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더디 온다. 떠난 이의 이름보다, 살아남은 자의 기억보다, 태어난 아기가 맞이할 노년보다 늦게 온다. 평화는 느리지만, 어디에나 있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평화가 곳곳에 있다. 전쟁으로 떠오르거나 혹은 가라앉은 이름이 머무르는 길, 평화로 가는 길을 소개한다.

 

대구대학교 웅지관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누구나 소녀상 옆에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제작했다. 사진 김연주
대구대학교 웅지관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누구나 소녀상 옆에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제작했다. 사진 김연주

 

평화의 소녀상

대구대학교 웅지관 앞,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대구대로 201

 

대구대학교 웅지관 건물 앞 평화의 소녀상은 2017년 12월, 전국 최초로 대학 교정에 세워졌다. 대구대학교 학생들이 평화의 소녀상 건립 비용을 모금해 제작됐다. 대구대학교 총학생회는 “인사를 건네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일깨워주고 영원한 평화를 노래하는 소녀상이기를 기원”한다는 문구를 표지석에 남겼다.

 

대구대학교 학생 및 교직원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이 소녀상이 피해자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길 바랍니다.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대구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보낸 축하 메시지 중에서

안중근 의사 동상, 추모비

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하양로 13-13

 

안중근 의사 동상과 추모비. 사진 김연주
안중근 의사 동상과 추모비. 사진 김연주

 

대구가톨릭대학교는 안중근 의사(1879~1910) 의거 101주년을 맞은 2010년 10월 26일, 교내 중앙도서관 앞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이후 해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3월 26일, 추모식이 열린다. 대구가톨릭대는 2011년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우고 안중근 연구소를 열었다. 안중근 의사의 딸 안현생 씨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년간 대구가톨릭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위령비 

경맥백합공원, 경북 경산시 남천면 흥산리 산 6-6

 

2023년 4월 20일 경산 백합공원에서 태평양동지회 주최로 위령제가 열렸다. 사진 김향숙
2023년 4월 20일 경산 백합공원에서 태평양동지회 주최로 위령제가 열렸다. 사진 김향숙

 

경산시 남천면 백합공원 초입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오키나와로 강제 징집돼 숨진 희생자 40위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있다. 1944년 6월 경산에서는 351명이 강제징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귀향하던 생존자들이 태평양동지회를 결성해 모임을 열고 1987년 위령비를 세웠다. 지난 4월 20일에는 태평양동지회 주최로 제37차 위령제가 열렸다. 경산지역 오키나와 강제징집 희생자에 관한 책으로 영남대 권병탁 교수가 쓴 <게라마 열도>가 있다.

 

 

평화디딤돌 <이 동네 사람 신용근>

경북 경산시 남산면 평기 1길 19

 

2022년 10월, 일본군에 의한 강제징용 희생자 고 신용근 씨를 기억하며 평화디딤돌을 그의 고향 마을에 설치했다. 사진 김연주
2022년 10월, 일본군에 의한 강제징용 희생자 고 신용근 씨를 기억하며 평화디딤돌을 그의 고향 마을에 설치했다. 사진 김연주

 

일본군에 의해 1944년 6월 군 노무자로 오키나와에 끌려간 신용근 씨는 1946년 2월 고향 경산으로 생환했다. (사)평화디딤돌은 2022년 10월, 경산시 남산면 평기 1리에 일제강점기 오키나와 강제 동원 피해자 신용근 씨를 기리는 평화디딤돌을 설치했다. 평화디딤돌 놓기 행사에는 고 신용근 씨 유족과 평기리 주민, 일본 홋카이도 슈마리나이댐 강제 동원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해온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회원과 평화디딤돌 관계자,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은정 교수 및 학생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평화디딤돌은 2021년 경북 영덕 야성초 후문과 포항 환호공원에도 설치됐다.

 

고 신용근 씨를 기억하며 평화디딤돌을 놓던 날, (사)평화디딤돌은 유족 신영범 님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진 김연주
고 신용근 씨를 기억하며 평화디딤돌을 놓던 날, (사)평화디딤돌은 유족 신영범 님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진 김연주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공적비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 15-4

 

2023. 5.31.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공적비. 사진 김연주
2023. 5.31.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공적비. 사진 김연주

 

2차 세계대전이 격화하면서 일제가 대규모 강제 징용·징병을 강행하자 이를 거부하며 1944년 7월 안창률, 김명돌, 성상용, 최태만 등 29인이 ‘결심대(決心隊)’라는 이름의 조직을 결성하고 경산 대왕산에 진지를 구축했다. 청년들은 죽창과 돌을 들고 일제에 항거했으나 8월 10일에서 13일 사이에 전원 체포됐으며 이후 안창률, 김경화는 옥중 순국했다. 결심대 대원은 모두 농민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된 항일투쟁의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5월 31일, 제79주년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추모제가 유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산면 사월리 공덕비 앞에서 열렸다.

 

경산 코발트 광산

경북 경산시 평산동652

 

경산 코발트 광산 내부. 사진 출처=경산시청
경산 코발트 광산 내부. 사진 출처=경산시청

 

경산 평산동 코발트 광산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희생자는 국민보도연맹원과 대구·부산형무소 수감자 등 약 3500명으로 추정된다. 2005년 과거사정리법 제정으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2007년부터 2009년에 걸쳐 유해 발굴을 진행했으나 예산 삭감으로 중단됐다. 2022년 2기 진실화해위가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올해 3월 유해 수습이 재개됐다. 2016년 대법원은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경산 코발트 광산은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에서는 2021년 경산 코발트 광산을 주제로 전시 경안로프로젝트와 시민교육을 진행한 바 있다. 노래극단 희망새는 올해 2월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을 다룬 뮤지컬 <고스트메모리>를 상연했다.

 

코발트 광산 외부에 설치한 문종필 작가의 작품 〈화해와 용서〉. 사진 김연주
코발트 광산 외부에 설치한 문종필 작가의 작품 〈화해와 용서〉. 사진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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