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주 사드기지가 위치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은 아직 투쟁 중이다.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소성리 마을 앞으로 미군은 통행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해 기름 한 방울 운반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한 장비도 이동할 수 없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그 무엇도 소성리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 소성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서 사람이 살아온 마을이며 평화종교 원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가 달마산 꼭대기에 배치된 이상 우리는 단 하루도 발 뻗고 편하게 잠들 수 없다. ‘사드 가야 평화돼지해’를 맞아서 소성리 주민은 길어지는 투쟁으로 지쳐간다. 그러나 살기 위한 투쟁이다. 삶은 치열하다. 소성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투쟁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_ 기록노동자 시야(施野) >

 

▲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1. 길

날마다 길을 걸었다. 
성주 사드기지로 가는 길. 
전쟁의 화염으로 들어가는 길. 평화의 새 시대를 걸어가게 될 길. 
어떤 길이 될지 나는 알지 못한 채 길을 걸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고 부랴부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밤새 차가운 기온에 얼어붙은 차는 예열하는 몇 분 사이에 녹지 않았다. 찬 서리가 하얀 차창을 더운 히터 열로 쏘이면서 녹여 억지로 운전했다. 아침 일찍 달려간 곳은 소성리마을회관이었다. 

차를 세워놓고 내려 목을 양쪽으로 돌렸다. 허리를 흔들면서 몸을 풀고는 성주 사드기지를 향해서 걸어간다. 

경찰은 도시락을 받아들고 버스로 들어가고, 밥을 다 먹은 경찰은 양치질한다. 입안을 다 헹궜는지 과수원을 향해서 퉤 하면서 길게 뱉어낸다. 하얀 치약이 입안의 오물들과 뒤섞여서 소성리의 땅을 더럽히는 장면을 날마다 목격해야 했다. 

칫솔질하는 저 경찰의 입을 찍어주고 싶었다. 과수원을 향해서 퉤 하고 뱉어대는 저 주둥아리는 찍어두면 좋겠다. 내가 사진기를 들고 얼굴에 들이대면서 찍으려고 들면 뱉으려던 오물이 놀라서 자신의 입속으로 쑥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내가 영상촬영을 한다면 저들이 밥을 처먹고 이를 닦고는 아무렇게나 뱉어대는 오물 덩어리의 현장을 찍으면 좋겠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진밭교에 다가가자 드러누웠던 평화가 나를 보고는 귀를 쫑긋 세운다. 두 발을 짚고 서서 나를 향해 두 발로 박수 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가운 포즈다. 평화에게 다가가면 내 다리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구석구석 냄새 맡는다. 내게서 유키와 미니의 자취를 탐색하는 듯하다. 

아침 기도회는 시작되고, 한반도 평화기도문을 읽는 소리가 진밭에 울려 퍼진다. 날마다 기도하는 강형구 장로님과 김선명 교무님과 백창욱 목사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성주 사드기지로 걸었다. 

1월에 걷기 시작할 때는 세찬 칼바람 때문인지, 저질 체력 때문인지 걷는 동안 호흡이 곤란했었다. 추워서도 벌벌 떨었지만, 숨이 가빠서 헐떡거렸다. 한파 속에서도 걷다 보면 몸 안에 열이 올라서 얼굴과 귓불이 빨개졌다. 소성리마을회관에서 성주 사드기지 까지 2.4km 오르막길이었다. 

어제는 폭우가 쏟아진 덕에 세상이 다 씻겨진 듯이 깨끗하고 청정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봄이 성큼 다가온 걸 느꼈다. 바람은 경쾌하고 시원하다. 산은 온통 물을 머금고 솜털이 뽀송뽀송 피어오르고 있는 듯하다. 

연극모임은 작년 늦은 가을부터 시작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열흘에 한 번 모여서 사드 반대 활동을 했던 경험과 감정을 나누었다. 모임은 한참 동안 이뤄졌고, 연극을 하기 위해 감수성을 키웠다. 연극은 ‘소성리 평화 사절단’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소성리 사드를 뽑는 만 명의 평화 발걸음을 모집하러 다닐 계획이다. 내가 특별한 배역을 맡은 건 아니다. 누구나가 만 명의 평화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내 연극 대사를 나의 언어로 만들고 있다. 

뭐라고 말할까? 
성주 사드기지에서 아침 7시 40분 또는 50분 경이면 아침 평화행동이 시작된다.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발언을 한다. 나는 내 언어로 발언하는데, 한편으론 연극 대사를 만드는 과정이 되었다. 
나는 연극을 하듯이 외쳤다. 

 

2. 읍새댁

안녕하십니까. 지는 성주읍에 사는 주민입니다. 읍새댁이라고 합니다. 소성리 할매들이 읍새댁아, 읍새댁아, 하고 부르대예. 진짜 새댁은 아니고예. 

지는 원래 성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아니고예. 대구에서 이사 들어왔습니다. 제가 살던 대구는예, 제 남편이 야간근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할라고 하면 전투기가 시도 때도 없이 날라와서는 두-두-두-두 너무 시끄러운기라예. 사람이 잠을 자야 일을 할 수 있는데, 낮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예. 그래서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서 다녔는데요. 성주가 대구에서도 가깝고, 공기도 좋고, 시골인 데다가 집값도 싸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애가 초등학교 때 성주로 이사를 들어왔습니다. 성주로 들어서는 도로에 넓은 논과 밭을 바라보던 우리 애가요.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흥! 롯데리아도 없고, 대형마트도 없는 곳에서 나보고 살라고? 이런 시골에서 어떻게 살라고!"
부모 따라 이사를 오긴 왔지만 도시 생활하던 우리 아이가 얼마나 기가 찼겠습니까? 이사 들어오고 나서 롯데리아도 생기고 대형마트도 생기긴 했지만.

