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올해도 국가가 불법적으로 사드를 임시배치한 성주 기지에 공사가 예정되어있다. 공사는 4월이라고 이야기가 돌았지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봄이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가셨지만, ‘NO THAAD’가 적힌 롱패딩은 벗지 못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뒤늦은 꽃샘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나무는 싹을 틔웠고, 벚꽃을 피웠다. 성주 사드 기지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로 산허리에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초록빛이 감도는 겨자색 생강나무꽃이 예뻐서 찻주전자 속에 넣어두겠다며 나뭇가지를 꺾었다. 

 

둥굴레 캐기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나는 산으로 올랐다. 순분 씨와 태환 씨는 심마니가 입을 법한 주머니가 커다란 앞치마를 둘렀다. 달밭마을 건너편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드 기지가 있는 산 둘레길로 들어섰다. 죽은 나무에 서식해 자라고 있는 영지버섯을 따기도 했지만, 그녀들의 목표는 둥굴레를 찾는 거였다. 둥굴레 줄기는 갈대처럼 가늘고 길게 생겼지만 그다지 크지 않아서 눈에 띄지 않았다. 순분 씨와 태환 씨가 용하게 알아보고 뾰족한 연장으로 흙을 파내면 둥굴레의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둥굴레의 속살은 꽤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어서 주변을 넓고 깊게 파내야 널찍하게 퍼져있는 둥굴레를 온전히 획득할 수 있다. 

줄기의 모양이 갈대를 닮았다지만 억세지 않고 여리다. 마디가 있어서 구분된다. 낙엽으로 뒤덮인 산길은 미끄럽지만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산으로 오르면서 만난 둥굴레는 작은 나무의 잔뿌리에 얽히고설켜서 잘 자라지 못한 듯 가늘고 힘없어 보였다. 

사드 기지를 둘러싼 철조망 너머 옛 롯데골프장 터에는 둥굴레 군락지가 있어서 캘 것이 많았고, 길이 잘 닦여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군락지에서 둥굴레를 실컷 캐고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철조망이 쳐진 이후로 둥굴레 군락지는 군대의 땅이 되어버려서 소성리 주민뿐 아니라 약초 캐러 다니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주민들이 캘 수 있는 둥굴레는 잔 나무, 잔뿌리에 치여 자라지 못한 가늘고 마른 것들뿐이다. 

둥굴레 한 뿌리를 캐기 위해서 온 산을 찾아 헤매야 했지만, 한 뿌리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구마 줄기처럼 엮이고 연결되어서 두툼하게 주머니를 채워주었다. 둥굴레를 캐는 재미가 있었던 거다. 원 뿌리에 보송보송 잔털이 잔뜩 붙어있지만, 팔팔 끓는 물에 데쳐 햇볕에 말리고 나서 훑어버리면 잔털은 후드득 다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뻥튀기 기계에 넣어서 튀기면 둥굴레차로 끓여 마실 수 있다. 

겨울 끝에 봄을 맞이하려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 둥굴레를 캐다 보면 어느새 봄은 성큼 다가와 있다. 한 해 동안 끓여 마실 차를 마련했다.

 

머위 뜯는 날

하루는 태환 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사드 기지 철조망 둘레길로 오르는 대나무 숲길로 머위를 캐러 갔더니 젊은 남자 넷이 모자를 눌러쓰고 오더란다. 태환 씨를 보고는 인사를 꾸벅한다네. 혹시나 사드 반대 투쟁하는 연대자들 중에 성주 사드기지 철조망 둘레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철조망 둘레길을 걷기로 한 연대자는 없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젊은 남자 넷이라면 군인 장병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군대 안에 있던 이들이 철조망 바깥을 탐방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주 걷는 둘레길을 둘러보는 게 아닐까 추측하지만, 이유를 알 길은 없다. 사드 부지공사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다.  

다음날 순분 씨와 머위를 뜯으러 찾아갔다. 하필 소성리에서 다리 하나 넘으면 김천인 경계선에서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우리는 다리를 건너지 못해 사드 기지 철조망 둘레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소성리에서 가장 끝 집에서 차를 세웠다. 윤석 씨네다. 성주 사드기지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다.  마당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에 목련이 활짝 피어있었다. 목련 나무는 평상 한가운데를 뚫고 자라서 지붕이 되어주었다. 윤석 씨 부인 ‘동영댁’은 산골짜기 외딴집에 오랜만에 찾아준 손님이 반갑기만 하다.

마을 주민에게 동네 빈집 뒤뜰에 자란 머위를 안내해주었다. 허름한 빈집의 터는 넓었고, 예전에는 밭으로 가꿨을 법한 자리는 온갖 풀이 자라서 어지러웠지만, 머위가 흩어져서 자라고 있었다. 동영댁은 머위 뜯고 점심 먹고 가라며 우리를 붙잡았지만, 갑자기 찾아든 것도 미안한데 밥까지 민폐를 끼칠 수는 없어서 다음을 기약했다. 

 

쑥 캐는 아낙들

소성리로 올라가는 길에 주문을 외우듯이 나는 ‘콩나물, 콩나물’을 외웠다. 콩나물 한 봉지 사 오라는 순분 씨의 주문이었다. 

윤석 씨네 묵은 밭으로 쑥 캐러 가는 날이었다. 동영댁에게 콩나물밥을 해달라고 하자고 했다. 순분 씨와 규란 씨 그리고 나는 한 손에 콩나물 봉지를 들고 윤석 씨네 집으로 들어섰다. 허리가 꾸부정해졌지만, 꽃만 보면 힘이 나는 동영댁이다. 우리를 보고 반가이 손짓을 해주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오른편 헛간에는 약초며 약나무며 양식거리가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집 둘레는 동영댁이 좋아하는 꽃나무로 가득하다. 동영댁은 철철이 꽃이 피는 것만 보면 아픈 줄 모르고 살겠노라 한다. 집 안팎으로 마당 구석구석에 꽃나무다. 

