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 소성리] 소성리평화절박단! 
[요리조리 소성리] 소성리평화절박단! 
  • 기록노동자 시야
  • 승인 2019.09.0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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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명의 평화 발걸음을 꿈꾸는 연극을 하다

 

△ 연극 공연 모습.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내 생애 첫 연극 공연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불법 사드가 배치된 임시 기지(이하 ‘사드 기지’) 앞에서 마지막 연극 연습을 했다. 달마산의 정기를 받아서 무탈하게 연극을 끝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천지신명님께 정성 들여 기도하듯이 마지막 점검을 했던 거다. 

매일 오후 3시 30분이면 사드 기지 정문에서 평화행동을 한다. 참가자들은 군부대를 향해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각자 하고 싶은 발언과 구호를 외친다.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는 ‘사드 빼’와 ‘미군 떠나라’는 요구일 거다. 

평화행동을 마치고 사람들은 마을로 내려갔다. 소성리 연극 창작 모임은 남았다. 평화행동을 감시하는 경찰 봉고차는 내려가지 못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기지 정문 안 국군장병도 우리를 지켜보았다. 

실전에 들어서듯이 연습을 시작했지만, 첫 대사부터 남자배우 소야 훈은 대사를 잊어버렸고, 옆에서 소야 훈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성주읍 ‘새댁이’가 된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연극 중간에 흥을 돋우기 위해서 삽입한 ‘아모르파티’ 춤의 동작 순서는 거의 다 외운 듯했다. 

의상을 점검했다. 연극을 이끌어갈 주연배우 소야 훈은 장롱에서 나올 줄 몰랐던 펑퍼짐한 70년대 ‘가다마이’와 헐렁한 ‘기지바지’를 들고 왔다. 성주읍 새댁이 나는 빨간 꽃무늬 훌라 치마에 반짝이가 요란스럽게 박힌 흰 셔츠를 준비했다. 미스코리아가 맬 법한 어깨띠에는 ‘사드 배치 결사반대’ 가 적혀있었고, 양말 신은 채 흰 고무신을 신었더니 촌스럽기 그지없다. 춤출 때 뻣뻣한 몸을 찰랑찰랑 거리게 만들어 줄 크리스마스트리를 휘감았다. 

연극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무대 위에서 리허설만 하고 나면 2019년 8월 24일 소성리 토요촛불문화제에 우리가 준비한 연극이 무대 위로 올려진다. 


고봉으로 가득 담긴 국수 한 그릇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조용한 곳을 찾아 마을로 들어섰다. 규란 엄니가 수돗가에서 손빨래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본 규란 엄니는 국수나 삶아먹자고 했지만 나는 연극을 해야 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급구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규란 엄니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조금만 먹으라고 어르고 달래고 꼬시고 밀어붙였다. 규란 엄니, 당신 혼자였으면 식은 밥 한 덩이 먹었을 일을 나랑 함께 먹기 위해서 귀찮게 주방 일을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멸치 넣고 다시 국물을 끓인다. 또 다른 가스 위에는 채 썬 호박을 데친다. 다진 마늘과 깨와 들기름으로 간장을 만들었다. 데친 호박은 간장에 버무려서 국수 고명으로 쓸 작정이다. 국수는 한 솥 끓인다.

나는 조금만 먹겠다고 말했고, 규란 엄니는 “그래 알았어… 조금만 먹어”라고 했다. 분명히 그렇게 주고받았는데, 내 앞에 놓인 커다란 대접에 국수가 고봉으로 올라가 있다. 그 위에 호박 고명을 빽빽하게 올려서 멸치 다시 국물을 부었다. 간을 보면서 양념간장을 얹었다. 놀라운 국수 양에 입이 쩍 벌어졌다. 

규란 엄니는 “그릇이 작아서 많아 보이는 것뿐”이라고 했다. “잘 먹어야 연극하지. 배고프면 연극하다가 허기져서 못 써” 하는 거다.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웃음만 났다. 군말 않고 국수를 말끔히 다 먹어치웠다. 지금껏 소성리에서 내가 받아온 사랑의 양이란 걸 잘 안다. 


‘마침내 사드 철거’하는 깃발 퍼포먼스 

소성리에서 연극모임을 처음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가을 문턱이었다. 

사드 철거 촛불문화제가 끝나도 마당에 남은 사람들은 이야기 소리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소야 훈은 소성리 형님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서 깃발 퍼포먼스를 한 용기에 감탄하고 있었다. 젊은 우리가 가만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소성리 형님들의 깃발 퍼포먼스는 제8차 범국민 평화행동 무대위에서 공연하였다.

그날,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이하 ‘성주대책위’라고 함)의 남자 어른들 여덟 명이 무대에 올라서 깃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 승리 

단 한 번 승리

바리케이드 넘어 저 너머 

마침내 사드 철거’

 

웅장한 음악에 맞춰서 ‘사드 철거’가 적혀있는 붉은 깃발을 한 손에 거머쥐고 각진 동작을 해내는 것인데, 중간중간 대사를 외치는 부분도 있었다. 

