km)일 때는 수성과 금성 사이의 궤도까지 다가오며, 멀어질 때는 지구와 태양 거리의 35.1배(약 52억 5,087만 km)까지 멀어지면서 해왕성 너머까지 간다. 혜성의 이름은 공전주기를 처음으로 밝힌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Edmund Halley)에서 따왔다. 에드먼드 핼리는 옛 문헌을 통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타난 혜성의 궤도가 유사한 것에 주목하여 혜성이 다시 다가오는 시기를 1758~1759년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1742년 사망하면서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후세 사람들이 그가 예측한 시기에 혜성이 나타나자 그의 업적을 기려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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