동백이며 명자며 목련이며 영산홍이며… 이번 장날을 놓쳐 철쭉을 더 비싼 값에 열 뿌리 사서 심었단다. 나이 들어 힘에 부쳐서 논과 밭을 놀리고 있지만, 꽃나무 심고 가꾸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에게 아파도 병원 안 가고, 약도 안 사 먹을 테니까, 병원비 아껴서 꽃나무만 원없이 사달라고 했다며 깔깔깔 한바탕 웃었다. 장날에 다른 거 필요 없고 꽃나무만 사다주면 물 주고 키워서 분재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집 뒤 언덕으로 오르면 마늘밭을 만들어놓았고, 염소와 닭이 사이좋게 울타리 안에 모여있다. 산을 등지고 아래로 내려다보면 소성리에서 외딴집이지만, 시골집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드 기지가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평화로움 그 자체였을 아름다운 시골집이었을 거다. 

모처럼 오신 귀한 손님이 아닌 마을 주민에게도 정을 내어주는 순박한 시골 사람이었다. 쑥버무리를 한 소쿠리 내어주면서 맛보라고 권한다. 쫀득쫀득한 쑥버무리는 봄이 주는 보약이라고 했다. 사람이 그리운 동영댁과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석 씨네 앞에는 주인이 병치레로 손 놓고 있는 묵은 밭이 넓게 있었다. 쓰러진 마른 풀 사이로 쑥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발에 밟히는 게 쑥이었다. 아직은 여린 쑥이라서 가위질하는 게 조심스럽기만 하다. 동네 터줏대감 동영댁이 잘 지키고 있어서 묵은 밭이라고 아무나 들어가서 함부로 쑥을 캘 수는 없었다. 

쑥 캐는 동안 ‘달구’는 쉴새 없이 울었다. 성격 좋아 보이는 황구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촐랑거리며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대면서 짖어댔다. 동영댁에게 닭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듯 보였고, ‘황구가 순해 빠져서 낯선 사람이 와도 짖지 않는다’고 걱정이다. 황구가 죽으면 흙에 묻어주고 집 잘 지키는 하얀 진돗개를 키우겠다며 오두방정을 떨면서, 짖어대는 황구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점심때가 되자 동영댁은 점심 먹으러 오라고 손짓했다. 쑥 캐러 와서 밥까지 얻어먹기가 머쓱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밥상을 마주했다. 콩나물 한 봉지는 콩나물밥이 되지 못했다. 밥하는 사람 마음이라면서 냉이, 달래, 머위 나물무침과 된장찌개에 고봉으로 밥을 퍼서 상을 차려주셨다. 푸짐한 상차림이다. 

사람이 그립고 정겨워서 이야기보따리가 풀렸다. 

 

 

소성리의 봄날에 원 없이 꽃나무 키우면서 살고 싶은 소원 이루기 

성주 사드 기지가 들어설 때 롯데골프장에서 가장 가까이 살았던 윤석 씨네 부부는 ‘한반도 사드배치 결사반대’ 성주 촛불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다. 윤석 씨의 차에는 상돌 할매와 경임 할매, 금연 할매가 함께 탑승해서 성주 촛불로 달려왔었다. 

소성리로 사드가 배치되었을 때도 가장 속이 터졌을 소성리 주민이었다. 동영댁이 이 치료를 시작하면서 당뇨 증세가 심해져 발길을 끊었지만, 윤석 씨는 소성리 사드철거 수요집회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했다. 수요집회를 기다리는 일 인이라고 하지만 동영댁이 등을 떠밀어서 집회에 참석한다고도 했다. 

동영댁이 한참 동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다가 문득, 남편이 살면서 나아진 점이 사드 덕분에 엄청 똑똑해진 거라는 말에 우리 셋은 빵 터졌다. 사드 때문에 가슴에 멍이 들어도 사드 덕분에 웃을 일도 있었다. 

동영댁의 손맛으로 봄을 누리고 나서 또다시 한참 동안 쑥을 캤다. 헐거웠던 봉지에 쑥이 가득하다. 밭이 너무 넓고 지천으로 깔린 게 쑥이라서 그런지 어느 걸 먼저 뜯어야 할지 몰라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고 있을 때 규란 씨는 한자리에 옹골지게 앉아서 ‘맡아놓은 쑥’을 다 뜯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맡아놓은 쑥이라고 해서 또 웃었다. 쑥은 쑥쑥 자라고, 우리는 쑥덕쑥덕하면서 쑥을 뜯었다. 묵은 밭 쑥이 아까워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소성리에서 봄을 맞는다. 

한반도에 평화 정세가 오면, 사드 뽑을 때 힘 모아준 사람들에게 소성리로 머위 뜯고 쑥 캐러 오라고 알리고, 벚꽃이 만발한 날 봄놀이 오라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소성리는 사드 부지 공사로 봄을 맞는다. 

사드 부지 공사가 시작되는 봄을 맞아야 하는 우리는 올해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싸워달라고 손을 내민다. 공사를 막으러 달려와 달라고 외친다. 

나이 스물넷에 소성리로 시집와서 팔순이 된 동영댁이 평생을 살아온 터전에서 원 없이 꽃나무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소원은 행복한 결말로 맺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소원이 간절하면 이뤄지는 법이라고 했으니 소성리의 봄은 간절함을 가득 담아서 맞이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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