연극인 손 배우가 연출하고 감독을 맡았다. 나이가 육 십 안팎의 남자 어른들은 멀리서 소성리로 달려오는 평화 세력들에게 마음을 다해 성주대책위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위원장 한 사람 단상에 올라가 핏대 세워 고함치기보단 성주대책위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함께 준비해서 참가자들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주고 싶은 바람이었다. 

△ 깃발 퍼포먼스 연습. 사진 이재각

이종희 위원장이 앞장 서자 다른 대책위원들도 마음을 열고 연습에 임했다. 행사가 있기 전 일주일간 매일 밤 소성리 마을회관 앞마당으로 모였다. 손 감독의 지휘를 받으면서 연습을 시작하였다. 

팔다리는 유연하지 않았다. 걸음걸이는 어설펐다. 말해야 할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순서는 자꾸만 잊어버렸다. 늦은 밤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소성리 할매들은 마당 끝자락에 자리를 폈다. 나란히 앉아서 마칠 때까지 구경했다. 매일 안방극장 시청하듯이 연극 연습을 구경했다. 할매들은 동작의 순서를 외웠고, 어느 누가 어떤 대사를 외쳐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연습하다가 틀리면 할매들이 먼저 눈치를 채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 한마디 불쑥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저기서도 한마디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한 여름밤의 소성리 마당이 왁자지껄했다. 간혹 큰소리가 나기도 하고,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이 생기긴 했지만, 다음날 연습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제8차 범국민평화행동이 개최되는 2018년 7월 7일 소성리 진밭교의 무대 위에서 여덟 명의 남자 어른들이 붉은 깃발을 움켜쥐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붉은 깃발이 펄럭거리는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갈채가 쏟아졌다. 

그날의 감동과 여운이 소야 훈의 가슴이 오래 남았던가 보다. 젊은 우리는 연극을 하기로 했다. 연극인 손배우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녀는 늘 한결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우리를 인도해주었다. 


연극, 이어말하기

연극 대본이 따로 만들어진 건 없었다. 대본을 만드는 작업부터 우리 스스로 해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았다. 

사드가 성주로 배치될 거라는 뉴스를 접했던 여름밤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사드가 뭔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며 친한 이웃들과 급하게 교회 강당을 빌려서 모였다. 성주군청으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고, 성주군수가 사드를 반대한다면서 단식을 하고, 혈서를 썼다. 성주군으로 찾아왔던 황교안 전 총리와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이 돌아가지 못하게 막아섰던 성난 군중, 성주로 들어오는 경찰버스들, 성주 거리에 쫙 깔린 정보과 형사들, 국정원 직원들, 기무사 요원들, CIA 요원들… 무성한 소문으로 긴장되고 공포로 경직되는 시간이었지만, 성주를 환하게 밝혀준 촛불을 든 사람들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사람 때문에 아팠다. 

제3부지로 지목된 소성리. 사드는 배치되었다. 한반도에 사드의 최적지는 없다고 외쳤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싸움은 끝날 수가 없었다. 매일 지긋지긋한 경찰 공권력과 대치해야 했고, 폭력은 일상이었다. 

소야 훈에게 소성리는 어린 시절 추억이 쌓여있는 창고였다. 

소야 훈은 방학 때만 되면 소성리에서 생활했다. 사촌 형제들과 이웃의 친구들과 소성리의 맑은 계곡물 따라 가재 잡고, 물고기 낚아서 놀던 시절, 소 끌고 진밭교를 넘어 달마산 자락에서 소타기 말타기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감자 구워 먹고 산천을 누비면서 놀았던 어린 날의 놀이터다. 

큰아버지 집 마당에는 배가 볼록한 텔레비전이 있었다. 저녁만 되면 모깃불 피워놓고 동네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앉아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큰아버지네의 넉넉한 품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깜깜한 밤이면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재래식 화장실이 겁나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방 한쪽에 놓여있는 요강 단지에 오줌이 흘러넘칠까 봐 조심조심해야 했던 한밤중의 풍경도 그립기만 하다. 

세월이 흘러, 소야-소성리의 옛 이름. 아름다운 들이란 뜻-에서 난 어린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늙은 어른들은 도시로 떠나 자식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면서 삶의 터전을 지켜왔다. 

사드가 소성리로 배치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소성리 할매들은 깜깜한 소성리 마을회관에 모여들었다. 불을 켤 생각도 않고, 밥을 먹을 정신도 없이 앓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였다. 성주읍으로 나간 소성리 부녀회장이 오기만 기다렸다. 소성리 부녀회장이 회관의 방문을 열자 그때야 소성리 할매들은 울먹이면서 왜 이제야 오냐고 나무랐고, 겁이 났다고 고백했다. 

