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6] ‘문살에 핀 봉숭아’
[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6] ‘문살에 핀 봉숭아’
  • 이은주
  • 승인 2021.09.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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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여름은 뜨거웠다. 온막은 비와 풀들이 번갈아 열기를 빨아들여 푸르렀다. 빌딩과 불빛이 없는 이곳은 하루가 참으로 선명하다. 시간이 지나가는 길이 있고, 그 길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낮엔 마당에 선 소나무 그림자를 밟고 지나다, 노을이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간다. 텁텁한 마당의 열기를 밀어내는 생울타리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시각각 냄새와 온도가 다르다. 모기와 감나무 밭의 거름에서 나는 쿵쿵한 냄새는 후텁지근하고, 들꽃과 칡향기를 품은 달콤함은 시원하며, 뒷산 소나무의 푸른 향기는 서늘하다. 바람의 냄새와 온도로 매미와 새와 뱀도 하루가 다 되었음을 알아챈다. 별과 달을 따라 고라니 미친 울음소리 열댓 번이면 한밤이 지나고 오늘이 잠든다.

7월 말부터 시나브로 땅과 하늘은 뜨거워졌다가 한 열흘을 끓더니 어느새 열기는 식고, 8월을 젖히고 9월을 데려왔다. 봄 농사는 그래도 모종값은 한 거라며 손뼉을 쳤다. 토마토와 오이를 몇 개 따 먹고, 키가 덜 자란 고추는 아직도 조금 달려있고, 풀이 무성한 사이로 수박을 4개나 땄으니 말이다. 8월 15일 배추를 심을 때라 해서 모종을 사서 심고 일주일 뒤 무씨를 심었다. 시금치도 상추도 조금 당근도 조금… 그렇게 겨우 두 고랑 만들었는데 오른손 손가락과 왼 손목이 뻐근하고 우리하게 아프다. 벌써 이러면 어찌하나 싶지만 그래도 태평이다. 풀들은 제멋대로 잘도 자란다!

 

ⓒ이은주

우리가 소송 준비를 하고 경찰 조사를 두 번 받는 사이 여름이 가고 말았다. 비가 너무 잦았는지 소송은 졌다. 경찰은 ‘혐의없음’ 통지서를 보내왔다. 그는 처음부터 OSB 합판을 쓸 작정이었지만,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에서는 말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이미 그 재료에서 폼알데하이드가 나오는 걸 알면서도 ‘친환경’인 줄 알았다고, 폼알데하이드가 나올 줄 몰랐다고 했다. 우리가 매일매일 폼알데하이드 측정기로 수치를 기록할 때 그는 한 번도 와서 수치를 측정한 적도 없으면서 자기들이 측정기 두 개를 사서 측정했노라고 측정기를 경찰에게 보여줬다. 그러면서 그전 공사에서 했지만 온막 공사에서 다른 부분은 오일스텐 처리라 오일스텐을 발랐다고 했다. 그것이 더 많은 폼알데하이드를 뿜어내게 할 줄 몰랐다고….

‘모르고 그랬지 속일 의사는 없었다.’ 

몰라서 잘못하는 것과 속일 의도가 있는 것, 집을 짓는 사람으로서 어느 게 더 나쁜지 모르겠다. 자격이 없거나 사기꾼이거나. 의사가 약을 잘 몰라서, 인체를 잘 몰라서, 잘 못해서 사람이 다친다면, 그래서 사람이 아프고 죽으면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몰라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인지…. 집 자체가 증거인데 경찰은 결국 현장 조사도, 건축전문가의 자문도 없이 기망의 의도가 없는 것으로 정리하고 말았다. 계약서를 정확하게 안 썼기 때문에 증거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잠깐 생각했다. 기분이 좋지 않지만 전 업자에게 약속한 남은 공사를 하게 할지, 손해를 보고 관계를 끊을 것인지. 우리의 답은 분명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전문성이 없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에게 집을 맡길 수는 없다. 해봐야 다시 뜯어내야 할 것이다. 몇천만 원을 손해를 보더라도 삿된 자의 발을 들이는 건 허용할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공사비는 새로 마련을 해야 한다. 우리가 너무 현실성 없나 하고 잠시 돌아봤지만, 답은 분명했다. 더 큰 사고와 고통을 미리 막아야지. 백에 백 사람이 비싼 수업료를 낸 셈 치라고, 더 많은 사람이 평화를 얻고, 더 안전한 집이 되려나 보다고.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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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냄새를 맡으며 방문에 문종이를 발랐다. 뒤뜰에 핀 봉숭아와 소나무 아래 백일홍을 따다 책으로 눌렀다. 짐이기만 하던 책이 이리 요긴하게 쓰인 건 처음이다. 문종이를 한 겹 바르고 그 위에 꽃을 얹고 다시 한 겹 종이를 발랐다. 오, 문살 사이로 곱고 고운 봉숭아가 피어났다. 긴 겨울밤이면 우리의 여름을 들려주리라. 집에 머물자 사람들이 왔다. 위로와 지지 차, 마음의 고요와 성장을 위해서. 위급하게 상담을 원하는 분이 있어 청소를 하고, 벌레를 쫓으려 집 안팎으로 약을 쳤다. 뒤란에 썩어가는 나무를 정리하고, 아까운 대추나무는 베어버렸다. 친구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별과 구름을 보는 기쁨이 이 모든 고난과 고통을 씻어간다.

 

- 9월 8일.

 

글 / 이은주 (65년 성주 생, 동화작가,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티스트, 이은주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경산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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