우리가 산 집이요, 대구에서는 어림도 없는 가격에 100평도 넘는 마당 넓은 집이라예. 지은 지도 얼마 안 된 신식 주택이지요. 처음에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집이 좋아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거 맨크롬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꺼? 여우 피하다가 호랑이 만난다고 사드라니요? 미군이 들어온다니요. 내가 평생을 살라고 마음먹고 이주를 해 들어온 지역에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거주지를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인 줄 압니까? 

딸아이가 성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그 아이가 어느 날 저에게 그러더라구요. ‘엄마… 나 성주로 이사 오길 잘한 거 같아. 여기 애들이 너무 잘 해줘. 착하고 순박해서 성주에서 학교 다닌 게 행복해. 만약 대구에서 학교 다녔으면 왕따당했을지도 모르잖아’ 하는 거라예. 그 말을 듣고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주에 사드가 들어온다는 거라예. 사드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 사드 배치된다는 얘기 나와서 우리도 인터넷이다 뭐다 찾아보면서 많이 공부했습니다. 순식간에 성주사람들이 군청으로 모여들어서 촛불을 밝혔지요. 사드 반대한다고, 사드 배치 절대로 안 된다고 외쳤지요. 여러분들 다 아시지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그때 정부가 뭐라했습니까? 북한의 핵 위협 때문에 사드 배치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정말 그거 아니잖아요. 북핵 때문에 사드 배치하는 거 아니잖아요. 중국 감시할라고 사드 배치하는 거 다 알고 있대요. 

그래도 정부가 하도 북핵 위협 어쩌고저쩌고하니까 그렇다 칩시다. 북한이 비핵화 노력하겠다고 했잖아요. 남한이랑 대화하고, 미국과도 협상하고 있잖아요. 통일이 곧 다가오고 있는데, 와 사드는 안 빼고 임시라고 놔둡니까? 임시로 배치해서도 안 되는 걸 인제 와서 또 정식배치하겠다고요? 말입니까, 막걸립니까. 

인제 와서 환경영향평가 해서 정식배치하겠다고요? 정부는 입만 열면 거짓부렁을 밥 먹듯이 해대고 있잖아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로 억지를 부리고 있잖아요. 필요도 없는 사드를 와 정식배치한다고 난립니까? 그것도 우리가 원치도 않는 군사 무기를 돈까지 줘가면서 와 해야 하는데요? 

 

사진 소성리상황실
▲ 사진 소성리종합상황실

 

3. 서명

사드는 처음부터 소성리로 배치된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성주읍에 있는 성산포대로 배치된다고 해서 성주주민들이 깜짝 놀라서 수천 명이 사드 배치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촛불을 들었죠. 그때는 우리도 참 순진하고 어리석었죠. 미국이 사드를 배치하려고 하는데도, 백악관에 10만 서명 청원 운동을 해보자고 했었어요. 우리 주민들이 절대 반대하는 의사를 보이면 미국도 어쩔 수 없어 배치를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젖먹던 힘을 다해서 성주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백악관 청원 서명을 받았어요. 

성주군민이 4만5천 명 정도 되거든요. 다 받는다고 해도 10만은 못 되잖아요. 거기다 어린이와 학생들 빼고, 이래저래 빠지는 사람들이 있을 거니까 많이 받아도 2만 명을 넘기기 어렵다고 봤죠. 그런데 청원 날짜까지 10만 명이 넘게 서명을 한 거예요. 그래서 백악관으로 우리의 바람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정말 대단했죠. 성주군민들 말고도 전국에서 사드를 반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미국에 사는 동포들도 나서주었어요. 백악관 앞에서 피켓팅한다고 알려왔더라고요. 

성주사람들은 그때 깨달았죠. 사드가 성주로 들어온다고 해서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요.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는 거라는 걸요. 그 많은 사람이 사드를 배치하지 말라고 10만 청원 서명에 동참했던 건 성주에 배치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드 배치는 옳지 않다고 말하는 거란 걸요. 

우리는 성주 사드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한반도 사드 배치 결사반대를 외쳤고, 한반도의 어디도 사드의 최적지는 없다고 말했죠. 그게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사드는 성주의 변두리이자 골짜기 소성리로 배치되고 말았어요. 임시배치라는 교묘한 말장난같이 말이에요. 소성리는 성주잖아요. 소성리에 배치된 사드는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잖아요. 

10만 청원 서명만 하더라도 성주주민뿐 아니라, 김천시민뿐 아니라 한국의 국민이 반대한다고 증명했잖아요. 그리고 사드 반대한다고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을 보이소. 국민이 사드 반대하는 목소리 다 들었잖아요. 그게 민심 아입니꺼? 

지난 3년 동안 참 많이 싸웠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쳤죠.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인제 와서 사드를 정식배치한다고 주민들과 간담회를 열고, 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요? 그리고 인제 와서 절차를 밟는다고요? 사람들 다 나가떨어지기만 기다리다가 인제 와서 당신들 뜻대로 하겠다고요? 와 국가는 우리를 못살게 굽니까?

안됩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광화문에서 사드는 적폐청산 6대 과제로 선정된 바도 있습니다. 사드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사드를 뽑기 위해서 혼신을 다할 겁니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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