소성리에 큰 불행이 닥쳤다는 걸 예감한 성주댁 할매는 성난 목소리로 “내 두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쓰는 절대로 안된대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할마이들이 죽기 전에 사쓰는 뽑아주고 가야 할낀데” 라는 넋두리를 잊지 않았다. 

할매들에게 사드는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유산이었다. 


소성리에 평화가 절박하다

연극모임은 각자 인사말을 준비해서 큰소리로 말하기 연습을 한참 동안 하였다. 우리가 어디로 인사를 해야 할까? 큰소리로 인사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연극의 줄거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성리 만인보 평화절박단’(이하 평화절박단이라고 함)이 되기로 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면서 무시무시하고 으스스 한 사드를 뽑으러 소성리로 와달라고 호소하기로 했다. 

소성리로 만 명의 평화 발걸음을 모으는 게 우리의 임무인 셈이다. 평화절박단이 매화마실에 찾아가는 설정을 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예술단‘(이하 평사단이라고 함)이 평화절박단에 합류했다. 평사단이 ’사드반대가‘ 율동을 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매화마실에서 소야 훈이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부끄럼 많은 제가 이렇게 큰마음 먹고, 무대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 너무나도 큰 고통을 겪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꼭 알려야 되겠더라고 예. 어딘가 하면 경상북도 성주군 소성리라는 마을입니다. 저는 거게서 사는 소야 훈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사드라고 하길래 새로 나온 ‘하드’인 줄 알았다던 소야 훈은 사드가 무시무시한 전쟁 무기이지만 백해무익한 군사 무기임을 잘 알 수 있도록 ‘사드박사’도 모시고 왔다. 

소성리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낮에는 열심히 직장 다니고 밤이면 짬짬이 율동 연습해서 평화절박단과 함께 소성리 평화발걸음을 모으고 있는 평사단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매화마실 주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드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가 힘을 합쳐서 뽑아버리자며 ‘아모르파티’ 노래에 맞춰 막춤을 추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소성리에서 사드 때문에 고통받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줄 소성 부녀회장님도 모셨다. 

“지금은 사드가 배치돼서 군대 철조망이 처져 있는 저 달마산 자락은 소성리 아낙들이 시집살이 고달픔을 피해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쉼터였고, 아낙들끼리 나물 뜯고 이야기보따리 풀어서 충전할 수 있었던 해방구였다.” 

소야 훈 단장이 매화마실 주민들에게 묻는다. 

“우리가 와 소성리평화절박단을 만들어서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드 반대하는지 아시겠지예?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이 독립국가가 아니고 일본 총독부 시절처럼 미 제국주의 식민지임을 뼈아프게 느끼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소성리평화절박단에 함께 해주이소”이다. 연극은 ‘사드 가고 평화 오라’를 함께 부르면서 막을 내렸다. 유랑극단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서라도 소성리로 만 명의 평화 발걸음을 모으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가 연극을 이끌었다. 

소성리로 만 명의 평화 발걸음이 모이면 저 고철 사드는 반드시 뽑혀나가리라. 

연극을 시작하자마자 연극을 지켜보던 소성리토요촛불의 관객들은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평화절박단 소야 훈 단장의 입에서 한마디가 나오기 무섭게 폭소가 터졌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연극 준비를 했다. 할매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몰래 숨어서 연습했었다. 할매들은 눈치를 챘고, 우리가 언제 공연을 할지 기다려주었다. 중도에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힘겨웠다. 내가 내뱉은 말로 쓴 대사도 못 외워서 쩔쩔맸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어색한 무대가 힘겨웠다. 

오로지 소성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를 지탱시켜준 것이다. 

내 생애 첫 연극은 성공했다. 

2019년 8월 24일 소성리 토요촛불문화제에 참여한 모두를 웃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소성리 할매들은 눈물 나도록 기특한 연극을 지켜봤을 테고, 우리는 할매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분기탱천하였다. 그리고 살짝 감동도 곁들여졌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무대였으니 말이다. 

소성리의 에너지로 연극을 끝까지 갈무리할 수 있었다. 


사드 부지 공사가 또 시작되었다

국방부는 장병 숙소를 개선하는 공사라고 했지만,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 구축을 위해 사드 기지 공사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방부는 마을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육로수송을 자제하고 공사 장비와 자재를 군 헬기로 공중수송을 하겠다고 밝혔다. 소성리 상공에는 커다란 컨테이너를 대롱대롱 매달고 소음을 내는 헬기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소성리 평화지킴이들은 육로를 가로막고 싸워서 소성리 마을 길로 미군도, 미군 차량도, 군대 차량도 다닐 수 없게 만들었다. 투쟁의 성과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공사를 중단하고 사드를 빼는 거다. 

소성리에 평화가 절박하다. 

미국의 군사 전략 기지화될 사드 기지 공사를 저지해야 한다. 

하늘길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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