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운동 여성활동가 인터뷰집〉을 읽고


여성은 어디에나 있다. 쉽게 비가시화되고 무시당하고 누락당할 뿐. 지금껏 우리가 이루어 낸, 실현해나가고 있는 모든 투쟁 현장에는 여성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베르사유 궁전의 문을 연 것은 여성 시위대였다. 남성들이 권력에 기가 눌려 혹은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고자 아무도 궁전에 쳐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몇 날 며칠을 무거운 대포를 들고 행진한 이들은 여성들이었다. 칠레 혁명 당시 끝까지 남아 정부와의 협상에서 배제된 이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은 여성들이었다. ‘이제 끝나지 않았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을 때 ‘끝난 것은 없다’며 다른 소수자를 위해 혁명의 끝을 이어나간 이들은 여성들이었다. 현재 제주 월정리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역에 편법으로, 주민 동의 없이 하수 처리장을 건설하는 계획이 들통났을 때 가장 선두에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은 해녀, 곧 여성들이다. 그리하여 나는 감히, 아니 당당히 ‘혁명은 여성의 것’이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반전·평화 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펴낸 <2022 병역거부운동 여성활동가 인터뷰집>에서도 ‘혁명은 여성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총 9명의 여성활동가들의 인터뷰는 한국 병역거부 운동에서 그들이 밟아온 혁명적인 발걸음과 이룩해낸 성과를 똑똑히 인지시킨다. 흔히 병역거부 운동하면, 남성들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대한민국에서 징집 대상이자 병역의 의무가 있는 대상은 지정 성별 남성뿐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에서 여성들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여성들이 있다 하더라도 여성의 발언권과 행동권은 빼앗기거나 부정당하기 일쑤다. 따라서 작금의 시스템은 “군대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누”고, 그 결과로 군사주의는 물론 가부장제를 강화한다. 군사주의와 가부장제는 함께 작동한다.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페미니즘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최정민은 페미니즘적 사고가 있어야 반전운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지하거나 우리가 암묵적으로 묵인했던 이런 제도나 관습들이 전쟁으로 간다는 거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들인 거죠. (…) 그런 시각이었기 때문에 이런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고 (…) 전쟁없는세상이 하는 평화운동, 병역거부운동은 잘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병역거부운동에 페미니즘이 꼭 수반되어야 하는 이유는 넘친다. 페미니즘은 수많은 위계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것(장박가람)이다. 그렇기에 ‘가부장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폭력’과 ‘군사화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당화되는 폭력’들은 긴밀히 연결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병역거부운동을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가부장제와 군사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자고 역설한다. 이들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체복무제의 한계나 비판도 눈치 보지 않고 언급하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한다. 대체복무제로 귀결되는 병역거부운동이라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1등 시민’에서 배제된 남성들에게 대체적인 시민권을 부여하는 운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의 평화·반전·병역거부운동은 단순히 병역거부를 하는 남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애인을 도와달라는 요청(김경희)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군사주의로 인해 받는 폐해를 가시화하고 여성 또한 이 군사주의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이며 동시에 이 구조를 비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활동가들은 페미니즘 관점을 견지한 채 질문을 바꾼다. 여자도 군대에 가냐, 마냐는 식상한 질문을 넘어 교차성을 갖춘 질문, 즉 반군사주의, 성평등주의를 갖춘 평화로운 사회로 향하는 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묻는다. 사회적 구조의 총체적 변화를 도모하는 질문. 그 과정에서 여성활동가의 존재와 페미니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강조한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여성병역거부운동’이다. 애초에 여성은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데 웬 거부야, 라고 의아해하는(실상은 비난하는) 이들이 다수다. 나 또한 그랬다. 2022년 세계병역거부의 날 제주 강정에서 여성 병역거부 선언문 낭독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여성들이 병역거부 선언문을 읽는 모습이 생소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 선언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고작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것이 전쟁과 군사주의로부터 자유롭다거나 가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이해한 병역거부는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나는 반군사주의적인 행동과 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과 행동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여성도 병역거부선언을 할 수 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지혜) 마음만으로도 병역거부운동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김한민영의 무기 거래 감시운동의 동기와도 결을 같이 한다. 그는 “가해자의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무기 거래 감시운동을 한다. 나 또한 무고한 희생자만 양산해 내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배만 불리는 전쟁의 가해자 중 한 명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도구화”(김한민영)되어 폭력과 살상과 착취 구조의 한 톱니바퀴로서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기여하고 싶지 않다. 기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본다.

“군사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는 계속 타자이자 도구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 역할을 거부하려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일과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일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지혜의 인터뷰에서는 비건, 퀴어(비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여성병역거부운동을 더 알아갈 수 있었다. 나는 비건·동물권 활동가로서의 병역거부운동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군대에서 전쟁 연습을 할 때, 무기를 제작하고 실험할 때, 실제 전쟁이 일어날 때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비인간 동물 착취·학대당하고 살해되고 처참한 환경 파괴가 일어난다. 비인간 동물과 환경을 위해서, 다시 말해 직접 선언할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하여 나는 한 명의 ‘동물’로서 병역거부운동 선언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이 책은 반전·평화·병역거부 운동에서 그간 얼마나 많은 여성활동가가 종횡무진 해왔는지, 얼마나 큰 힘을 쏟아왔는지 알려준다. 동시에 이 운동이 페미니즘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더 나아가 여성활동가들이 지금껏 키워온 단단하고도 따스한 힘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강정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면서도 (당연히) 가부장제의 힘이 완고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고 그로 인해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분명 여기에 수많은 여성활동가가 있는데 왜 항상 남성활동가가 더 부각될까? 여성의 목소리는 더 쉽게 간과되고 그 존재가 배제될까? (퀴어·장애인·비인간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뚝 서서 구호를 외치는 여성활동가들로부터 힘을 얻을 때가 많았다. 거기다 이 인터뷰집까지 읽으니, 앞으로 투쟁을 이어나갈 나의 힘을 충전해 줄 든든한 존재들이 나의 곁을 지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여옥 활동가의 말처럼 길이 보일 때까지, 도와줄 사람이 모일 때까지 일단 잘 버텨나가 보고자 한다. 물론 그 버티는 시간 동안 나는 여성, 퀴어, 동물권 활동가로서 나의 온몸을 던져 평화를 위해 힘쓸 것이다. 다시 한번 외쳐본다. “혁명은 여성의 것”이라고!



글 _ 토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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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병역거부, 반전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 세상> 블로그에 최초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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